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경제 한복판에서 되새기는 명절의 무게와 공동체의 책임
경기 침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운 채 또 한 번의 설 명절이 다가왔다. 거리의 상점들은 여전히 한산하고,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깊어만 간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라는 이른바 ‘3고(高)’의 늪은 쉽게 빠져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서민의 삶은 하루하루가 버거운데, 명절이라는 이름은 오히려 부담과 걱정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은 어김없이 찾아왔고, 우리는 다시 한번 이 명절의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설은 단순한 휴일이 아니다. 한 해의 출발선에서 가족과 공동체, 그리고 나라의 안녕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에서 설은 ‘기대’보다 ‘근심’이 앞서는 날이 되어버렸다. 차례상 비용은 매년 기록을 갈아치우고, 선물 세트 앞에서 지갑을 열기까지의 망설임은 길어졌다. 명절 특수라는 말조차 사라진 지 오래다. 경제 지표는 숫자로 말하지만, 체감 경기는 마음으로 느껴진다. 그 마음이 지금, 너무 무겁다.
민생의 체온이 말해주는 냉혹한 현실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내놓는 각종 수치는 이미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소비는 위축되고, 가계부채는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내려올 줄 모른다. 중산층은 갈수록 얇아지고, 취약계층은 버틸 여력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명절을 앞두고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발걸음이 예전만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흥정의 소리보다 “그냥 구경만 하러 왔다”라는 말이 더 자주 들린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설 명절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제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웃음과 덕담이 오가야 할 자리에 계산기와 걱정이 먼저 올라온다. 부모는 자식에게 넉넉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만, 마음만 앞설 뿐 형편은 따라주지 않는다. 청년들은 고향행 티켓 앞에서 망설이고, 노부모는 “오지 말아라”라는 말로 자식의 부담을 덜어주려 한다. 이것이 오늘의 대한민국이 설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그래도 설이 갖는 상징적 무게
그럼에도 설은 여전히 특별하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고 삶이 팍팍해도, 설은 우리를 멈춰 세운다. 바쁜 일상 속에서 미뤄두었던 안부를 묻고,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잇게 한다. 이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다. 설은 ‘소비의 명절’이기 이전에 ‘연결의 명절’이다. 공동체가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며, 우리가 완전히 각자도생의 사회로 흘러가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특히 어려울수록 명절의 의미는 더 깊어진다. 풍요로울 때는 당연하게 여겼던 밥 한 끼, 가족의 웃음, 서로의 안부가 위기의 순간에는 큰 위로가 된다. 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은 누구와 이 시간을 나누고 있는가.” 경제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는 이 질문이야말로 명절이 지닌 본질적 가치다.
정치와 행정, 명절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가
문제는 이 모든 부담을 국민 개인에게만 떠넘기고 있는 정치와 행정의 태도다. 명절이 다가올 때마다 쏟아지는 ‘민생 안정 대책’은 늘 익숙한 문구의 반복에 그친다. 일회성 지원, 보여주기식 행사로는 체감 경기를 바꿀 수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정책이다. 설을 앞둔 이 시점에서 정치권은 과연 무엇을 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정쟁에 매몰된 정치, 책임을 회피하는 행정은 명절의 무게를 더 무겁게 만든다. 민생을 말로만 외치면서 실제 삶의 현장에는 무관심한 태도는 이제 더 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설은 정치에도 시험대다. 국민의 삶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아니면 명절 인사말로 모든 책임을 대신하려 하는지, 그 진정성이 드러나는 시기다.
연대와 배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가치
이럴 때일수록 사회 전체의 연대가 중요하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정부는 실효성 있는 지원을, 지역사회는 서로를 돌보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 설 명절은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이웃의 안부를 묻고,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것만으로도 공동체의 온도는 달라진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위기를 겪어왔다.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팬데믹까지, 그때마다 대한민국은 버텨냈다. 그 힘의 원천은 결국 사람, 그리고 서로를 향한 신뢰였다. 설 명절은 그 신뢰를 다시 꺼내는 시간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해서 마음조차 가난해질 필요는 없다.
위기의 시대, 설이 던지는 조용한 메시지
이번 설은 화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박함 속에 담긴 의미는 오히려 더 크다. 불필요한 허례허식을 내려놓고, 본질에 집중하는 명절이 되어야 한다. 설은 소비의 경쟁이 아니라, 마음의 회복이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물건이 아니라, 더 단단한 관계다.
경제는 언젠가 회복의 국면을 맞이하겠지만, 공동체가 무너지면 회복은 더디다. 설 명절은 그 사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어려울수록 함께 가야 멀리 갈 수 있다는 오래된 진리를 다시 꺼내 보여준다. 이번 설이 각자의 형편은 달라도, 서로의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차가운 경제의 한복판에서 맞는 이번 설이기에, 그 의미는 더욱 절실하다. 설은 여전히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밥상 앞에서, 가족의 얼굴을 보며, 그리고 이웃을 떠올리며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설 명절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