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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길, 국민 앞에 당당해야
도덕성과 준법정신, 정치의 기본
정치는 국민을 위한 봉사의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주 그 길을 벗어난다. 정치인의 기본은 높은 도덕성과 준법정신이다. 그러나 우리는 숱한 사례에서 음흉하고 은밀한 뒷거래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 결과 정치인이 감옥으로 향하며 국민 앞에 개망신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해 왔다. 이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선거철마다 불법 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지고, 권력의 사적 남용이 드러나는 일은 너무도 흔하다. 결국 정치인의 몰락은 국민적 신뢰의 붕괴로 이어지고, 국정 전반에 대한 냉소와 불신으로 확산된다.
부패 정치의 뼈아픈 교훈
정치인의 부정과 불법은 단순히 개인의 추락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국가 전체의 명예와 미래를 훼손한다. 네팔의 최근 정국 혼란을 보라. 부정부패로 얼룩진 정치권이 국민 분노를 촉발했고, 거리는 시위와 충돌로 가득했다. 인도네시아 역시 권력형 부패와 불법이 반복되며 사회적 신뢰가 흔들리고, 프랑스마저 정치적 갈등과 내분이 극심해지면서 민주주의의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 이들 사례는 우리에게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치도 언제든 그 길을 밟을 수 있다는 경고의 종이다.
국민의 눈은 이미 알고 있다
정치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있다. 은밀한 거래와 뒷돈은 영원히 감춰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눈은 이미 알고 있고, 시대의 기록은 모든 것을 밝혀낸다. 작은 의혹이 거대한 폭로로 이어지고, 침묵이 분노의 함성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결국 감옥에 갇히는 정치인은 자기 선택의 대가를 치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그 여파로 국민들이 정치 전반을 혐오하고 외면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신뢰인데, 그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는 과연 어떠한가. 선거철마다 공약은 쏟아지지만, 지켜지지 않는 약속이 더 많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태도가 바뀌고, 정쟁만이 난무한다. 민생은 뒤로 밀리고, 오직 권력의 향배와 정당의 이익만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이 과정에서 정치는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니라 정치인을 위한 길로 변질된다. 결국 이는 국민들의 깊은 좌절과 냉소를 불러일으키며, 정치 무관심을 확대시킨다.
해외의 내분, 우리의 거울
네팔의 혼란, 인도네시아의 불신, 프랑스의 갈등은 모두 정치 지도자들이 도덕성과 준법정신을 저버린 대가다. 권력은 국민의 위임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것이 사익 추구와 불법으로 흐르면 결국 내분과 갈등으로 귀결된다. 대한민국도 정치인의 탐욕과 불법이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언제든 거리의 분노로 번질 수 있다. 해외의 사례는 우리에게 ‘반면교사’로서 깊은 교훈을 준다.
정치인의 길, 본분으로 돌아가야
정치인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첫째,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도덕성을 지켜야 한다. 둘째, 법을 어기는 순간 권력은 무너진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공약은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치인의 본분은 권력이 아니라 봉사다. 그 길을 벗어난 정치인은 결국 파멸을 자초한다. 이는 역사가 수없이 입증해 온 진실이다.
국민이 바라는 정치
국민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치,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주는 정치, 신뢰할 수 있는 정치다. 그 출발점은 정치인의 깨끗한 마음가짐이다. 국민은 이미 많은 약속과 배신을 경험해 왔다. 이제는 진실과 행동으로만 감동할 수 있다. 정치인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현실 정치의 문제점과 대안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점은 뚜렷하다. 첫째, 당리당략에만 매몰되어 민생이 뒷전으로 밀린다. 둘째, 권력형 비리가 반복되며 국민 신뢰를 갉아먹는다. 셋째, 공약은 실천보다는 선거용 수사로 그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은 무엇인가. 정당 내부의 강력한 자정 시스템, 공직자 윤리 강화, 국민 참여 확대, 그리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지로 지켜지는 것이며, 정치인들은 그 국민 앞에서 영원히 책임져야 한다.
정치인의 새 각성, 시대의 요청
시대는 정치인들에게 새로운 각성을 요구한다. 과거의 음습한 권력형 부패와 은밀한 거래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SNS와 인터넷, 언론의 눈은 모든 것을 기록한다. 국민은 침묵하지 않는다. 정치인의 한순간 잘못된 선택이 곧바로 역사적 단죄로 이어진다. 정치인의 길은 달라져야 한다. 정직, 투명, 책임, 봉사. 그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의 새 좌표가 되어야 한다.
희망의 정치를 향하여
정치는 희망을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부정과 불법이 가득한 정치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정치인이 먼저 변해야 국민이 변한다. 정치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다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은밀한 거래의 유혹을 끊고, 정의와 양심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는 길이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길이다.
맺음말 – 국민 앞에 당당하라
정치인의 삶은 결코 개인의 것이 아니다. 국민이 주인이고, 정치인은 그 주인의 뜻을 받드는 대리인일 뿐이다. 부정과 불법은 결국 자신뿐 아니라 국가와 국민 모두를 무너뜨린다. 네팔, 인도네시아, 프랑스의 내분이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한민국 정치가 다시는 그런 길을 걷지 않기 위해서는 정치인 개개인의 철저한 각성과 국민적 감시가 절실하다. 정치인의 길은 국민 앞에 당당한 길이여야 한다. 그것이 곧 진정한 민주주의의 길이며,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202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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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변의 파고 앞에서, 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미국 체포·구금 사건, 남겨진 뼈아픈 상처
최근 미국에서 한국 근로자들이 체포·구금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억울한 사정과 우여곡절 끝에 귀국은 이루어졌지만, 남겨진 상처는 깊고도 아프다. 이는 단순한 외교적 해프닝이 아니다. 해외에서 일하는 평범한 근로자들이 법적 문제에 휘말리고, 그것이 곧바로 한국 기업 전체의 신뢰도와 국가 이미지에 영향을 주는 시대가 되었다. 이번 사건은 미국 진출 기업들에게는 커다란 경고장이었고, 국민들에게는 분노와 불안을 동시에 안겼다.
투자 진출은 단순히 이익을 좇는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경제 전략이다. 그런데 근로자들이 억울하게 구금되고, 기업들이 예상치 못한 타격을 입는다면 이는 곧 국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정부가 즉각적으로 나서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남겨진 교훈과 과제는 여전히 무겁게 우리 앞에 놓여 있다.
관세전쟁, 새로운 질서의 태동
더 큰 맥락은 미국의 ‘관세전쟁’이다. 미국은 자국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중국을 비롯한 주요 교역국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역시 예외일 수 없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등 우리의 주력 산업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대응하듯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이른바 글로벌 신흥 세력이 뭉쳐 각국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브릭스( BRICS )’라는 새로운 경제협력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양극화를 넘어 다극화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미국과 서방 중심의 국제질서가 균열을 일으키고, 자원·시장·기술을 매개로 한 새로운 축이 등장하는 것이다. 한국은 이 틈바구니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라는 숙제를 피할 수 없다.
전쟁과 저항, 불안의 시대
세계 곳곳에서 터지는 전쟁과 저항은 불안의 시대를 상징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장기화하며 국제 원자재 시장과 에너지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은 단순한 지역분쟁이 아니라 중동 전체의 불안정과 직결되고 있다.
동시에 미·중 패권전쟁은 군사적 긴장뿐 아니라 경제 전반을 뒤흔든다. 글로벌 공급망은 단절과 재편을 반복하고, 각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경쟁을 격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와 네팔, 인도네시아 등지에서는 물가 상승, 불평등 심화에 따른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며, 사회 저항운동이 정권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어느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 현상이다. 대한민국 역시 그 불안의 파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 내부, 정쟁의 그림자
국내로 눈을 돌리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다. 정권 교체 이후 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여전히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국회는 민생을 위한 생산적 논의의 장이 되기보다 정쟁의 무대가 되어 있다. 일당 중심의 파행 운영, 대립과 충돌은 국민을 지치게 하고 있다.
