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중산층, 이미 ‘계층 고착 사회’인가

김헌태논설고문

2026-01-30 15:53:05

 

 

 

 

노력해도 오르지 못하는 사다리 앞에서

대한민국 사회를 지탱해 온 가장 든든한 버팀목은 중산층이었다. 경제성장의 과실을 공유하고, 소비와 저축을 동시에 책임지며, 민주주의의 안정판 역할을 해온 계층. 그러나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중산층은 더 이상 ‘기준’이 아니라 ‘기억’이 되어가고 있다. 통계 속 숫자 이전에, 거리의 표정과 가계부의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고금리·고물가·고주거비라는 삼중고 속에서 중산층은 더 이상 버티는 계층이 아니다. 밀려나는 계층이다. 문제는 단순한 경기 침체가 아니라, 계층 이동의 사다리 자체가 고장 나고 있다는 데 있다. 이 사회는 과연 아직도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는 사회’인가. 아니면 이미 굳어버린 ‘계층 고착 사회’로 접어든 것은 아닌가.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꿈을 크게 말하지 않는다. 집을 갖고 싶다는 말조차 사치처럼 들리는 시대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두려움이 되었다. 한때 중산층의 일상이었던 것들이 이제는 ‘특별한 삶’이 되었다.

부모 세대는 말한다. “그래도 너희는 우리보다 낫다”라고. 그러나 청년들은 안다. 출발선이 다르고, 도착점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은퇴 세대 역시 알고 있다. 평생 일해도 안심할 수 없는 노후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세대 간의 이해가 아니라, 세대 공통의 불안이 이 사회를 덮고 있다.

 

 

흔들리는 중산층의 토대, 생활비가 아니라 생존비가 된 시대

한때 중산층의 기준은 명확했다. 안정된 직장, 자가 주택 혹은 내 집 마련의 희망, 자녀 교육에 대한 투자, 노후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 그러나 지금 이 네 가지 조건은 동시에 충족되기 어려운 꿈이 됐다. 월급은 제자리인데, 이자는 치솟고 물가는 생활을 압박한다. 주거비는 ‘비용’이 아니라 ‘장벽’이 되었다.

고금리는 가계의 숨통을 조이고, 고물가는 일상의 여유를 앗아간다. 외식 한 끼가 부담이 되고, 병원비와 교육비는 지출이 아닌 불안이 된다. 중산층의 지갑은 얇아졌고, 심리는 이미 서민층으로 내려앉았다. 숫자로는 아직 중산층이지만, 체감은 이미 그렇지 않다.

통계는 이미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가구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한국은행 자료는 가계부채가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에 근접했음을 보여준다. 고금리 기조 속에서 이자 부담은 중산층 가계의 소비 여력을 직접적으로 잠식하고 있다.

주거비 부담은 더욱더 치명적이다. 수도권 아파트 중위가격은 중산층 소득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상승했다.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비율(PIR)은 이미 ‘비정상 구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단순한 부동산 문제가 아니라, 계층 이동의 통로가 차단되고 있다는 구조적 신호다.

 

노력의 가치가 의심받는 사회

더 심각한 문제는 희망의 상실이다. “열심히 해도 안 된다”라는 체념이 사회 전반에 퍼지고 있다. 과거에는 공부와 성실함이 계층 상승의 통로였다. 지금은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부모의 자산, 출발선의 차이, 지역과 인맥이 결과를 좌우한다는 인식이 고착화되고 있다.

청년들은 묻는다. 왜 시작부터 다른가. 왜 같은 노력에 다른 결과가 돌아오는가. 이 질문에 사회가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할 때, 노력은 미덕이 아니라 허상이 된다. 계층 이동이 막힌 사회는 결국 활력을 잃고, 분노와 냉소만 남는다.

 

청년의 좌절, 은퇴 세대의 불안

지금의 위기는 특정 세대의 문제가 아니다. 청년은 진입하지 못하고, 은퇴 세대는 버티지 못한다. 청년들은 취업 문턱 앞에서 좌절하고, 설령 취업에 성공해도 주거와 결혼, 출산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세대’가 되고 있다.

청년층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공식 수치를 훨씬 웃돌고, 첫 취업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지고 있다. 반면 은퇴 세대는 준비되지 않은 노후 앞에서 불안에 떤다. 평생 일해도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렵고, 자산은 줄어든다. 기대수명 연장과 불안정한 연금 구조 속에서 노후 빈곤의 문턱에 서 있다. 자식에게 손 벌리기도, 사회에 기대기도 어려운 세대. 청년과 노년이 동시에 흔들리는 사회는 중산층의 붕괴를 넘어 구조적 위기다.
 

 

계층 고착 사회의 위험한 신호

계층 고착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다. 사회 통합의 균열이다.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규칙을 신뢰하지 않는다. 공정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고, 법과 제도는 냉소의 대상이 된다. 이는 정치적 극단화로 이어지고, 사회적 갈등은 증폭된다.

중산층이 무너지면 민주주의도 흔들린다. 중산층은 절제와 균형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사라진 사회는 양극단만 남는다. 가진 자의 불안과 못 가진 자의 분노가 충돌하는 사회는 결코 안정될 수 없다.

계층 고착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정책과 선택의 결과다. 주거, 교육, 노동, 복지의 구조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특히 ‘노력의 보상 구조’를 회복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성실함이 배신당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책무다. 중산층 붕괴는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니라, 정치가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방치해 온 구조적 실패의 결과다.
청년에게는 출발선의 격차를 줄여주고, 중장년에게는 재도전의 기회를, 노년에게는 최소한의 존엄을 보장해야 한다. 이것이 포퓰리즘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투자다.

 

우리는 어떤 사회를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대한민국은 지금 갈림길에 서 있다. 중산층이 사라진 사회를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다시 세울 것인가. 계층 고착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구조를 바꿀 용기를 낼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정책 이전에 사회의 태도에 달려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조용하지만 깊은 질문 앞에 서 있다. 이 사회는 과연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약속할 수 있는가. 태어나기 전 이미 결정되는 인생, 아무리 애써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구조를 물려줄 것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세울 용기를 낼 것인가.

중산층은 숫자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노력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성실함이 배신당하지 않는 사회라는 확신이 중산층을 만든다. 그 믿음이 무너질 때, 국가는 존재하지만 사회는 해체된다.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성장률이 아니라 이동의 가능성이다.

사다리가 없는 사회는 게으른 사회가 아니다. 노력할 이유를 잃은 사회다. 대한민국이 아직 희망의 나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면, 중산층을 다시 세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경제의 문제이자, 민주주의의 문제이며, 우리 모두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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