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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졸업식 우울한 졸업생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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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희(崔承喜, 1911-1969)도 졸업식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9명의 우등 졸업생 중에서 8등이었다. 그의 4학년 평점이 90.5점이었기 때문에 우등생 대열에 낀 것이다. 박화성처럼 발군의 성적은 아니었지만 수재들이 모인 숙명여고보에서 우등으로 졸업한 것은 대단한 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졸업식에 참석한 최승희의 표정은 어두웠고,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최승희는 1918년 4월, 여덟 살의 나이로 숙명여고보 보통과(=초등학교)에 입학한 이래 8년 동안 이 학교에 다녔다. 이 기간에는 수창동 집과 수송동의 학교, 그리고 이 두 곳을 잇는 동선이 최승희가 살던 세계의 전부였다. 그러나 그가 등하교길에 목격한 세계는 아름답지 않았다.
최승희는 일제강점 직후에서 태어났으므로 한 순간도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신민인 적이 없었다. 나면서부터 일제 식민지 백성이었다. 하지만 망국의 격동을 겪은 부모와 형제들을 통해서 자신의 조국이 조선이라는 점과 그 조국이 지금은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 신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집에서는 조선어를 쓰면서도 학교에 가면 일본어를 ‘국어’로 써야하는 생활이 그런 현실을 단적으로 각인시켜 주었다.
식민지 현실은 가정이나 학교의 울타리 밖에서도 일상적으로 목격되었다. 경복궁 앞을 지나 광화문통을 가로지르며 경성의 중심부를 걸어서 통학했던 최승희는 조선의 왕궁, 경복궁의 숱한 전각들이 일본인들에 의해 헐리는 것을 보았고 그 자리에 웅장하면서도 차가운 조선총독부 청사가 들어서는 것도 보았다.
보통학교 1학년 때에는 고종 황제가 승하해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기는 것을 경험했고 조선인들이 죽음을 각오하면서 독립을 주장하던 삼일만세 운동과 그것이 일경과 헌병들에게 진압되는 처참한 광경도 목격했다.
다행히도 잔혹했던 일제의 무단통치 시기가 최승희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기에는 그의 나이가 아직 어렸다. 그는 이 시기에 조선 양반 출신의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 화목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최승희가 보통학교에 입학한 것은 1918년 4월이니 그의 학창생활은 대부분 기미 만세운동 이후의 이른바 ‘문화통치’ 시기였다. 총독부는 일정한 범위 안에서나마 ‘조선인의 조선인 됨’을 허용했으므로 최승희는 조선어 신문과 잡지를 읽을 수 있었고 조선 황실이 세운 숙명여고보에서 조선인 교사로부터 신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최승희가 숙명여자보통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한 것은 대단한 특권이었다. 당시 조선 아동 취학률은 3.8퍼센트였다. 그나마 남학생 취학률이 6.4퍼센트였고 여학생 취학률은 1.0퍼센트 남짓이었다.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 1백 명 중에서 보통학교에 입학한 사람은 1명에 불과했다.
고등보통학교(=중학교)는 더 심했다. 최승희가 숙명여고보에 입학했던 1922년의 남녀 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은 28개교에 9천18명이었다. 또래 1천 명 중 4명꼴이었다. 여학생 수는 남학생의 절반 이하였다고 하니 여자의 여고보 취학률은 0.2퍼센트에도 못 미쳤다.
이는 일제의 조선인 교육 억제와 차별 정책, 그리고 여성교육을 기피하는 조선 사회의 관행이 중첩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차별 정책과 관행 때문에 1920년대의 조선 여성은 보통학교만 졸업해도 식자층에 들었고, 여고보를 졸업하면 최고 인텔리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최승희가 식민지 상황에서 조선 최고의 여학교에서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집안이 넉넉했고 부모가 관대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 최준현은 2남2녀의 자녀들에게 모두 신교육을 받도록 했다. 큰 오빠 최승일은 배재고보에 다녔고, 언니 최영희는 진명여고보를 졸업했다. 작은 오빠 최승오도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관립학교인 경성사범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립학교였으므로 네 자녀를 교육시키는 데에는 적지 않은 액수의 학비가 필요했다. 다행히 최준현은 그럴 여유가 있었다. 양반 출신으로 지방에 넓은 농지를 소유한 부재지주였기 때문이다.
최승희와 그의 형제들이 신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집안이 넉넉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버지 최준현의 각성과 관대함 덕분이기도 했다. 그는 세상이 바뀌고 있으며 이제는 신교육이 필요함을 알고 있었다.
최준현 자신은 조선의 구학문을 공부하고 말직이나마 조선의 관리로 근무한 적이 있지만, 하늘같이 여기던 왕조가 맥없이 일제에 굴복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일본을 강국으로 만든 것이 신학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그 학문을 배우도록 한 것이다.
처음에는 서양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에 주목했다. 장남 최승일을 배재고보에 보낸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양식 학교에 실망한 것 같다. 최승일이 배재고보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 가는 것을 허락하고 후원한 것을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그는 첫딸 최영희를 서양인이 만든 이화여고보가 아니라 진명여고보에 입학시켰다. 진명은 숙명여학교와 함께 대한제국의 황후 엄귀비가 설립한 학교였다. 최영희는 진명여자보통학교와 여고보를 졸업했지만 전문인이나 직업인의 길을 가지 않고 바로 혼인했다.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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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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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가 취업대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실업자 127.8만 명 시대를 맞고 있다. 대기업들도 취업방식을 바꾸고 있다. 필요할 때 그때그때 뽑겠다는 것이다. 취업준비생들의 불확실성이 점차 커지고 있는 취업현장이 되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아예 별다른 이유 없이 쉬고 있는 20대와 30대가 무려 65만2천명에 달하고 있다. 지난 6월 13일 8급, 9급 지방직공무원과 교육행정직 공채시험에는 전국에서 동시에 치러졌다. 접수자는 지방공무원 24만531명으로 10.4대1, 지방교육청공무원 5만5천338명으로 13.6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실제 응시생은 19만2천여 명이지만 두 시험 접수자가 무려 30만 명에 육박한다. 얼마나 치열한 경쟁률인지를 살펴보면 그 답은 금방 나온다.