경제 불안, 고금리와 물가 상승, 청년 일자리 부족, 지방 소멸과 같은 중대한 현안들은 정치적 대립에 가려져 해결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통합이며, 혼란이 아니라 안정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국민 불안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기업의 생존전략,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세계적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의 생존전략은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다. 이번 미국 체포 사건은 해외 진출 기업이 반드시 고려해야 할 현실적 과제를 보여주었다. 첫째, 현지 법제와 규범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준수가 필요하다. 사소한 차이가 곧바로 국제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투자 다변화 전략이 절실하다. 특정 국가나 시장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그 나라의 정치·경제적 변화에 따라 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한국 기업은 아시아, 유럽, 남미 등 다변화된 시장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기업의 공조가 강화되어야 한다. 외교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기업이 홀로 감당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근로자 체포·구금 사건이 교훈적으로 말해준다. 신속한 정부 지원과 보호 장치가 마련될 때만이 기업과 근로자들이 안심할 수 있다.
국민 불안을 줄이는 길, 국가의 책임
정책의 최우선은 국민의 안전과 삶이다. 국제질서의 격변 속에서 국민 불안이 증폭되는 이유는 결국 국가가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기민하게 대응해야 하고, 국민은 각자의 삶에서 불안에 맞서야 하지만, 국가가 그 버팀목이 되어주지 못한다면 모든 것은 헛수고가 된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외교적·법적 대응 시스템을 정비해야 하며, 동시에 민생 안정과 사회적 통합을 위한 과감한 정책 전환에 나서야 한다. 복잡한 정쟁보다 국민의 목소리를 듣고 실질적 정책으로 응답할 때 비로소 국민 불안은 줄어들 것이다.
새로운 전환점, 역사 앞에 선 대한민국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전환점에 서 있다. 미국과의 불협화음, 관세전쟁, 전 세계적 혼란, 국내 정치의 대립 등 모든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그러나 역사는 위기의 순간마다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 한국도 과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등 수많은 격변을 이겨냈다. 이번 위기 또한 국민의 단합과 전략적 선택으로 극복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선택해야 한다. 갈등과 불안 속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새로운 길로 나아갈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치가 함께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해답이다.
결론: 격변의 파고를 넘어 희망으로
오늘의 격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그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 힘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다. 국민은 단합을 통해 불안을 희망으로 바꿔야 하고, 정치권은 정쟁을 멈추고 국민을 위한 진정한 협치에 나서야 한다. 기업은 불확실성을 기회로 바꾸는 혁신과 다변화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격변의 파고 앞에서 대한민국은 길을 묻고 있다. 그 길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국민의 의지, 정치의 책임, 기업의 도전 속에 답이 있다.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낼 수 있을 때, 대한민국은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위해 우리는 지금, 단합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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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횡설수설(橫說竪說)-3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조부모, 부모, 형제자매 등 가족 구성원과 함께 생활하며 은연중(隱然中)에 가족의 품성과 언행을 닮아가고, 가정의 잠재적 교육과정 속에서 인성이 형성된다. 자녀는 출생 후 가정이라는 비형식적(非形式的)인 학교에서 선생님인 부모와 가족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가정에서 부모가 존댓말을 쓰면 자녀도 따라서 존댓말을 배우고, 부모가 인사를 잘하면 자녀도 부모처럼 인사를 잘하게 된다. 부모가 웃어른을 공경하는 효의 모범을 자녀에게 보이면 자녀도 효도할 것이다. 효(孝)는 백행의 근본으로 효하는 자는 어질지 않은 자가 없으며 의(義)를 지키지 않는 자가 없다고 했다. 부모와 웃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형제와 우애 있게 지내며 남을 존중하겠는가.
공자는 예(禮)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 말라고 했다. 부모는 자녀를 방임하지 말고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마음으로 가정을 돌보며 예절교육을 시켜야 하는데 유의할 점으로 첫째, 자녀들의 눈에 바람직한 예절로 비쳐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둘째, 어려서부터 예절이 몸에 배도록 의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셋째, 계속 반복적으로 일관성을 가지고 가르쳐야 한다. 넷째, 때와 장소와 시기에 맞는 상황을 설정해 지도해야 한다. 다섯째, 스스로 예절을 지키며 즐거움을 갖도록 칭찬과 격려를 해야 한다. 자녀들은 말보다 눈과 몸으로 배우기 때문에 부모가 시범을 보여 감화를 주며 말 없는 지도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자녀가 인사를 할 때 칭찬하며 반갑게 받아야 하는데 인사를 무시하거나 건성으로 받는다면 서운해서 인사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또 자녀에게 선(善)과 악(惡),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폭력과 욕설이 잦은 가정이나 무관심이나 방임 속의 가정에서 자란 자녀의 대부분이 남을 배려하지 않고 남에게 폭언과 폭행을 자행하는 문제 청소년이 되고 있다고 한다. 각종 불량 서클 학생들의 폭언, 폭행, 협박, 금품강요 등에 시달리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학생이 이어지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학교폭력의 일차적인 책임은 가해자는 물론 가해자의 부모에게 있고, 이차적으로 학교에 있으며, 그 다음에 사회와 국가와 온 국민에게도 있다. 국가는 문제 청소년을 선도하고 비행을 예방하는 대책을 내놓고, 또 자녀들의 인성을 그르치는 인터넷 욕설 방송과 저질 언어의 댓글과 폭력성 인터넷 게임과 PC방과 게임방 등 유해환경에 대한 지속적인 점검과 정화대책을 내놔야 된다. 학생인권도 고려해야 하지만 교사에게 학생을 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 정치인은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가 청소년 앞에서 가급적 막말과 폭행 등 정의롭지 못한 온갖 꼼수를 버려야 한다. 가정과 학교에서는 문제 학생을 사후에 제재하는 소극적 방법보다는 사전에 예방하는 적극적 방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가정의 달과 청소년의 달의 제반 행사가 일과성이지 않고 사랑과 존경과 축복과 배려의 마음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자녀는 부모와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교육에 힘쓰며, 학생은 스승을 존경하고, 스승은 학생을 사랑으로 가르치며, 사회와 국가는 청소년을 바람직하게 선도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글을 쓰는 일은 스트레스(stress)를 받는다. 더구나 신문(新聞)에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일은 제법 신경이 쓰인다. 글을 쓰는 것이 남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지식과 정보를 총동원(總動員)하여 힘든 시간을 거쳐 얻어낸 결실이다.
구백여(詩 제외) 편의 글을 쓰다 보니 어떤 내용은 이미 다른 글을 통해 썼던 내용인 경우도 있다. 체력과 열정이 예전과 같지 않은 터라 왕성한 활동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지혜롭게 나이에 맞는 글을, 사회에 기여하는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다.
글을 쓸 때는 참으로 힘들었지만, 이런저런 과정(過程)을 거쳐 원고(原稿)를 마감할 때는 그렇게 기분(氣分)이 좋을 수가 없다. 글을 쓰라는 사람도 없는데 왜 그리 쓰고 싶은 글이 많은지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글쓰기에 푹 빠진 지 이십여 년 지났다.
글쓰기로 더위를 이길 수 있다. 글쓰기가 아니라 해도 무엇인가에 몰두(沒頭)하다 보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삼매경(三昧境)은 잡념이 없이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이다. 그런 경지가 더위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글쓰기를 하는데 덥다는 것은 잡념에 불과하다. 글쓰기 삼매경에 빠지면 더위를 이길 수가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인간(人間)을 정확(正確)하게 만든다.
