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붕괴의 시대, 우리는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김헌태논설고문

2026-01-23 13:59:48

 

 

 

성적은 남았지만, 사람은 사라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교실이 흔들리고 있다. 교단 위의 교사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고, 교실 아래의 학생들은 배움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성적은 관리되지만 인격은 방치되고, 제도는 남았지만 교육의 본질은 흐릿해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교육 위기’가 아니라 ‘교육 붕괴’의 문턱에 서 있다.

학력 저하만의 문제가 아니다. 교권 붕괴, 학습 무기력, 관계 단절, 책임 회피가 동시에 나타나는 복합적 위기다. 교육이 더 이상 사람을 키우지 못하고, 시스템을 유지하는 행정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자조가 현장에서 터져 나온다.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 앞에 서 있다.

 

지식은 넘치지만, 배움은 사라졌다

오늘날 학생들은 과거 어느 세대보다 많은 정보를 접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의 지식을 손안에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배움의 깊이는 얕아지고 있다. 외우는 것은 많아졌지만, 생각하는 힘은 약해지고 있다.

시험을 위한 공부는 남아 있지만, 삶을 위한 학습은 실종됐다. 정답을 맞히는 능력은 평가되지만, 질문을 던지는 능력은 외면받는다. 교육이 ‘사고의 훈련’이 아니라 ‘정답의 전달’로 전락한 결과다.

 

 

무너진 교실, 흔들리는 교권

교육 붕괴의 가장 뼈아픈 징후는 교권의 붕괴다. 교사는 더 이상 교육의 중심이 아니다. 민원과 고소, 감시 속에서 교단에 서야 하는 현실은 교육을 소명으로 삼아온 이들을 침묵하게 만든다.

교사가 위축되면 교육은 기능을 상실한다. 훈육 없는 자유는 방종이 되고, 책임 없는 권리는 혼란을 낳는다. 교권은 교사의 특권이 아니라 학생의 학습권을 지키는 최소한의 울타리다. 그 울타리가 무너질 때, 가장 큰 피해자는 결국 아이들이다.

 

성적 중심 교육이 남긴 상처

우리는 오랫동안 성적을 교육의 목적처럼 여겨왔다. 등수와 점수는 아이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고, 비교와 경쟁은 일상이 되었다. 그 결과 아이들은 배우는 기쁨보다 실패의 공포를 먼저 배웠다.

성적 중심 교육은 많은 아이들을 낙오자로 만들었다. 잘하는 소수만 주목받고, 다수는 조용히 뒤처진다. 교육이 사람을 살리는 제도가 아니라, 줄 세우는 시스템이 되었을 때 아이들의 자존감과 삶의 의지는 함께 무너진다.

 

AI 시대, 지식 교육은 더 이상 답이 아니다

인공지능은 이미 인간의 지식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계산, 암기, 분석은 기계가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다. 이런 시대에 여전히 지식 전달에만 머무는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

AI 시대의 교육은 ‘무엇을 아는가?’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가르쳐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맥락을 이해하는 힘, 윤리적 판단력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다. 교육이 이 방향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기술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소외될 것이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다움’이다

지금 교육이 회복해야 할 핵심은 인간성이다. 공감하는 능력,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 실패를 견디는 힘은 시험지로 측정할 수 없지만, 삶에서는 가장 중요한 능력이다.

교육은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지식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올바른 가치관과 책임감,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지 않는 교육은 사회를 불안정하게 만든다.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며, 그 안에서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은 학습된다.

 

가정·학교·사회가 함께 무너지고 있다

교육 붕괴는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은 교육을 학교에 맡기고, 학교는 책임을 회피하며, 사회는 결과만 요구한다. 이 악순환 속에서 아이들은 방향을 잃는다.

부모는 성적 관리자가 되고, 교사는 행정 담당자가 되며, 아이는 평가 대상이 된다. 교육 공동체가 역할을 잃을 때,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제대로 가르침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

 

다시 질문해야 할 교육의 본질

지금 우리는 교육의 목적을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교육의 성공인가, 아니면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완성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뀌지 않는 한, 교육 붕괴는 멈추지 않는다.

교육은 단기 성과로 평가할 수 없는 장기 과제다. 한 세대를 키우는 일은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과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 쉽게 교육을 정책과 여론의 도구로 소비해 왔다.

 

교육을 살리는 마지막 기회

아직 늦지 않았다. 교사의 전문성과 권위를 회복하고, 학생의 책임과 권리를 균형 있게 가르치며, 부모와 사회가 교육의 동반자로 다시 서야 한다. 교육을 둘러싼 신뢰가 회복될 때 교실도 살아난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지식 이전에 사람을, 경쟁 이전에 존엄을, 속도 이전에 방향을 가르쳐야 한다. 교육은 미래를 만드는 가장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투자다.

 

교육이 무너지면, 국가는 버틸 수 없다

교육은 국가의 뿌리다. 그 뿌리가 썩으면 어떤 제도와 기술도 나라를 지탱할 수 없다. 지금의 교육 붕괴는 단순한 제도 실패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경고다.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교육을 다시 사람의 일로 되돌릴 것인가, 아니면 붕괴를 방치한 채 다음 세대에 부담을 떠넘길 것인가. 교육을 살리는 일은 미래를 살리는 일이다. 지금, 그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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