이런 과정을 거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지만 1차 합격을 한다 해도 면접과 인성검사에서 탈락자가 나오고 최종 합격자가 가려진다. 한마디로 바늘구멍이다. 혹자는 우리나라 9급 공무원 합격하기가 하버드대학에 들어가기 보다 더 어렵다는 말까지 할 정도이다. 그러다 보니까 10년을 넘게 공부해 가까스로 합격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공시생들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사회이다. 이런 현상은 취업난이 심각하자 오랜 전부터 빚어지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자기 전공과 관계없이 이 길을 많은 젊은이들이 걷고 있다. 올해도 수많은 탈락자들이 나오지만 또다시 기약 없이 각종 공무원 시험에 문을 두드릴 것이다. 탈락자가 나와도 바로 이런 경쟁사회를 우리는 정상적으로 받아들이고 공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1,902명의 보안검색요원인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정규직으로 직고용하겠다고 하자 이를 둘러싸고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누구보다 당장 정규직 노조와 취준생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하루 만에 무려 20만 명의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이는 역차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동안 스펙을 쌓고 공부하는 취준생들과 현직자들에게 불평등한 처사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노력하는 이들의 자리를 뺏게 해주는 게 평등이냐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이 다른 공기업에까지 확대될 경우를 더욱 우려하는 대목이다. 당연히 비정규직의 정규직 추진은 기존에 막강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직원들이나 이를 준비하는 취준생들에게는 불평등이자 불공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모순된 고용형태는 어찌 보면 혜택을 보는 당사자들에게는 일확천금의 기회일지 모르지만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객관성과 공정성의 상실의 문제를 크게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공무원은 물론 공기업의 직원 채용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자칫 특혜시비를 불러올 수도 있다. 앞서 밝혔듯이 올해 8,9급 공무원 시험에 왜 30만 명이나 몰렸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들 중 상당수가 탈락을 하게 되지만 정정당당하게 경쟁을 통하여 그 우열을 가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자들의 자부심이 강한 것이다. 얼마나 당당하고 떳떳한 방식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여기에 누가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달려든다면 그 사람이 우스운 꼴을 당할 수밖에 없다. 공무원시험과 공기업 입사시험, 일반 기업체 입사시험에 이르기까지 그 해당분야에 적합한 형태로 자기 선택에 의해 지원을 하고 합격을 하면 그 길에서 근무를 하게 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건 정규직이건 자신이 선택한 길이다. 자신들의 실력과 처지에 맞게 지원한 것이다. 처음부터 가야할 길은 나누어져 있다. 서울 명문대에 모두가 다 갈 수는 없다. 대기업에 모두가 취업할 수는 없다. 심지어 경제도 마찬가지이다. 모두가 다 갑부가 될 수는 없다. 다만 그 길을 위해 노력하고 정진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문제는 재원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공기업은 사기업이 아니다. 어찌 보면 국민의 기업이다. 결과적으로 국민들에게 누를 끼치는 불공정한 취업특혜형태를 통해 마치 평등이라는 이유로 강행한다면 이는 자기모순에 빠질 수 있다.
요즘 프로야구가 무관중 경기로 치러지고 있다. 국민들의 인기 스포츠이지만 코로나19사태로 역대 보지 못하던 무관중 경기가 펼쳐지고 있다. 무관중 경기이지만 그래도 경기내용만큼은 박진감 넘치고 치열하다. 여기에 보면 심판들이 등장하고 있다. 주심과 1루, 2루, 3루 심판들이 공정한 경기를 위해 매의 눈을 갖고 판정을 내리고 있다. 그렇다고 늘 이들의 판정이 옳은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2루 도루를 하는데 아웃이나 세잎을 선언하였다고 해당 선수나 감독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바로 비디오 판독이다. 심판의 판단이 옳은 지 여부를 더욱 정밀하게 가린다. 원래의 판정이 아웃이거나 세잎이라고 해도 판정이 번복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이 비디오 판독이 최종 판정이다. 이는 불공정과 오류를 범하지 않고 올바른 경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정당한 경기운영의 방식으로 불평불만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변칙과 반칙으로 승리를 챙길 수 없다. 과거 이 제도가 없을 때는 심판의 오판이 경기를 뒤집어 분루(憤淚)를 삼키는 팀들이 많았다. 모든 스포츠가 이런 제도가 도입되어 있다. 그만큼 정정당당한 승부를 가리자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요즘 무관중이지만 프로야구에 열광하는 것은 승부도 승부지만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감독과 선수들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디에도 변칙과 반칙으로 승부를 가리자는 모습은 있을 수 없다. 오로지 정정당당함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기량이 부족하면 사전에 연습을 더욱 철저히 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서 경기에 임하는 것이다. 훌륭한 기량 뒤에는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잘하던 선수라도 제 기량을 다하지 못하면 2군으로 내려가 다시 기량을 닦아야 한다. 그래도 미덥지 못한 선수들은 과감히 방출해 버린다. 여기에는 감독도 예외가 없다. 성적이 부진하면 감독직을 계속 수행하기 어렵다. 어떨 때는 알아서 물러간다. 그만큼 승부의 세계가 냉혹하다. 더 내용을 들여다보면 프로야구에서는 4번 타자가 강타자이다. 1번 타자부터 4번 타자까지 강타자를 안배해 선수들의 라인업을 꾸린다. 라인업을 보면 선수들의 위상을 쉽게 알게 되고 사실상 기량과 컨디션을 보게 된다. 이런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도 질서와 기본적인 룰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패색이 짙던 경기가 역전승으로 마감하는 것을 보면 인생의 역전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정정당당함이라는 큰 가치가 함께 하고 있다. 그런 멋진 교훈을 프로야구는 우리에게 늘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프로야구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많다.