사십 년 넘게 함께 살아온 아내도 나의 글쓰기라는 중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눈총을 줄 때가 많다.
글을 쓰는 일은 극도의 긴장을 요하는 정신노동이므로 막대한 체력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이 어려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 편의 글을 쓰고 난 후 느끼는 뿌듯함과 글을 쓰며 느끼게 되는 정신의 정화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기쁨이다. 글을 쓰는 시간은 지나간 삶을 조용히 성찰하고 마음을 고요히 정돈하는 과정이며 앞으로 더 나은 삶을, 더 올바른 삶을,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의 시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신문사가 원고료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몇몇 신문사로부터 받은 원고료를 수재의연금 등의 불우 이웃 돕기 성금으로 모두 냈다. 왜냐하면 신문에 글쓰기를 사회봉사의 일환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돈을 받으면 사회봉사가 아님).
4월의 신부처럼 가볍게 걸었던 이 길, 초록의 계절이 어제인 양 눈에 선한데, 어느 사이 가을을 맞아 푸른 잎이 낙엽 되어 발아래 머문다.
낙엽 쌓인 산길을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울창했던 숲보다 가을을 즐기기라도 하듯이 산에 오르곤 했었는데, 정상에 올라 산 아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천하가 모두 내 세상 같아 기쁘다.
가을인가 했는데, 벌써 만추가 되어 초겨울의 문턱을 넘나들며 세월의 달리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하루를 보낸다.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데 말이다.
파아란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과 서산에 걸린 해를 보며 산을 내려오는데, 늦가을의 산뜻한 바람이 나의 등을 살며시 밀어준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기만 하다. 입에서 막 노래라도 나올 것처럼.
늦가을, 아름다운 단풍과 맑은 바람과 낭만과 즐거운 마음으로 가을의 서정이 하늘 아래 가득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대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 간에 지켜야 할 약속을 정해 놓았다. 그 약속을 사회규범이라고 한다. 규범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타율적 강제적 규범인 법과 양심에 따라 스스로 지켜야 하는 윤리적 자율적 규범인 도덕이 있다.
사회의 도덕적 가치를 혼란에 빠뜨리는 규범 파괴 현상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우선이고 오직 나만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다.
지금껏 사회를 도덕적인 사회로 지탱한 여러 가지 제약 중 하나가 상호성의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자신이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사람은 누구나 물질적이건 정신적이건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한 부담을 갖게 된다. 그것은 유무형의 빚으로 남아 자신이 되갚을 때까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호의적인 어떤 것을 받은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악의적인 그 무엇을 받았을 때도 같은 감정을 갖게 된다. 즉, 누군가가 나에게 피해를 입혔다면 내가 그에게 보복을 할 때까지 마음 한구석 어딘가에 복수심이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내가 다른 사람에게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언행을 했다면, 다른 사람도 내게 비슷한 응대를 할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망각한다.
자신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타인에게 불이익이나 불편을 준다면, 그것은 분명 자신에게 던지는 부메랑(boomerang)이 될 것이다.
물은 그 아래를 들여다보면 낮은 데도 있고 깊은 데도 있고 온갖 것들이 그 아래서 또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으나 수면은 언제나 수평(水平)을 이룬다.
물이 한꺼번에 많아져 급류를 이루면 수면이 높고 거칠어지는 것이 마치 인간 속의 뭔가가 넘쳐 화를 참지 못하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이 높이 보여 자신만 낮다고 생각하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폭력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물이 너무 많아 흘러넘쳐 주위를 휩쓸어 버리는 것은 좁은 마음에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기보다는 해코지를 하려거나 내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과 비교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언제든 낮은 데로 흘러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속성처럼 우리네 마음도 물을 닮으려고 애써 노력하면 겸손과 평정의 유지로 마음의 평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바람은 닿지 않는 곳, 미치지 않는 곳 없이 어디든지 간다. 때로는 살랑거리는 미풍(微風)으로, 때로는 휘몰아치는 폭풍(暴風)으로 간다.
봄날의 미풍(微風)은 마치 기분이 좋을 때 얼굴에 저절로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과 같고, 일한 후의 땀을 식혀 주는 여름철의 시원한 바람은 호탕한 웃음 같고 속 좁은 생각을 한 방에 날려버리기도 한다.
가을의 선선한 바람은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하는 어른의 고언(苦言) 같기도 하고 사내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팔등신 미녀 같기도 하다.
겨울바람은 마치 냉소나 비웃음 같다. 삭풍이 나뭇잎을 떨구거나 가지를 부러뜨리는 것처럼 말이다. 냉소나 비웃음은 우리네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고 따뜻하던 마음을 차갑게 식히기도 한다. 하지만 삭풍도 언젠가는 잦아들듯이 냉소(冷笑)나 비웃음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생각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나와 이웃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
바다는 육대주(六大洲)에서 밤낮으로 흘러들어오는 물을 모두 받아들여도 넘치지 않는다. 사람도 마음을 바다처럼 넓게 가지면 다툴 일이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가 물처럼, 바람처럼, 바다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은 나만의 부질없는 생각일까…
허영심은 사람을 수다스럽게 하고 자존심을 침묵하게 한다. 자애는 윤리적으로는 자기보존, 자기주장의 본능에 따르는 감정으로 제 몸을 스스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다소 지나치면 거만스러운 행동으로 여겨지지만, 인간의 몸을 바로 세우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마음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서양의 한 철학자는 자존심(自尊心)은 어리석은 자가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라고 했지만, 자부심(自負心)은 어떤 일에 대해서 스스로 자기의 가치나 능력에 대하여 자신을 가지는 것으로 항상 타인의 감탄(感歎)에 의해서 강화되는 특성이 있다.
때로는 자존심(自尊心)이 예의의 관계에서는 필수적인 것이며 도덕과 윤리의 뼈대가 되고 바탕이 된다. 자존심은 그처럼 우리들에게 질투심(嫉妬心)을 불러일으키지만, 또한 그 질투심을 녹이는 구실도 하여 권위로 인한 질서에도 한몫을 한다. 인간의 마음은 알아서 깨닫는 지각(知覺)이 있어 사물을 만져보기도 전에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촉각과 짐작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예민한 것은 바로 육신과 마음의 촉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한순간에 자존심(自尊心)이 붕괴되는 경우도 생긴다. 배고프고 아프고 추우면 인간의 본성(本性)은 결함을 충족시키려는 본능(本能)이 생겨 모든 것을 무시하고 죄의 길로 굴러떨어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유행하는 말로, "자존심이 밥 먹여 주나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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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단상, 새로운 희망을 노래하다
9월, 계절이 주는 성찰의 시간
9월은 유난히 깊은 사색을 불러오는 계절이다. 뜨겁던 여름은 물러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며 하늘은 높아지고 푸르러진다. 계절의 전환점은 언제나 사람의 마음에 성찰과 다짐을 요구한다. 올해의 9월 또한 우리에게는 그저 달력 속의 한 달이 아니다. 나라 안팎으로 요동치는 정세, 불안한 경제와 민생의 고통, 그리고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우리는 다시금 자신과 국가의 길을 묻고 있다. 이 가을의 총립에서 우리는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불확실성의 시대, 국민의 선택은 무엇인가
세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다. 미국과 국제정세는 언제든 긴장을 고조시키고, 글로벌 경제는 위기와 기회의 경계선에 서 있다. 수출과 내수는 활력을 잃고, 물가와 금리의 압박은 국민의 지갑을 옥죄고 있다. 9월의 하늘은 높아졌지만 국민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다. 정치권은 여전히 대립과 갈등에 매몰되어 있고, 국회는 민생보다는 정쟁의 전장으로 변한지 오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국민은 묻는다. 과연 이 나라의 선택은 옳은가. 우리는 이 길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
민생을 먼저 생각해야 할 정치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국민의 마음을 잃은 정치는 오래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정파적 이해에 갇혀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9월은 추수의 계절이다. 땀 흘린 농부가 결실을 거두듯 정치 또한 국민에게 희망의 결실을 안겨주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어떠한가. 민생지원 예산은 늦춰지고, 현장의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으로 흩어진다. 정치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바로 국민의 삶을 지키는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정치가 본래의 책무로 돌아가야 할 때다.
청년에게 희망을, 노인에게 안정을
우리 사회는 세대갈등이라는 보이지 않는 골짜기를 안고 있다. 청년들은 일자리와 미래를 걱정하고, 기성세대는 노후와 생계를 염려한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것은 바로 이 세대 간의 균형과 희망이다. 청년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사다리를 놓아주고, 노인에게는 안정된 삶ㅁ의 울타리를 제공해야 한다. 교육과 일자리, 복지와 돌봄이 제대로 작동할 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9월은 그 균형을 다시금 되새겨야 하는 계절이다.
재난과 위기의 교훈
올여름 기록적인 폭우와 폭염은 우리이게 다시금 자연 앞의 무력함을 일깨웠다.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발생한 홍수와 산사태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국민은 재난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았고, 함께 복구에 나섰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힘이다. 문제는 정부의 대비와 정책이다. 똑같은 재난을 되풀이 할 수는 없다. 재난은 언젠가 또 찾아올 것이며, 그 때를 대비하는 유비무환의 지혜가 절실하다. 9월은 ‘다시 세우는 대한민국’의 과제를 우리에게 건네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대한민국
세계 속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어느새 과거와 달라졌다. 기술과 문화, 스포츠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위험 또한 커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중동과 유럽의 불안정한 정세는 우리에게 새로운 외교적 지혜를 요구한다. 국익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우영한 외교 전략이 9월의 고제다. 국가의 생존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막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국민통합이라는 절실한 과제
지금 대한민국은 내부의 분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역과 이념, 세대와 계층을 갈라놓는 어어는 날카롭다. 그러나 역사는 분열의 끝이 어디로 가는지를 똑똑히 보여준다. 통합 없는 발전은 없다. 국민이 하나로 뭉쳐야 위기를 이겨낼 수 있다. 9월의 하늘처럼 푸르고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품을 때 비로소 새로운 길이 열린다. 지도자라면 무엇보다도 국민통합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희망을 심는 9월이 되어야
결국 중요한 것은 희망이다. 희망이 없으면 나라는 버틸 수 없다. 9월은 새로운 출발의 달이다. 더 이상 과거의 상처와 갈등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와 결단이다.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 그 길을 여는 것이 정치와 정부, 그리고 모든 사회 구성원의 책무이다.
마무리 단상
9월의 바람은 언제나 새로운 길을 묻는다. 우리는 지금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러나 역사는 늘 위기를 넘어 새로운 길을 열어왔다. 국민의 힘은 위대하고, 그 힘이 모이면 어떤 난관도 돌파할 수 있다. 올 9월, 우리는 다시금 다짐해야 한다. 서로를 믿고, 희망을 나누며, 미래를 향해 함께 걷겠다는 결연한 약속을. 그것이 바로 대한민국이 지여야할 9월의 정신이다.
202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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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의 격랑 시대, 희망의 길은 어디에
거센 격랑 속의 대한민국
지금 대한민국은 사방이 불확실성의 파고로 뒤덮여 있다. 국제적으로는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복귀와 함께 다시금 고개를 드는 관세전쟁이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으며, 지정학적 갈등과 전쟁의 그림자가 경제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노란봉투법, 방송 3법 등 사회 구조와 기업 질서에 큰 파급력을 가진 법률들이 정치권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며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더구나 최근 정상회담을 계기로 드러난 외교·안보적 긴장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양가적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격랑 속에서 민주주의 정치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고, 경제의 활력을 어떻게 회복하며, 정치 불신과 갈등을 넘어서는 길은 어디에 있는지 질문이 절실하다.
민주주의, 다시 길을 묻다
오늘날 민주주의 정치는 국민의 손으로 선출된 대표들이 국가 운영을 책임지는 제도적 틀을 갖추고 있지만, 현실은 깊은 정치 불신과 분열로 얼룩져 있다. 정책은 정쟁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국회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갈등을 재생산하는 장으로 비치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상징하는 노동 현장의 목소리와 방송 3법이 내포하는 언론 개혁 요구는 그 자체로 사회적 의미가 크지만, 이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은 국민에게 피로와 불신만을 안기고 있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대립이 아니라 조정과 합의, 그리고 국민을 향한 책임성에 있음을 다시금 성찰해야 한다.
관세 장벽, 세계를 흔들다
국제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새로운 변수를 던지고 있다. 보호무역주의의 강화는 한국 수출의 활로를 막고,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을 가속하며,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히 경제 문제를 넘어 외교·안보적 연계까지 포함한 복합적 위기다. 한국 경제는 개방성과 수출 의존도가 높아서 관세 장벽과 무역 규제의 영향에 직접 노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는 외교 다변화와 무역 전략의 정교한 조율 없이는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생존과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법과 제도의 충격, 갈등의 확산
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은 각각 노동과 언론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개혁 법안이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해석과 이해관계 속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기업계는 경영 환경 악화를 우려하며 강력히 반발하고,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언론의 공공성 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라고 맞서고 있다. 문제는 이 모든 논의가 사회적 합의와 생산적 조정의 과정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정치적 공방으로만 소모된다는 점이다. 제도의 변화는 불가피하더라도, 이를 둘러싼 갈등 관리와 사회적 수용의 과정이 결여된다면 결국 또 다른 불확실성을 양산할 뿐이다.
경제 활력
신뢰와 혁신에서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기 위한 해법은 단기적 부양책에 있지 않다. 오히려 불확실성이 일상화된 시대일수록 신뢰와 혁신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정치가 신뢰를 잃으면 기업은 투자를 멈추고, 국민은 소비를 위축시키며, 경제는 활력을 잃는다. 따라서 정부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더불어 미래 산업과 신기술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병행될 때, 한국 경제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반도체, 2차 전지, 인공지능(AI), 그리고 친환경 에너지 전환 같은 분야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중심축이 되어야 한다.
분열을 넘어, 통합의 정치로
정치 불신과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합의 정치가 필요하다. 국민은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협력하는 정치를 원한다. 국가적 위기와 불확실성이 고조될수록 정치 지도자들은 책임 있는 자세로 협력과 조정을 이끌어야 한다. 정파적 이익을 넘어선 대승적 결단, 그리고 사회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포용적 정치가 민주주의를 살리고 경제를 지탱하는 토대가 된다. 분열을 조장하는 정치적 언행은 단기적으로 지지층을 결집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민 통합과 국가 발전을 해치는 독이 될 뿐이다.
실리 외교, 안보의 균형을 세우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한국 외교·안보 전략은 더욱 유연하고 실리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미·중 갈등, 트럼프식 관세 압박,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의 긴장 등 세계 질서의 격변 속에서 한국은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유지하되, 동시에 다자외교와 경제협력의 다변화를 통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안보는 튼튼히 하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책임 있는 기여와 신뢰 구축은 한국의 외교적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할 것이다.
시민의 힘, 민주주의를 살리다
민주주의는 정치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민사회의 참여와 목소리가 건강할수록 민주주의는 살아 움직인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시민은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고, 스스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며, 공동체적 연대를 통해 사회를 지탱한다. 언론의 독립성과 책임, 시민사회의 자율적 역량,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성숙한 참여 의식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서는 힘이다.