분명 불평등을 개선하고 차별을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은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하는 중요한 가치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연한 질서와 정정당당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대한민국 공동체가 모두가 공감하고 합리적인 모델이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찬반양론이 존재하지만 여기에도 비디오 판독처럼 정확해야 하며 억지논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객관적으로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선택이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아집과 편견으로 반대세력을 만들어 올바른 주장과 제안조차도 부정하는 우(愚)를 범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갑론을박하며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민들을 몰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만성화되고 있는 청년실업은커녕 자칫 공정한 취업기회조차도 박탈하는 양상으로 치달을 수 있다. 취업대란 속에 그나마 한줄기 빛이었던 취업시험기회 조차 사라진다면 우리 젊은이들의 내일의 희망은 있을 수 없다. 한쪽에서는 심각한 청년실업대책을 부르짖으면서 아이러니하게 다른 한쪽에서는 취업문을 막아버리는 것은 취준생들의 억장을 무너트리는 것에 다름 아니다. 노인보다 취직하기 더 힘든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되어가고 있다. 청년들의 분노는 공정한 기회를 박탈하며 취업문을 막아설수록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가득이나 코로나19 사태로 위축된 취업시장이다. 실업자가 늘고 있고 청년채용도 줄고 있다. 이른바 ‘인국공사태’를 과연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우리 청년실업 해결을 보게 되는 바로미터로서 프로야구 비디오 판독의 최종 판정결과는 기다리는 형국이 되고 있다. 자칫 청년들의 거대한 저항에 부닥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젊은이들에게 황당한 고통보다는 꿈과 희망을 북돋아야 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의 소중한 꿈과 희망을 빼앗아서는 대한민국의 내일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2020-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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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지역감염 확산을 크게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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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전국 9곳에서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67명이 발생했다. 이는 지난 5월 28일 78명 이후 23일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는 것이다. 신규확진자의 감염경로를 보면 지역발생이 38명이고 해외유입이 31명이다. 지역발생 36명은 서울 13명, 경기 10명, 인천 4명 등 27명이 수도권이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대전이 5명(대전시발표는 7명)이 추가된데 이어 대구와 충남에서 2명이 발생했다. 해외유입감염사례까지 늘면서 급증하고 있다. 수도권과 대전에서는 방문판매업체와 종교시설 등을 매개로 집단감염이 주변으로 퍼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서울, 경기도, 대전 순으로 발생하고 있는데 그 감염속도가 걱정이다. 방역당국에서 말하는 폭발적 증가에 따른 대유행이 우려된다. 방문판매업체와 교회 등을 매개로한 지역감염이라는데 더욱 걱정이 앞선다. 그동안 비교적 안정적인 상황을 보여 왔던 점을 감안할 때 작금의 상황이 간단치 않다. 특히 각급 학교의 등교수업이 실시되고 있어서 더욱 이런 우려의 시각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에 이어 한동안 잠잠하던 대전과 세종, 계룡시, 공주시 등지에서 코로나19가 잇달아 발생하자 지역민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마스크 쓰기가 생활화되고 있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어느 정도 일상화되어 있기는 하지만 점점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자세와는 거리가 먼 모습들이 곳곳에서 목도되고 있다. 식당, 커피숍 할 것 없이 마스크만 갖고 다니지 실제는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중집합장소나 대중교통이나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곳도 이제는 코로나 19에 대한 타성이 젖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마치 나는 별일이 없겠지 하는 막연한 방심의 모습들이다. 그동안의 피로감도 누적되어 있다. 여름철로 접어들면서 무더위에 마스크 착용이 불편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편적으로 마스크는 일상화되어 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스크만을 믿을 수 없는 것이 요즘의 상황이다. 서울의 방문판매업체에서 다수의 확진자가 발생한데 이어 대전에서도 역시 방문판매업체를 통하여 지역감염사례가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대유행으로 번질 경우 그동안 벌여왔던 방역활동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확진자들의 동선도 일부 공개가 되고는 있지만 무증상감염의 확산우려도 커지고 있다. 최근 제주관광을 하면서 곳곳을 누비고 다닌 확진자처럼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접촉이 이뤄진다면 아무리 주의를 한다 해도 언제 어디서 감염될 수 있을지 모를 상황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달 이후 식당 4곳, 주점 6곳 등 음식점 10곳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다. 손님이 동행자나 다른 손님, 음식점 종사자를 감염시킨 사례가 대부분이었다. 음식점 종사자가 손님을 감염시킨 일도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았기 때문이다. 방문판매업체 관련 감염과 확진사례를 포함한다.
최근 유흥시설과 실내운동, 작은 공간 소모임, 방문판매업체 및 교회 등에서 감염이 지속되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주의를 촉구하고 있다. 지금 코로나19 사태는 끝난 것이 아닌데도 점점 타성에 젖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참으로 걱정이다. 특히 방문판매업체를 통한 감염이나 교회를 통한 감염이 지역감염의 원인으로 지목되면서 대구의 악몽이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발생하지 않던 대전지역과 세종, 계룡시, 공주시 등 주변지역에서 다수가 발생했다는 것은 지역감염의 확산세가 수도권을 넘어서 지방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른바 폭발적 증가에 따른 대유행의 상황이 도래할 경우 그 사태의 심각성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 각급 학교도 비상이다. 전국적으로도 확진자가 발생한 학교들은 또다시 전면 휴교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동안 허세를 부리던 중국도 베이징에 신종코로나 바이러스감염증이 확산되자 모든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고 한다. 학교 감염사태로 이어질 경우 사태가 악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려스러운 것은 서울과 경기도에 이어 대전 등지에서 우후죽순처럼 지역감염사례가 잇따르면서 갖가지 우려의 목소리가 더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름철 무더위와 함께 의료진들과 관련 종사자들의 피로도와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끝이 보이질 않는 여정에 지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것이다. 지금까지 누적 확진자수만도 20일 현재 무려 1만2,373명이나 되고 있고 연일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을 관리하느라 얼마나 사투를 벌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대한민국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그래서 지역감염확산이 더욱 걱정되는 것이다. 127만 명의 대량실업시대를 맞고 있다고 한다. 이 뿐만이 아니라 나라 빚도 날로 급증하고 있다. 3차 추경에 나라 빚이 111조가 늘어 재정건전성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자동차 하청업체들은 부품생산을 더 이상 못하겠다며 폐업을 선언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는 자동차생산에 직격탄을 던지고 있어 업체들이 비상이다. 재난지원금에 의존하던 시장경제가 다시 주저앉고 있다. 빠른 속도로 재난지원금을 다 써버린 탓이다. 반짝하던 경기가 다시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시중 상인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심지어 서울의 유명호텔들이 호텔숙박료 세일까지 벌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항공사들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여행업체들은 아예 속수무책이다. 물론 세계적인 현상이다. 혹자는 IMF체제보다 더 험악한 경제상황이라고 푸념하고 있다. 이젠 곳곳이 마스크 없이는 움직이지 못할 정도이다. 이 현상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참으로 기약 없는 현실이다. 해외에서 봉사하던 분들도 코로나19에 따른 극심한 통제를 견디다 못해 귀국길을 서두르는 경우까지 생겼다. 선의의 봉사조차 힘든 그런 시대를 맞고 있다. 전 세계가 비상사태이다. 국내외적으로 코로나19 펜데믹은 모든 일상을 바꾸어버렸다. 지역감염확산은 악화된 지역경제에 직격탄이 아닐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자세를 갖지 않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모든 공동체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코로나19 방역수칙도 철저히 준수하고 서로가 조심해야 한다. 방문판매업체는 물론 교회, 다중집합시설을 통해 퍼지는 지역감염은 아무리 무증상감염이라고 할지라고 분명히 감염 당사자는 어느 정도 증상을 감지하고 있으리라 본다. 물론 유증상인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선의의 피해자를 낳는 무모한 행동과 영업행위는 자제되어야 한다. 지금도 곳곳에서 체온을 특정하고 이상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감염사례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지역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소리 없는 전파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비상인 작금의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마치 일회성인양 치부한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고령층이나 취약계층에게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그동안에도 무수히 보아왔다. 코로나19의 지역감염 확산을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장기간 피로감에 당장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싶지만 아직도 백신이나 치료제는 없다. 아직은 기약없는 상황이지만 혹시 모를 만용과 타성에 젖어 방심하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서 다시 한 번 경각심을 한층 강화하고 철저히 대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요즘 지역감염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모두가 상기해야 할 시점이다.
2020-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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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그 뜨거움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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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디오니소스를 만났다.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의 열두 신 중 유일하게 인간의 피가 흐르는 특별한 존재다. 제우스가 인간 여인을 사랑해 낳은 자식으로 제힘으로 올림포스 신들의 반열에 올랐으니 대단한 위력을 지닌 존재임을 알 수 있다. 신화는 우리 존재와 삶의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불가해하고 신비로운 측면을 이야기할 때 상징이나 알레고리 등 대단히 교묘하고 복잡한 비유법을 동원한다. 디오니소스는 포도 재배와 술의 신이고 열정과 도취, 광기를 대변하는 신이다.
올림포스의 신들의 이야기가 펼쳐진 그 시대의 파란이 지금 우리세상에 불고 있다.
험난한 파고를 넘어야 살 수 있다.
개인의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힘겨운 싸움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늘구멍 찾기보다 힘든 날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미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든 것이다. 오늘날 사회 각 분야에서 창의성, 감성, 상상력, 응용력 같은 인문사회 기반의 정신적 능력들이 유독 강조되는 이유는 세계 경제체제가 지식기반경제에서 창조기반경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일류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무한경쟁의 산업 현장에서, 기업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하고 새로운 이론과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는 혁신적 리더, 문화와 과학 기술 그리고 창의적 발상을 동시에 아우르는 멀티플레이어형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하고 긍지를 느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푹 빠져서 지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행복이고 축복받은 삶이라 할 것이다.
디오니소스를 연상케 하는 일론머스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천재 사업가 일론 머스크는 손대는 사업마다 산업의 지형을 바꿔 놓고 있다. 어떤 모험가보다 대담하고, 어떤 기업가보다 탁월하게 일을 처리하는 일론 머스크는 디오니소스형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세 번 연속으로 로켓 발사에 실패했을 때 이제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하셨나요? 한 번도 없습니다. 왜죠? 전 절대 포기하지 않습니다. 제가 죽거나 병으로 완전히 무기력해지지 않는 한 말이죠.”기자의 질문에 대한 일론 머스크의 대답을 생각하면 디오니소스의 도취와 열정으로 창의성을 발현하며 삶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업의 지형을 바꿀만한 리더 혹은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내는 유능한 인재는 아니더라도 환경적 영향으로 두려움을 갖기보다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202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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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사기 꼼짝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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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지난달 19일 온라인에서 고액의 일당을 미끼로 보험사기 공모자를 모집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며 소비자경보“주의”등급을 발령했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기 적발금액은 8,809억원, 적발인원은 9만2,538명으로 각각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작년 한해 보험사기로 인한 보험사의 보험금 누수 액은 약 6조원, 이와 연계된 건강보험 재정누수는 약 1조원으로, 대략 7조원의 보험금이 새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보험사기란 보험사고의 발생, 원인 또는 내용에 관하여 보험자를 기망하여 보험금을 청구하는 행위를 말한다(보험사기방지 특별법 제2조1항). 보험과 관련된 일체의 사기 행위로 재산상 이익을 목적으로 보험회사를 속여 보험금을 청구하여 수령하는 행위를 뜻한다.
기존의 보험사기 유형으로는 성형이나 건강보조식품을 치료목적인 것처럼, 단순 시력교정 수술을 백내장 치료수술인 것처럼, 동시에 여러 보험사에 특정 보장을 과다하게 가입 후 가벼운 질병이나 사고를 이유로 진단, 장기 입원하는 경우에서, 최근에는 급전, 고액 일당 등을 미끼로 사회경험, 범죄의식이 낮은 청소년 및 사회 초년생과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인터넷 카페나 페이스북, 트위터로 모집하여 조직적으로 고의 차량 접촉 사고 후 보험금 청구하는 등 병원, 정비업체, 보험사 손해사정사 등과 연계한 조직화 , 전문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러한 보험사기로 불필요하게 보험금을 지급하면 결국 선의의 다수 계약자의 보험료 인상 및 계약자 전체의 추가부담으로 작용하여 보험 산업의 기반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국가 건강보험 재정누수를 초래해 전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하여 금융당국은 2016년 보험사기방지 특별법을 만들었으며 보험사기가 확정되면 행위자는 이 법에 의거 10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된다.