위기를 넘어, 새로운 도약으로
불확실성은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위기와 불확실성 속에서 성장해 온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정치가 책임을 다하고, 경제가 혁신으로 응답하며, 시민이 성숙한 참여를 보여준다면 불확실성의 시대는 오히려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며, 불신이 아니라 신뢰이고, 혼란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며 국민 통합을 이뤄낼 때, 대한민국은 불확실성을 넘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2025-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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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백세시대의 대비와 취업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이발소의 이발사가 전화를 걸어와 과(過)하다고 할 만큼 흥분된 어조(語調)로 울분(鬱憤)을 토했다고 한다.
정오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어린이가 이발소로 들어와 할아버지가 이발과 염색을 같이 하면 얼마냐고 묻길래 2만원이라고 했더니,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 근처에 더 헐한 이발소가 없느냐고 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 봤다.
멋진 중대형 승용차의 운전석에는 어린이의 아버지가, 뒷좌석에는 별(別)로 밝지 못한 얼굴색을 한 노인이 예쁘게 미용까지 한 애완견을 안고 무표정하게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어린이의 물음과 이 같은 장면을 목격한 이발사는 현재의 상황에 짐작이 갔다. 할아버지의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아버지가 손자를 시켜 이집 저집 알아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발사의 격노한 어조(語調)가 전화기를 통해 귀가 아프도록 들려왔다고 한다. 노인네가 정말 이발비가 없어 헐한 곳을 찾는다면 오시라고 해 무료로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멋진 승용차(乘用車)에 없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자식(子息)을 시켜 저런 되먹지 못한 행동을 하는 걸 보니 남의 일 같지 않아 울화(鬱火)가 치민다는 것이다.
어린 손자 녀석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까. 자신도 나중에 아버지의 이발비를 아끼기 위해 이곳저곳 알아보러 다닐까. 요즘 애완견 털 깎는 비용도 소형견은 3만원~5만원, 대형견은 10만원도 하는데 자신의 아버지 이발비 2만원도 아깝다니, 정말 세태를 탓할 수만도 없고….
옛날 어느 고을에 총명하고 마음씨 착한 봉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우연히 안방에서 부모님이 나누는 밀담을 듣게 됐다.
그날 밤 봉이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내일(來日)이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대로 할아버지를 산에다 버리고 올 것이 뻔했다. 봉이는 할아버지가 가여워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기르실 때는 얼마나 귀여워하셨을까. 얼마나 소중(所重)한 자식(子息)으로 생각하셨을까. 이를 생각하니 부모(父母)님이 미워졌다. 그러다가 봉이는 문득 한 가지 묘안(妙案)이 떠올랐다.
드디어 산속 깊은 곳에서 아늑한 장소(場所)를 발견(發見)했다. 저 바위 아래가 좋겠군. 아버지는 중얼거리며 그곳에다 지게를 내려놓았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지게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잠든 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한 아버지는 봉이를 데리고 재빨리 그곳을 떠나려 했다. 아버지, 저 지게는 가지고 가야지요. 아니다 할아버지를 지게에서 내려놓으면 깨실지도 모르니 우리는 그냥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 아버지는 봉이의 팔을 끌었다. 안 돼요 아버지, 저 지게를 꼭 가져가야 해요. 봉이는 고집스럽게 버텼다. 아니 왜 꼭 지게를 가져가겠다는 거냐. 아버지가 짜증스러운 듯이 말했다. 당연하잖아요. 이다음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늙고 병들면 저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산에다 버릴 때 저 지게를 써야지요.
마음씨 곱고 지혜로운 아들 덕분에 자신의 불효를 깨닫게 된 아버지는 그 뒤 누구보다도 할아버지를 극진히 모시는 효자(孝子)가 됐다. 봉이의 부모님은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으면서 어찌 자식이 나에게 효도하기를 바라겠는가.라고 했던 옛 성현의 가르침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효도는 백행의 근본이며,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바로 불효이다. 그러나 작금의 사회 현실은 다소 괴리가 있다. 이미 도래한 초고령사회, 더 이상 개인의 효도만으로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년~1963년생)의 떠오르는 고민은 노부모 부양이다. 부양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지금, 이제 내 노후를 스스로 책임지는 셀프부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으레 자식이 모시는 것이 우리가 오랫동안 지켜온 부모 부양의 방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통적인 부양 방식을 고집하는 가정은 이제 거의 없다. 현재 대한민국 노인가구의 대부분은 자식과 따로 살고 있다. 자식이 부모와 따로 살면서 부모를 돌보는 형태로 부양 방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시간적 여유와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한집에서의 부양은 불가능하다.
셀프부양을 준비하지 않으면 장수(長壽)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더 이상 자식에게 부양을 기대할 수 없다면 과연 우리의 노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진정한 셀프부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개인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 제도적인 뒷받침, 그리고 인간적이고 따뜻한 정서적 부양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머지않은 장래에 백세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을 꿈꾸며 불로초(不老草)를 찾아 헤매던 중국의 진시황(秦始皇)은 50세에 생(生)을 마감했지만, 인류의 오랜 꿈인 장수(長壽)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백세시대는 인류의 재앙이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정부와 국민은 백세시대에 걸맞은 사회안전망 구축과 노후대책을 세우고 셀프부양을 준비해야 한다.
취업(就業)은 의사나 판검사가 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대기업에 취업하면 최선이고, 사무관(5급 공무원)으로 취업하거나 교사로 취업하거나 중견기업에 취업하면 차선이며, 9급 공무원으로 취업하거나 순경으로 취업해도 선망의 대상이다.
■ 참고 사항
1. 대통령 연봉(2025년) : 2억6천258만1천원
2. 의사 연봉(2022년, 전공의 제외) : 3억100만원
3. 의사 연봉(2025년 전문의) : 4억원 이상(추정액)
4. 판사 월급(기본급, 1호봉, 2025년) : 3,536,500원
5. 검사 월급(기본급, 1호봉, 2025년) : 3,536,500원
6. 사무관(5급 공무원) 월급(기본급, 1호봉, 2025년) : 2,799천원
7. 교사(기본급, 9호봉(일반직 공무원 1호봉), 2025년) : 2,366천원
8. 주사(6급 공무원) 월급(기본급, 1호봉, 2025년) : 2,309천원
9. 9급 공무원 월급(기본급, 1호봉, 2025년) : 2,001천원
10. 순경 월급(기본급, 1호봉, 2025년) : 2,001천원
11. 경위 월급(기본급, 1호봉, 2025년) : 2,353천원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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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석을 돈벌이로 둔갑시킨 사회의 민낯
차별을 돈으로 포장한 야구장의 씁쓸한 풍경
대한민국 프로야구의 열기는 뜨겁다. 특히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는 매 경기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지역민들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그 화려한 조명 뒤에는 씁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장애인석을 가리고 ‘특별석’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해 이익을 챙긴 한화 구단의 행태다. 이는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다.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람권이라는 기본권을 짓밟고, 사회적 약자를 향한 최소한의 배려마저 외면한 반인권적 행위다. 야구장이 단순한 스포츠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포용과 평등을 실현해야 하는 공공적 성격을 지닌 공간임을 생각한다면, 이번 사태는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장애인석 둔갑, 드러난 구조적 모순
대전시의 현장점검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2층 장애인석 90석이 인조 잔디로 덮여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고, 휠체어 접근로는 이동형 좌석이 막고 있었다. 이는 명백히 의도적인 구조 변경이었다. 나아가 구단은 이를 특별석으로 둔갑시켜 경기당 500만 원, 총 2억 원이 넘는 부당 이득을 취했다. 두 차례에 걸친 시정 명령에도 불구하고 구단은 이를 무시했고, 경찰 고발 직전에야 뒤늦게 원상복구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약자를 향한 권리 침해를 ‘이익 창출의 수단’으로 삼은 행위는 기업 윤리의 붕괴이자, 사회적 신뢰를 저버린 배임적 행위다.