보험사기 신고는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방지센터(국번 없이 1332), 각 보험사 홈페이지 및 콜센터에서 접수하며 보험사기로 확인될 시 최고 10억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코르나 19는 세계 여러 나라와 우리사회의 약한 고리를 수면 밖으로 들어내며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보험 산업과 국가보건재정 누수의 커다란 원인인 보험금 부당수령, 보험사기를 근절하자.
202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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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공노할 아동학대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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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달궈진 쇠젓가락으로 발바닥을 지지고 쇠사슬로 목줄을 하고 하루 한 끼를 주는 9살 아동학대의 참상이 우리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경남창녕에서 있었던 소름 돋는 아동학대 이야기이다. 계부와 친모로부터 가혹한 학대를 받았다. 9살 여자 초등학생의 충격적인 학대소식은 지난 11일 언론을 통해 일제히 전해졌지만 실제 상황은 지난 달 29일 오후 6시 20분께 잠옷차림으로 창녕의 한 도로를 뛰어가다가 한 주민에 의해 발견되어 경찰에 신고하며 알려지게 되었다. 부모의 학대를 못 이기고 베란다 난간으로 목숨 걸고 집을 탈출해 알려지고 있는 학대실상은 참으로 목불인견이자 인면수심의 잔혹행위가 아닐 수 없다.
부모는 이 아동의 목에 쇠사슬을 채우고 쇠막대기로 온몸을 때리는 끔찍한 폭력을 저질러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목에 쇠사슬은 밥 먹을 때나 화장실 갈 때만 풀어줬다고 한다. 심지어 물이 담긴 욕조에 가둬 숨을 쉬지 못하게 한 사실도 확인되고 있다. 다락방에 혼자 살았다고 하니 혼자 감금상태로 지낸 것으로 보여 진다. 골절과 눈 부위에 멍, 손과 발에 화상 흔적, 그리고 심한 빈혈 등이 발견되었다. 상습적인 학대가 있었다는 의사소견도 나왔다, 학대물품인 쇠사슬과 자물쇠, 글루건, 프라이팬 등 증거물이 압수됐다. 가해 부모는 자해행위와 투신을 시도해 응급 입원된 상태라고 한다. 경찰은 학대사실을 확인하고 조사를 벌이고 있다. 피해아동은 “집으로 돌아가기 싫다. 학교는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천안에서도 계모가 9살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둬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일 천안 서북구 백석동 한 주택에서 일어난 사건인데 이 아이는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어 병원에 이송됐으나 결국 사흘 만에 세상에 떠났다. 가로 60센티, 세로 44센티의 작은 가방에 7시간가량 갇혔다. 40대 계모가 게임기를 고장 내고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로 이 같은 벌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청와대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이를 가방에 가두고 살해한 계모를 신상공개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제기되어 많은 사람들이 동의가 이뤄지고 있는 상태이다. “사회에 경종을 울리고 법의 무거운 처벌을 바랍니다“라고도 했다. 죄 없는 아이들이 아동학대로 죽어가야 되는 이 참담한 현실 앞에 우리 사회는 엄청난 멘붕을 겪고 있다.
최근의 이 두 가지 사례는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단면에 불과하다. 이런 반인륜적인 아동학대가 이른바 계모는 물론 친모, 계부에게까지 가혹하고 참담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충격적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의 사각지대가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천안의 9살 소년의 사망사건과 경남 창녕의 9살 소녀 학대사건은 그 충격과 파장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법무부도 방지대안으로 자녀체벌금지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실제 지난 2013년 울주 아동학대 사망사건, 2016년 평택 아동학대 사망사건, 2017년 고준희 양 사망사건 등도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 2018년 아동체벌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된 적이 있었다. 어찌 보면 사건이 발생하면 그때서야 뒤늦게 난리를 피우는 형국이다. 사후약방문격이다. 최근 제기된 ‘자녀 회초리금지법’은 훈육과 학대의 두 가지 측면에서 갈등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이번 국회에서도 부모의 자녀체벌의 근거가 되어온 민법상 ‘징계권’을 삭제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아동학대에 관한 법도 중요하지만 바람직한 훈육수단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학대와 훈육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천안과 창녕의 두 사건의 경우 이는 훈육의 차원이 아닌 그야말로 부모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인륜을 넘어선 사악한 행위라는 사실에 우리 사회가 공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자체는 부모의 체벌 수준을 넘어선 학대로 범죄행위에 다름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에는 지난 1957년 5월 5일에 선포된 어린이 헌장이 있다. 전문과 11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8년 재개정되어 있는데 제 66호 어린이날 새롭게 공포되었다. 여기에는 아동에 대한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다. 어린이에게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해 줄 것을 어른 전체가 서약한 헌장이다.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도 이런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다. 전문을 보면 “대한민국 어린이헌장은 어린이날의 참뜻을 바탕으로 하여 모든 어린이가 차별 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니고 나라의 앞날을 이어나갈 새 사람으로 존중되며 아름답고 씩씩하게 자라도록 함을 길잡이로 삼는다.”라고 되어 있다. 본문 제 1항에는 “어린이는 건전하게 태어나 따뜻한 가정에서 사랑 속에 자라야 한다.”라며 사랑의 보살핌을 강조하고 있다. 제 9항에 “어린이는 학대를 받거나 버림을 당해서는 안 되고, 나쁜 일과 힘겨운 노동에 이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나아가 11항에는 “어린이는 우리의 내일이며 소망이다. 나라의 앞날을 짊어질 한국인으로, 인류의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 자라야 한다.”라고 어린이의 소중함을 담았다.
‘고슴도치도 지 새끼 귀한 줄은 안다‘라는 말이 있다. ’손자 자랑은 벌금내고도 한다.‘라는 말도 있다.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고도 한다. 이런 말들 속에는 아동학대라는 불순하고 사악한 정신이 자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사랑이 넘치는 말이다. 우리가 작금의 아동학대 사건에 충격을 받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 무수한 부모들은 자식을 사랑하고 헌신하며 끊임없는 희생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사회 훌륭한 부모들을 일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인 악독한 부모들의 아동학대행위자처럼 자칫 도매금으로 매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수의 건전한 부모들은 사랑과 헌신으로 자식들을 보살피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금의 아동학대 및 사망사건이 우리사회를 충격에 빠트리는 것이다. 이를 접한 모든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는 안 되는 참혹한 아동학대 사건들이야 말로 단호히 척결해야할 사회적 병폐이자 사회악이다. 동물도 자기 새끼들은 사랑으로 보살핀다. 어떤 이유이건 아동학대는 용인될 수 없다. 가해를 당한 피해아동들이 그동안 얼마나 무섭고 두려우며 극한적인 공포에 떨어야 했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소름이 돋고 끔찍하다. 작금의 아동학대는 그 자체가 반인륜적이며 반사회적인 추악한 범죄행위이다. 법적으로도 엄중히 다뤄져야 한다. 천인공노할 끔찍한 아동학대 이대로는 절대 안 된다.
20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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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으로 위기를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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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속에서 영웅 헤라클레스와 만나다.
‘위기는 곧 기회다’ 라는 말이 위안이 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지금 신화 속 영웅 헤라클레스의 신념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힘을 얻어 보고자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헤라클레스는 우리 인간이 간절히 바라고 동경하는 영웅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하지 못하는 것을 이뤄내는 영웅을 보며 위안과 기쁨과 통렬함을 느끼며, 나아가 그 영웅에게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배운다. 제우스신의 피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헤라 여신의 저주와 탄압을 받아야 했고, 그 저주로 시작된 열두 가지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수많은 고난의 여정을 떠나야 했던 헤라클레스. 헤라클레스의 삶은 이처럼 온갖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은 해내야 했고, 목숨을 위협하는 수많은 괴물들과 맞서야 했지만 험난한 삶 앞에 무릎 꿇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지혜롭게 이겨낸 영웅, 신화 속 헤라클레스는 모험과 투쟁 끝에 찾아오는 달콤한 휴식에 안주하지 않았으며 온갖 형상의 괴물과 짐승, 신과 인간과의 투쟁에서 진정한 영웅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웅 헤라클레스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불멸의 영웅이 아니라, 바로 인생의 고비 고비마다 숨어 있는 어려움을 이겨 내려 애쓰는 우리 인간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신념으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할 때이다.
2020년 6월 우리의 환경은 과거 그 어떤 어려움 보다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위기와 난관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는 근원적인 힘이 필요할 때이다.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힘을 사람들은 ‘의지’라고 하며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는 신념으로 이어진다.
삶을 지탱해주는 일터, 온 생애를 바치며 선택했던 직업이 환경적 영향으로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직장이 하루아침에 사라져 생소한 직종에 뛰어들어 만신창이 상태로 죽음에 내몰리는 격일 수 도 있는 가운데 처절한 생명력으로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고 한계상황을 넘어 살아남는 고난과 역경의 스토리를 써내려가야 하는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가게를 접어야 하고 꿈을 포기해야 하고 목표 달성을 할 수 없다고 한숨지을 때 결국 신념이라는 믿음과 이념이 우리를 지탱해 주는 것 아닐까? 자신이 정한 신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세상의 관습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고이기는 것이 아니다. 항상 꿈꾸어 왔던 일을 이루기에는 2020년 6월의 환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간절한 믿음으로 위기 속에서 생존하여 전진하고자 하는 삶, 위기극복을 위한 의지는 신념으로 이어지고 신념 있는 사람의 행동에는 자신감과 일관성, 고정된 틀에 묶이지 않는 유연함과 창의성 돋보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무리
위기가 닥쳐도 포기하지 않으며 열정과 추진력으로 만들어진 제품과 서비스는 사용자를 감동시키는 훌륭한 브랜드로 태어나는 것이다. 헤라클레스에게 주어진 선택이 두 갈래길,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타인을 위한 영광의 삶을 살 것이냐 편안하고 안락하지만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 것인가? 와 같은 위대한 선택은 아닐지라도 일상의 선택에서 자신감과 일관성 고정된 틀에 묶이지 않는 유연함과 창의성을 발휘해 개인의 역량과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위기 속에서 빛나는 우리 모두가 되길 응원해 본다.
2020-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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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의 노예인가? 주인인가? <하이 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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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시대,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상을 점점 바꿔 놓고 있는 것은 이제 두말하면 잔소리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세상을 불과 10년전만해도 상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우리의 출근 모습만 비교해 봐도 너무나 많이 바뀌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당시(10년전쯤) 우리는 출근길 지하철이나 버스안에서 책이나 무료일간지를 보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광경은 사라진지 오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휴대폰을 보거나 음악을 들으며 출근을 하고 있다.
출퇴근시 휴대폰을 보는 것 말고도 휴대폰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출근길에 휴대폰을 집에 두고 나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 휴대폰을 들고 나왔던 경험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일상에서 휴대폰이 없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휴대폰 분리 불안” 증상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학계에서는 핸드폰이 없어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가리켜 “노모포비아(nomophobia)”라고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이용자(만 3세~60세)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9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5명중 1명(20%)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으로 조사 되었다. 이는 전년대비 0.9% 증가한 수치이다. 조사에 따르면, 의존도가 높은 사람들은 과의존 심각성에 대해 더 높게 인식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우리사회의 스마트폰 과의존 심각성에 대해 78.7%가 ‘심각하다’라고 응답하였다. 본인의 스마트폰 과사용에 대해 36.6%가 ‘이용 시간이 과도하다’라고 응답하였다.
우리 손에 항상 들려 있는 휴대폰 속의 개인비서가 되어 가고 있는 애플의 “시리(siri)”, 삼성의 “빅스비(Bixby)”는 정보검색이나 스케쥴관리 등 우리의 삶을 점점 편리하게 해 주고있어 활용도와 의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인공지능 비서에 관한 영화가 출시되었는데 라는 영화이다.