장애인단체의 성토와 시민사회의 분노
대전 지역 44개 장애인단체가 참여한 연대는 “단순한 관리 소홀이 아니라 인권침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들은 2억 원의 부당수익을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에 환원할 것을 요구했고, 시각 확보, 동반자석 설치, 안전요원 배치 등 실질적 개선책을 촉구했다. 시민사회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팬 단체와 KBO 감시단까지 나서 구단의 사과와 리그 차원의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이쯤 되면 이는 특정 구단의 문제를 넘어 한국 스포츠계 전반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대전시의회 황경아 의원은 "장애인석을 기만하며 시민도 기만하는 아주 사기 행각의 극치라고 보고 있다"라고 질타했다. 구단은 횡령, 배임, 사기, 장애인 편의증진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화의 뒤늦은 사과, 그러나 남는 불신
한화 구단은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뒤늦게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한 언어의 사과가 아니다. 구단은 “이번 일을 계기로 장애인 친화적인 구장으로 만들겠다”라고 약속했지만, 이미 신뢰는 크게 무너졌다. 시민들과 장애인단체들은 “두 차례 시정 명령을 무시하다가 고발 직전에야 복구 의사를 밝힌” 구단의 태도에 대해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사과는 ‘발각되었기 때문에 하는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사과는 잘못을 뼛속 깊이 새기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실천적 다짐에서 비롯된다.
스포츠의 본질은 ‘평등’이다
스포츠의 기본 정신은 존중과 배려다. 선수나 팬,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을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동일한 공간에서 같은 감동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야구장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장애인석은 단순한 좌석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약자를 향한 존중의 척도다. 이를 상업적 수단으로 변질시킨 이번 사건은 스포츠 정신을 근본부터 훼손한 행위다. “차별은 곧 폭력”이라는 국제 스포츠 윤리를 다시 새겨야 한다.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이번 사태는 한 구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장애인에 대한 무심함’이 빚어낸 결과다. 아직도 많은 공공시설과 문화시설이 장애인 접근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의 문제다. 법과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천되지 않는 현실, 보여주기식 복지와 형식적인 점검으로는 진정한 변화가 어렵다. 장애인석 사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인권 감수성이 부족한지를 드러내는 거울이다.
책임 있는 변화와 제도 개선을
한화 구단은 구호에 그치지 말고, 부당 이득을 사회에 환원하는 실질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KBO와 지자체 또한 단순한 행정 지시를 넘어 상시적 점검 체계와 강력한 제재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장은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리그 차원의 접근성 가이드라인과 포용성 강화 정책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더불어 장애인단체와의 지속적 협의, 시민사회와의 투명한 소통이 동반되어야 한다.
인권 없는 수익은 공허하다
기업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라지만,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엄을 침해한다면 그 이익은 공허한 모래성에 불과하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기업은 결코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없다. 한화 사태는 우리 사회 모든 기업과 기관에 던지는 경고다. 약자의 권리를 무시한 채 얻은 부당한 이익은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과 불신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함께하는 사회를 위한 성찰
야구장의 장애인석은 단순한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하나의 경기를 즐기며 사회적 연대와 통합을 확인하는 자리다. 이를 돈벌이로 둔갑시킨 이번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얼마나 진심으로 배려하고 있는가.
한화생명 볼파크 사태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 ‘포용과 평등의 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이제는 말뿐인 사과를 넘어 실천적 변화로 나아가야 한다.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이며, 스포츠의 감동 또한 그런 사회에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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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진정성, 정치의 길을 묻다
국민의 여름을 달구는 녹색 그라운드
대한민국의 여름은 언제부턴가 프로야구의 함성과 함께 시작된다. 1982년 원년 개막 이래,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국민 생활 속 깊숙이 자리 잡았다. 그라운드 위의 땀방울과 타구음, 응원가와 환호성은 세대와 계층을 넘어 하나로 어우러진 축제의 장을 만들어왔다.
올해 역시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의 관람석은 연일 매진 행렬이다. 표를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리는 시민들이 부지기수이고, 중고 거래 시장에서는 웃돈까지 얹어 표를 사려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하고 전국의 야구장은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집계에 따르면 올 시즌 누적 관중 수는 벌써 작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고, 시즌 종료까지 1,000만 관중 돌파도 거론된다.
프로야구는 이렇게 ‘공정한 경쟁’과 ‘열정의 승부’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매력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관중이 말한다, 야구 인기의 궤적
관련 자료들을 종합하면 1982년 원년인 출범 첫해는 140만 명대 동원, 경기당 평균 6천 명 수준이었으나, 성장기(1990년대–2000년대 초)에는 1995년 5백만 명 돌파하고 2009~2012년까지 최고 전성기 기록했다. 코로나 충격과 회복기인 2020~21년에는 급락 후에 2023년 다시 급반등하여 전체 프로스포츠 관중 51% 증가 중 야구 31.5%를 차지했다. 2025년 최근에는 전반기에만 700만 관중 돌파하고 경기당 평균 17,266명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고 그 행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런 데이터가 전하는 메시지는 첫째 팬들의 사랑은 경기장에서 증명된다는 사실이다.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도 프로야구는 계속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으며 축적된 문화 콘텐츠로 성장해 온 원동력이 되었다. 두 번째는 정치와 대비되는 공정한 시스템이다. 팬들은 결과와 과정 모두를 존중하고, 실패에도 재도전의 열망을 보인다. 이는 프로야구가 지닌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다. 세 번째는 시대적 열기와 미래 정치의 교훈이다. 야구장은 팬의 지지를 기반으로 정직하고 규칙적인 경기를 펼치며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곧 ‘정치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며 국민이 바라는 자세’라는 메시지를 함축적으로 전하고 있다.
정치, 그라운드의 정신을 잃다
그러나 야구장 밖으로 눈을 돌리면, 그라운드의 정신과는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은 여전히 변법과 음모, 부정부패로 얼룩져 있다. 권력의 그늘 속에서 은밀히 거래되는 이권, 국민의 눈을 가리는 왜곡된 여론전, 정정당당함 대신 정치공학적 계산이 지배하는 의사결정. 이 속에서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임계점을 넘어섰다.
프로야구에서는 판정이 오심이면 곧바로 비디오 판독으로 바로잡히지만, 정치판에서는 명백한 잘못도 책임을 지는 이는 드물다. 그라운드에서는 규칙을 어기면 곧바로 퇴장하지만, 정치에서는 규칙 위반조차 해석과 변명으로 덮여버린다. 이 차이가 바로 국민의 환호와 외면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원년의 기억, 초심의 상징
1982년, 대한민국은 경제성장의 열기 속에서 프로야구라는 새로운 축제를 시작했다. 동대문야구장과 잠실야구장에서 울려 퍼진 첫 플레이볼의 함성은 단순한 경기 개막이 아니었다. 그때의 선수들은 승패 이전에 ‘야구를 한다’라는 자부심과 설렘으로 가득했다. 초창기 구단 운영은 미숙했고 시설도 열악했지만, 그라운드 위에서는 오직 승부와 명예만이 존재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민주화의 길을 걸으며 국민이 바랐던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원칙과 진심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정치권은 ‘초심’을 잃고 권력 유지와 세력 확장에만 몰두하게 됐다. 프로야구 원년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이유는, 바로 그 초심이 변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정함이 만드는 신뢰
야구가 사랑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공정함’이다. 심판의 판정은 비디오 판독으로 검증할 수 있으며, 승부조작은 엄격한 처벌로 뿌리 뽑으려 한다. 규칙 위반이 발각되면 스타 선수라도 예외 없이 징계를 받는다. 팬들은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기에 경기 결과를 믿을 수 있고, 패배에도 승복할 수 있다.