는 고장 난 ‘시리(siri)’ 대신 나타난 인공지능 트레이너 ‘젝시’가 폰생폰사 ‘필(아담 드바인)’의 인생에 끼어들면서 펼쳐지는, 폰 없이 1분도 못 버티는 어쩌면 우리의 일상과도 닮은 삶을 사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 필은 기상알림을 시작으로 샤워하면서 BGM, 출근하면서 내비게이션, 퇴근후 배달 앱과 너튜브, 잠들기 전 SNS까지 손에서 도무지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인물이다. 폰 없이는 거의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의존적이었던 주인공 필이 자신의 인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공지능 젝시로 인해 사교성부터 체력, 그리고 연애 센스까지도 180도 달라지는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던 중 인공지능 젝시의 질투심으로 인해 ‘필’이 위기에 처하기도 하는데, 핸드폰에 대한 의존성이 강해질수록 인간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수도 있겠다는 우려감이 들게 만드는 장면도 볼 수 있게 된다.
사람이 편리하기 위해 휴대폰은 점점 많은 기능을 탑재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한 비서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조금은 편리한 듯 느껴지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시사하고 있는 바와 같이, 편리함을 느끼기 위해 이용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우리의 삶을 구속할 정도로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게 되면 오히려 인간이 기계에게 구속되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 올수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나는 스마트폰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아니면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야야 할 것이다.
20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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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한 졸업식 우울한 졸업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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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이후 20년 동안 숙명여학교는 발전을 거듭했다. 학교 부지를 넓히고 교사와 강당을 새로 지었다. 실력 있는 교사들을 영입해서 1926년 졸업식 때에는 교사의 수는 20명을 헤아렸다. 교사 중 14명이 여성이었고, 5명은 숙명여고보를 졸업하고 일본의 사범학교를 마친 후에 후배들을 가르치기 위해 돌아온 선배들이었다.
가장 크게 증가한 것은 학생 수였다. 제1회(1910년) 졸업생은 4명에 불과했지만 제9회(1918년) 졸업생은 15명, 제13회(1922년) 졸업생은 43명, 제17회(1926년) 졸업생은 76명으로 15년 사이에 약 20배로 늘었다. 1923년에는 입학 정원은 1백 명으로 늘었기 때문에 제18회 졸업식 때에는 전교생의 수가 4백 명에 가까울 전망이었다.
17년 전, 숙명여고보의 첫 번째 졸업식은 성대했다. 1910년 4월5일에 열린 제1회 졸업식에는 4명의 졸업생을 축하하기 위해 6백 명의 하객이 몰려들었다. 하객 중 4백 명은 졸업생과 재학생들의 친족이었지만, 다른 2백 명은 왕실 귀족과 정부의 고관대작들이었다.
그해 4월7일자 과 는 엄귀비의 사절과 왕실요인들이 이 졸업식에 직접 참석하거나 선물을 하사했고, 학부(=교육부)의 대신과 차관, 농상공부대신(=경제부장관)과 한성부윤(=서울시장)을 비롯한 정부의 고관들이 동부인으로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숙명여고보의 졸업식은 한양을 떠들썩하게 만든 국가적 행사였던 것이다.
1926년의 제17회 졸업식도 마찬가지였다. 단상 앞줄에 후치자와 노에(淵澤能惠, 1850-1936) 학감(=이사장)과 이정숙(李貞淑, 1858-1935) 교장을 비롯한 20명의 교사들이 각각 자리에 앉았고, 그들과 나란히 총독부 학무국장과 경기도지사 등의 중앙과 지방의 고위직 공무원들, 그리고 일제의 작위를 받은 귀족들과 그 부인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숙명여고보를 설립한 대한제국은 망했으나 이 학교의 졸업식은 여전히 국가적 행사요 경성의 화젯거리였다.
졸업생들은 옥색 저고리에 자주색 치마를 단정하게 갖춰 입고서 강당의 앞줄에 가지런히 자리를 잡았다. 평상시나 교내행사 때에는 학생들이 자주색 세일러 제복을 닮은 서양식 교복을 입었지만 졸업식에는 한식 교복이었다. 졸업생 뒤로는 3백명의 재학생들이 빼곡히 앉았고, 양옆에는 친족들이 앉거나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는 숙명여고보 졸업식장이 “문이 메일 지경이며 새로 지은 넓은 강당도 삽시간에 송곳 꽂을 틈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졸업식에 참석한 76명의 제17회 졸업생 중에는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인물이 많았다. 조선 최초의 여성 장편소설가 박화성은 이미 1918년에 숙명여고보를 제9회로 졸업한 바 있었다. 그러나 일본유학에 필요한 수학기간을 채우기 위해 재입학, 4학년 과정을 마치고 다시 졸업생이 된 것이다. 그의 4학년 성적은 평점 98점으로 숙명여학교 개교 이래 최고 기록이었다.
조선의 무희 최승희는 1918년 숙명여자보통학교에 입학해 1922년 숙명여고보에 진학했으므로 수송동 교정에서 8년 동안 수학한 끝에 졸업생이 되었다. 배소득은 여자고학생상조회의 회원으로 주경야독으로 숙명여고보를 졸업했다. 그는 고통스런 고학 기간을 줄이기 위해 동덕여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숙명여학교 3학년 편입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덕분에 그는 4년제 여고보를 3년 만에 졸업하는 진기록을 남겼다.
입학은 함께 했으나 함께 졸업하지 못한 동창들도 있었다. 여성 비행사 이정희는 비행 훈련을 받기 위해 3학년 때에 자퇴했고, 여성 혁명가 노남교도 1922년에 최승희, 박화성 등과 함께 입학했으나 3학년 재학 중에 가담한 항일 사건으로 퇴학당한 후 일본으로 건너갔다.