정치는 이와 반대로 간다. 여론조사 조작, 부당한 입법 절차, 제 식구 감싸기. 국민이 믿고 싶은 ‘판정 시스템’이 부재하다. 스스로를 견제하는 내부의 룰이 없다면, 그 정치판은 이미 게임의 규칙을 잃은 ‘무법지대’가 된다.
승패를 인정하는 용기
야구에서는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승패를 인정하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자세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 드물다. 선거 패배는 곧바로 책임 공방과 분열로 이어지고, 정권 교체 후에는 전 정권을 향한 보복 정치가 반복된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정책의 연속성과 국가의 비전이 사라지고, 정치는 끝없는 ‘복수극’이 된다. 팬들은 패배한 팀을 향해 “다음에 잘하자”라고 격려하지만, 국민은 정치권에 더 이상 그런 격려를 보내지 않는다. 승복과 재도전의 용기를 잃은 정치에는 미래가 없다.
정치가 야구에서 배워야 할 것
정치가 야구에서 배워야 할 것은 많다. 첫째, 명확한 규칙과 공정한 집행이다. 정치에서도 룰 위반에는 예외 없는 처벌이 필요하다. 둘째, 성과보다 과정의 정직성이다. 정치 과정이 투명해야 국민이 결과를 받아들인다. 셋째,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도전하는 문화다. 이는 국가 발전의 동력이 된다. 야구는 해마다 새로운 시즌을 시작하지만, 정치판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변화와 개혁을 거부하는 정치 구조 속에서 국민의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새로운 정치 시즌을 위하여
올해 프로야구의 뜨거운 열기는 그라운드 밖의 정치 현실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쪽은 매진 행렬 속에서 국민을 하나로 묶고, 다른 한쪽은 분열과 냉소 속에서 국민을 갈라놓는다. 정치는 더 이상 변명과 음모로 국민의 시선을 속일 수 없다. 이제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마치 1982년 원년의 선수들이 그랬듯, 명예와 자존심을 걸고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해야 한다.야구의 한 경기는 9회로 끝나지만, 정치의 경기는 국민이 심판하는 한 계속된다. 그 심판이 최종적으로 내릴 판정은, 지금 정치가 어떤 플레이를 펼치느냐에 달려 있다.
결론 – 정치의 ‘홈런’을 기다린다
그라운드의 선수들이 방망이를 휘두르는 순간, 관중석은 숨을 죽인다. 그 순간의 한 방이 팀의 운명을 바꾸듯, 정치에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정책의 홈런’이 필요하다. 국민은 완벽한 정치인을 원하지 않는다. 다만 정직하게 뛰고, 규칙을 지키며, 승패를 인정할 줄 아는 지도자를 원한다. 그게 야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삶의 태도이며, 대한민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길이다. 이제 정치가 이율배반과 표리부동한 허상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정정당당한 그라운드의 정신을 품고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때다. 국민은 여전히 그 첫 번째 ‘정치의 홈런’을 기다리고 있다.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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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교체 이후 맞는 첫 지방선거, 민심의 바람이 분다
임기 말, 시계 초침은 빠르게 움직인다
2025년 8월 현재, 전국 지방자치단체장과 시군구 의원들의 임기는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내년 6월 3일 치러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는 단순한 지역 선거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정권 교체 후 처음 치러지는 지방선거라는 점에서, 중앙정치의 변화가 그대로 지방정치에 투영될 수밖에 없다.
시·군·구청장, 광역·기초의원 등 지방 권력의 주인들이 지난 3년간 어떤 성적표를 받아왔는지, 주민들은 이미 조용히 매기고 있다. 임기 초의 약속이 얼마나 지켜졌는지, 민생 현장에서 주민 목소리가 얼마나 반영됐는지, 공약이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았는지가 냉정하게 평가될 것이다.
물밑에서 꿈틀대는 내년 준비
표면적으로는 ‘아직 1년 가까이 남았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많지만, 현장은 다르다. 이미 물밑에서는 자천타천의 인물들이 내년을 겨냥한 행보를 시작했다. 지역의 행사장과 주민 모임에 얼굴을 비추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을 강화하며,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등 사실상의 ‘프리캠페인’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내년 선거는 대규모 물갈이가 불가피하다”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권 교체로 인한 정치 환경 변화가 그 배경이며, 지역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도전장을 내밀 채비를 하고 있다.
예산 낭비와 불협화음, 주민 분노의 불씨
주민들이 가장 예민하게 지켜보는 대목 중 하나는 ‘세금 사용’이다. 불필요한 축제, 보여주기식 행사, 실효성이 떨어지는 사업에 수억, 수십억의 예산이 투입되는 현실은 주민들의 불신을 키워왔다.
특히 올해 들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내부 갈등과 불협화음이 공론화되며 행정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공약 이행률이 저조하거나, 집행부와 의회가 정쟁에 몰두해 지역 현안이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자 주민들 사이에서는 ‘선거로 심판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권 교체와 선거 지형의 변화
이번 지방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정권 교체 이후 첫 지방선거’라는 점이다. 중앙정부의 국정 운영 성과와 방향이 지방선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정권 교체 직후 국민들은 변화와 개혁을 기대하지만, 동시에 현 정권의 초기 성과와 정책에 대한 평가도 병행된다. 이에 따라 여당은 국정 성과를 앞세운 안정론을, 야당은 현 정권의 미흡함을 부각하며 견제론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구도는 전국 곳곳에서 ‘바람’과 ‘역풍’을 동시에 몰고 올 것이다.
주민 심판론의 확산
주민들은 단순히 중앙정치 구도에 휘둘리지 않는다. 지난 3년간 피부로 느낀 변화, 생활 속 불편, 정책의 실효성이 투표 판단의 기준이 된다.
지역의 도로, 상하수도, 복지, 교육, 일자리 창출 등 생활형 공약이 얼마나 지켜졌는지가 중요하며, 예산 낭비와 특혜 의혹, 공직 기강 해이 등은 ‘심판 명분’이 된다. 이 때문에 일부 현직들은 ‘위기의식’을 갖고 있지만, 반대로 주민들은 ‘이제는 교체할 때’라는 생각을 굳히는 경우도 많다.
돌풍의 조건
내년 선거가 ‘돌풍’으로 기록될지 여부는 몇 가지 변수에 달려 있다. 첫째, 신인 정치인의 등판이다. 지역 기반은 약하지만 참신한 이미지와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가진 인물이 등장할 경우, 구도 자체를 흔들 수 있다. 둘째, 연합 구도의 형성이다. 지역의 정치세력 재편이나 시민사회단체의 후보 단일화가 이뤄진다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셋째, 전국적 이슈와의 결합이다. 물가, 부동산, 교육, 환경 등 전국적 현안이 지역 민심과 맞물리면 표심의 이동 폭이 커진다.
정치의 본질은 ‘주민 행복’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의 하부구조가 아니다. 오히려 주민 생활과 가장 가까운 정치이며, 그만큼 책임감이 무겁다. 하지만 현실은 종종 이 원칙을 잊는다. 선거철만 되면 쏟아지는 장밋빛 공약과 보여주기식 행정은 주민 신뢰를 갉아먹는다.
정치의 본질은 권력 유지를 위한 경쟁이 아니라, 주민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데 있다. 공약은 구호가 아니라 계약이며, 임기 동안 지켜야 할 약속이다. 내년 지방선거는 이 단순한 진리를 시험하는 장이 될 것이다.