숙명여고보 제17회 졸업식은 대한제국 황실학교의 자부심과 수많은 명사와 하객들의 축하 속에 성대하게 치러졌지만, 빈자리의 아쉬움이 뒤엉킨 복잡한 행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졸업식 순서에 따라 이정숙 교장의 학사보고와 후치자와 노에 학감의 훈화, 내빈들의 축사가 이어졌고, 재학생 대표의 송사와 졸업생 대표의 답사가 낭독될 때는 울음바다가 되었다. 졸업식 후에 마련된 재학생들의 학예회가 성황리에 끝나고 하객들을 대접하는 축하연이 마치자 마침내 졸업생들은 수송동 교정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계속)
20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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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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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6일 현충일 오전 10시 전국에 사이렌이 일제히 울렸다.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위한 1분간 묵념의 시간이었다. 국민들은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경건한 마음으로 이들의 숭고한 희생과 위대한 정신을 기렸다. 이 위대한 정신은 바로 애국애족의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이들이 목숨 바쳐 이룩한 결실이다. 그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결코 잊을 수도 없다. 잊어서도 안 되는 고귀한 희생이다, 누가 이들의 희생을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가?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지정하고 있다. 6월 6일을 현충일로 지정하여 추념식을 갖고 참배도 하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애국애족의 정신이다.
현충일은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숨진 장병과 순국선열의 충성을 기리기 위하여 정한 날이다. 태극기를 모두 조기인 반기로 게양한다. 대한민국을 지켜온 모두가 바로 그 희생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다가 희생한 모든 사람들을 진정한 마음으로 그 뜻을 바로 새겨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 이는 바로 대한민국의 정체성이자 고귀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과연 올해 65회 현충일에 우리 국민들은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할 수 있도록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장병들을 위하여 얼마나 그 참뜻을 제대로 기렸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들이 지켜온 나라를 제대로 지켜가고 있는 지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정부가 국민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현충기념일과 6월 25일 한국전쟁을 연계해서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해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을 추모하고자 했다. 1970년 1월 9일 국립묘지령 제4510호로 연 1회 현충추념식을 거행하였다. 현충기념일은 통상적으로 현충일로 불리다가 1975년 12월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이 개정되어 공식적으로 현충일로 개칭되었다. 지난 1982년 5월 15일 대통령령으로 공휴일로 정하기에 이르렀다. 현충일의 추모 대상은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이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애국자를 추모하는 날인 현충일은 올해 벌써 65회를 맞았다. 국립현충원, 국립묘지, 전쟁기념관, 독립기념관 등 위령을 모신 곳을 방문하여 헌화를 한다.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올해 추념식은 대전현충원에서 열렸다. 하지만 그 참뜻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 현충일 추념식에 제1,2 연평해전과 천안함 피격, 연평도포격도발의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국가보훈처가 제외시켰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뒤늦게 7명을 초청해 구설수에 올랐다. 희한하게도 코로나19 희생자가족은 참석시켰다. 보훈단체가 유족을 추천하지 않았다며 실수라고 변명했지만 호국영령을 기리는 현충일의 행사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지난 3월 서해수호의 날이 빚어졌던 일 때문에 천안함 유족을 불편해 하는 현 정부의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이유야 어떠하던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장병은 물론 유가족들을 위해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이들이 무슨 잘못이 있는가? 피해자이자 희생자일 뿐이다. 이들을 미워하기에 앞서 그 고귀한 희생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 원인과 이유야 어떠하던 나라를 지키다 희생을 당한 것에 불과하다. 6월 현충일에 당연히 추념되어야 하는 대상이자 그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되는 나라이다. 우리의 국군장병들이 지금도 병역의무를 준수하며 대한민국을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가보훈처가 현충일이 갖는 취지와 의미를 아직도 모른다면 65회를 맞는 현충일 역사를 다시 배워야 한다. 순국선열은 무엇이며 호국영령이 무엇이며 전몰장병이 무엇인지 부 터 개념을 정리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보훈처가 왜 존재하는지 왜 국가유공자를 지정해 이들을 지원하고 보호하며 혜택을 주는 지도 마찬가지이다.
6월을 호국보훈의 달이고 참으로 경건한 달이다. 그 뜻을 기리는 현충일추념식 초청인사와 관련해 빚어진 해프닝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의도적인 냄새가 난다. 코로나19 핑계를 대는 것도 궁색하기 그지없다. 그렇다면 코로나19희생자 가족과 현충일이 무슨 관계인지 부터 설명해야 한다. 모든 것이 상식이 통하는 나라가 되어야지 억지를 부리며 견강부회(牽強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국민들을 가볍게 보는 행태는 당연히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국민들은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남북문제부터가 그렇다. 도대체가 헷갈린다. 정부나 국민들이 일사불란하게 한마음 한뜻으로 가야 하는데도 엇박자가 수시로 발생한다. 국민의지와는 별개로 움직이는 듯이 가고 있는 형국이다. 누가 평화를 원치 않겠는가? 누가 전쟁을 원하는가? 진정한 남북화해와 평화를 위한 길이라면 우리 민족이 무엇인가를 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분명히 있다. 일제 36년의 치욕도 거친 민족이다.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한 민족이다. 아직도 그 연장선상에서 남과 북은 양립하고 있다. 전쟁세대들도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 이산가족들의 만남도 이제 거의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 일은 상식이 통하는 마음으로 다가서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념과 갈등의 진통이 무척 큰 시대에 우리 국민들은 살고 있는 듯싶다.
우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에 우리 민족사를 다시금 되돌아보고 오늘의 우리를 살피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6월은 우리 민족의 애환과 애국애족의 중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도 숙연하게 생각하는 달이기 때문이다. 선대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이룩한 대한민국이다. 그리고 오늘의 우리도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책무가 주어져 있다. 선대의 희생만을 생각하고 후대를 위한 진정한 정신을 발휘하지 못하고 순간의 이익과 권력욕만 탐한다면 이는 호국보훈의 정신과는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목숨을 바쳐 지킨 무수한 순국선열들의 이름도 다시금 살펴보고 독립선언서도 한번 읽어보고 참혹한 6.25동족상잔의 비극사도 더듬어 보며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구호로만 호국보훈의 달, 진정한 추념정신이 없는 행사만을 위한 추념식과 허례의 묵념은 6월의 애국애족의 정신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보는 6월이 되어야 한다. 그런 뜻 깊은 6월을 말해야 한다. 나라를 망친 매국노를 기리는 달이 아니다. 호국보훈(護國報勳)에 담긴 참뜻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하여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뜻임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그 뜻을 더욱 공고히 새기면 새겼지 어떤 이유로든지 그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 이것이 다름 아닌 바로 애국애족의 정신이라는 사실과 함께 말이다.
2020-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