이번 선거가 던질 메시지
만약 내년 선거에서 대규모 물갈이가 현실화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인물 교체가 아니라 지방정치 문화의 변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주민들은 정치인들에게 ‘우리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반대로 현직이 재선 또는 3선에 성공한다면, 그것은 성과와 신뢰를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어느 쪽이든 내년 선거는 지방정치의 새로운 방향성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유권자의 깨어있는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지방선거는 유권자가 주인공이다. 투표율이 낮으면 변화는 더디고, 기득권은 공고해진다. 내년 6월 3일, 한 표의 가치는 단순한 정치 선택이 아니라 우리 마을과 도시, 그리고 생활의 변화를 결정하는 힘이다.
지방정치는 멀리 있는 권력이 아니라, 골목길 조명 하나, 버스 노선 하나를 바꾸는 실질적 권력이다. 그렇기에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의 깨어있는 선택이 곧 지역의 미래를 바꿀 것이다.
맺으며 – 변화의 바람을 준비하라
2026년을 맞이하는 길목에서, 내년 6월의 지방선거는 단순한 절차가 아니다. 주민의 심판과 선택이 동시에 작동하는 날이며, 정치인들에게는 가장 냉정한 성적표가 주어지는 날이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 불협화음, 미완의 공약이 심판받을 것이고, 주민과 함께 호흡하며 성실히 일한 정치인은 보상받을 것이다.
정치는 결코 정치인만의 것이 아니다. 주민의 삶이 곧 정치이고, 정치의 품격은 주민의 품격에서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가 돌풍이 될지, 변화의 서막이 될지는 오직 주민의 손에 달려 있다.
2025-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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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쿠폰,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전 국민 소비쿠폰, 기대 속에 시작되다
지난 7월 21일부터 본격 지급된 전 국민 대상 ‘민생지원 소비쿠폰’은 정부가 내놓은 대규모 민생 회복 정책의 핵심축이다. 비수도권 3만 원과 농어촌 인구감소지역 5만 원이 추가 가산되어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1인당 최대 55만 원이 지급된다, 무려 총 13조 9천억 원이라는 전례 없는 예산이 투입된 이 정책은 물가 상승과 경기침체 속에서 소비 여력을 키워 내수경기를 살리겠다는 목적 아래 시작됐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높은 지원이 주어지며 생계안정과 소비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하려는 의지가 엿보였다.
일부 마트, 프랜차이즈 직영점, 편의점 등은 쿠폰을 활용하는 젊은 층의 발길이 늘며 빠르게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서울 강남, 홍대, 대전 유성의 장대동 먹자골목 등은 주말마다 몰려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며 ‘소비쿠폰 특수’를 체감하고 있다. 특히 직영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카페의 경우, 쿠폰 사용이 간편하다는 점 때문에 젊은 층의 이용률이 눈에 띄게 상승하고 있다.
편중된 소비 효과, 재래시장은 외면당하다
그러나 소비쿠폰이 전 국민에게 지급됐다는 말과 달리, 그 실질적 효과는 모든 시장에 고르게 퍼지지 않고 있다. 특히 각 지자체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기대한 재래시장, 전통시장, 영세상점들의 회복세는 여전히 미미한 상태다. 대전 중앙시장, 대구 서문시장, 서울 망원시장 등 일부 시장 상인들은 “쿠폰 쓴다는 손님은 많지 않고, 정작 현금이나 카드만 고집하는 기존 단골도 줄어들었다”라며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소비쿠폰의 사용처에 대한 홍보 부족, 사용 편의성의 차이, 그리고 중장년층 고객층 중심의 재래시장 특성과 맞물려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다. 대부분의 재래시장 상점은 POS 시스템이나 키오스크·테이블 오더 등이 없거나 결제방식이 단순해 모바일 기반 소비쿠폰 사용이 불편하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일부 영세상인은 QR코드 결제조차 익숙지 않아 ‘쿠폰 받고도 쓸 데가 없다’라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소비 양극화 현실화
재래시장과 영세상인의 상대적 소외는 단지 결제 인프라의 문제만은 아니다. 소비패턴 자체가 프랜차이즈 중심, 젊은 층 중심, 도심 상권 중심으로 쏠리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주말이면 대전 유성구 장대동 일대 주점과 식당가엔 젊은 인파가 몰려 대기 줄이 늘어설 정도였지만, 그 바로 옆 전통시장 구역은 여전히 한산한 풍경을 보이고 있다. 편의점도 본사 직영점과 가맹점 사이에 매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기술과 제도에 친화적인 업종만이 소비쿠폰 효과를 누리고, 취약한 상권과 낙후된 상점들은 오히려 체감도 없이 소외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소비쿠폰의 본질, 정책 목적과 괴리
소비쿠폰 정책은 단순한 소비 촉진이 아니다. 본래의 의도는 서민경제 회복과 골목상권 지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소비 흐름을 보면 본래 정책 목적과 괴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특히 일부 자치단체가 대형마트나 브랜드 매장에서도 소비쿠폰 사용을 허용한 것은 의도치 않게 정책 취지를 무색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실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재래시장 상인은 “우리는 쿠폰 혜택 대상도 아니고, 손님도 늘지 않는다”라며 되려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정책 설계 초기 단계에서의 섬세한 소비 동선 분석, 대상별 구체화가 부족했음을 드러낸다.
소비쿠폰 정책의 허점과 맹점들
먼저 홍보 부족이다. 쿠폰 사용처, 신청 방법, 제약 조건 등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실제 사용률이 낮은 계층이 존재한다. 특히 고령층과 정보 취약계층은 정보 접근 자체가 어렵다. 다음은 사용처 제한이 불명확하다. 가맹점 등록이 안 된 영세상점은 쿠폰을 받을 수 없어 정책에서 소외된다. 이외에도 결제 인프라 격차가 크다. 모바일 기반 결제 시스템에 익숙지 않은 시장 상인들이 많아, 소비자와 상인의 인식 간 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다 지역 편차가 드러나고 있다. 대도시 중심의 상권은 수혜가 집중되고, 농촌 및 소도시는 정책 실감도가 낮다.
진짜 소비진작을 위한 대책은 무엇인가?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보다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첫째, 소비쿠폰 사용 가맹점 등록 절차를 간소화하고, 재래시장 상인들을 대상으로 QR결제, 모바일 결제 교육 및 장비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둘째, 쿠폰 사용처에 대한 지역별 상한선 도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즉, 일정 비율은 전통시장·소상공인 업소에서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셋째, 쿠폰 사용 후 인센티브 제공 방식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재래시장 사용 시에는 추가 포인트 제공 등의 보상을 마련함으로써 소비자 유인을 높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쿠폰 이외에도 영세상인을 위한 임대료 지원, 세금 감면 등 정책적 연계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단발성 소비 진작만으로는 소상공인 경제를 회복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책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정책은 늘 숫자보다는 사람을 향해야 한다. 소비쿠폰 정책이 단지 통계상 ‘소비 증가율’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 효과는 찻잔 속 태풍에 불과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소비가 누구에게 가고 있는가, 어디서 소비되고 있는가, 어떤 경제 층이 그 혜택을 체감하는가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특히 이번 소비쿠폰은 코로나19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민생정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목적과 효과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으려면, 정책의 설계부터 실행, 사후 보완까지 정치적 의도보다 국민 체감이 우선되어야 한다.
민생의 온도는 재래시장에서 드러난다
진정한 민생은 정부의 탁상이 아닌 전통시장 골목길에서, 식당 주방에서, 작은 편의점 카운터에서 체감된다. 소비쿠폰은 그 민생을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의 중심을 더 작고 약한 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소비쿠폰은 ‘돈을 뿌리는 정책’이 아니라, ‘국민을 살리는 정책’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2025-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