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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말하는 자는 공공의 적이다
어린이들의 동화책에도 ‘양치기 소년’으로 잘 알려진 그리스의 이솝우화가 담겨 있다. 거짓말이 나쁘다는 풍자와 교훈으로 가장 손꼽히는 이야기다. 쉽고도 흥미를 더한다. 장난삼아 주변을 골탕 먹이기를 좋아하던 양치기 소년을 통해 거짓말을 하면 어떤 결과가 벌어지고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다주는지를 일깨워주는 이야기다. 양치기 소년은 한가로움을 달래기 위해 늑대가 나타났다고 하자 마을 어른들이 달려왔으나 거짓말이었고, 재미를 느낀 소년은 또 한 번 늑대가 나타났다고 했고 사람들이 달려왔지만, 또다시 거짓말에 속고 말았다. 이번에는 진짜 늑대가 나타나 양치기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쳤지만, 마을 사람들은 거짓말이라며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결국 양들은 늑대의 밥이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다. 무려 약 2500년 전의 그리스에서 구전되어 오는 이야기가 정리되어 이런 이솝의 우화를 탄생시켰다고 하니 예나 지금이나 거짓말이 나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이 양치기 소년 우화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올바르게 살라는 뜻이지만 아이보다 어른들이 거짓말을 더 잘하는 것이 문제다. 특히 사회지도층들이 악의적인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소설책 쓰듯이 꾸며대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매우 크다. 정신 분야에서는 자기가 꾸며낸 거짓말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공상허언증’이라고 하는데 이런 증상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을 왜곡해 거짓말을 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악의적이 아닐 수 없다. 작은 거짓이 큰 거짓을 낳고 악의적인 거짓으로 둔갑하고 양치기 소년처럼 거리낌 없이 반복되고 있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좀먹고 그 폐해가 심각하다.
대한민국의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 모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에서 제기한 대통령과 법부무 장관의 심야 황당 술 파티의 이야기가 그렇다. 당사자들은 물론 제삼자들도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던져 파문이 큰 것이다. 문제는 이 국회의원은 벌써 현 법무부 장관과 관련하여 두 번이나 거짓말을 한 과거 전력이 있고 이번이 세 번째라는 점이다. 이는 면책특권이 될 수 없다며 시민단체가 고발해 그 진위가 밝혀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에도 황당한 거짓말로 판명된다면 그 결과는 단순치 않을 것 같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런 문제를 제기한 것이 정당하다는 듯 주장하고 있으니 이 또한 헷갈리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조속히 그 결론을 내려야 한다. 황당한 이야기에 국민이 오히려 분노하고 있다. 양치기 소년을 방불케 하는 허구 줄거리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정권에 타격을 주고자 하는 악의적인 음모가 숨어있다면 이는 철퇴를 내려야 할 것이다. 그 책임이 무겁다. 공상허언증의 심리상태를 점검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런 인물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국회에서 국정을 다룬다는 것이 불행이고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짓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사실과 어긋난 것이나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을 일컫는다. 또한 이치(二値) 논리에서 진릿값의 하나로 명제가 진리가 아닌 것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가짜를 말한다. 선과 악을 논한다면 악에 포함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나쁜 것이다. 성경에도 거짓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거짓 행위를 삼가도록 규정하고 이를 매우 악한 것으로 간주한다. 거짓이 올바르지 않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있다면 이는 정상이 아니다. 현실에 있을 수 없는 거짓이나 과장된 것을 말하는 것은 성실치 못한 행위로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명분상으로는 ‘정직하게 사는’ 것이 선이라고 한다면 거짓말을 둘러싼 무수한 이야기들은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거짓으로 남을 등쳐먹고 사기를 치며 이웃들에게 고통을 주는 행태는 곧 범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거짓이 곧 범죄라고 한다면 악의적인 거짓말이 결코 단순 사안이 될 수 없음을 말해준다. 재판장에서도 거짓 증언을 엄히 다스리고 있다. 사실처럼 꾸몄다고 그것이 곧 진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들통이 나게 되고 이른바 개망신을 자초하는 것이 곧 거짓이다.
기소된 국회의원들이 마치 탄압을 받는 것처럼 둘러대는 것도 일종의 거짓이다. 지금 내로라하는 국회의원들이 검찰의 수사를 받거나 기소가 되어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마치 피해자 흉내를 내고 있다. 국민을 대상으로 거짓을 말하고 있다. 만일 검찰과 경찰이 아무 죄가 없는 사람을 수사한다면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경찰과 검찰이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지도자들이라는 사람들이 거짓을 말하고 상대를 음해하는 악질적인 행태를 서슴지 않는다면 이는 단죄되어 마땅하다. 범죄행각에 대한 거짓이 폭로될 때마다 국민은 경악하고 있다. 길길이 뛰면서 기자회견을 하고 억울하게 탄압을 받고 있다는 식이니 참으로 가소롭다. 거짓이 거짓을 낳고 있으니 양치기 소년이 이제는 한두 명이 아닌 것 같아 나라가 걱정이다. 모든 범죄행각과 황당한 거짓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자들을 단죄하여야 한다. 거짓으로 포장된 국회의원이나 정치지도자, 사회지도층은 국민 앞에 나설 자격이 없다. 양치기 소년처럼 국민에게 피해를 줄 뿐이다. 공인으로서 거짓을 말하는 자는 공공의 적이다.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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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일자리속에서 더욱 소외되는 청년 취준생
코로나19(COVID-19) 이후 일상회복으로 일자리가 늘었음에도 청년들은 여전히 취업난에 허덕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취업자 증가폭은 전년동월 대비 80만7000명으로, 8월 기준으로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대치였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8월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2.1%로, 전년동월 대비 0.5%포인트 떨어지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직과 구직으로 발생하는 일시적 마찰적 실업 등을 제외하면 ‘완전고용’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대 청년들의 사정은 다르다. 올 상반기 전체 실업률은 평균 3.3%에 그쳤지만, 같은 기간 청년(만 15~29세) 실업률은 평균 6.9%에 달했다. 7월과 8월 각각 전체 실업률이 2.9%, 2.1%로 떨어지는 동안 청년 실업률은 6.8%, 5.4%로 낮아지는 데 그쳤다.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구직활동을 취업준비생을 포함한다면 이러한 수치를 더욱 올라간다.
공장에서 단순 노무직을 하면서 20대 초반을 보내던 A씨는 적은 월급으로 생활하기에도 바쁜 삶을 살면서 불현 듯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을 떨쳐버릴 수 없는 나날이 지속되었다. 한달 한달 이렇게 살다가는 결혼도, 내집 마련도 어려울 것 같아서 고민을 반복하다가 인생의 중대한 길목에서 회사를 그만두게 되는 중대한 선택을 하였다. 그 후, P대학의 1년 과정의 전문기술 과정에 입학을 하였고, 향후 미래계획으로 유망 자격증을 취득하여 전문가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자격증 취득에 몰두하기 시작하였다. 기능사 자격증을 몇 개 취득하며 취업의 문을 두드렸으나 기능사 자격증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 단계 높은 산업기사 자격증에 목표를 두고 산업기사 자격증을 몇 개월만에 2개를 취득하였으나 높은 취업의 문턱에 좌절을 하고 말았지만 자신의 미래를 향해 노력중이다.
실제로 취업 포탈인 잡코리아와 아르바이트 포탈 알바몬에서 취업준비생 6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취업에 성공할 자신이 없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남들에 비해 부족한 스펙 때문’이라는 응답(복수응답)이 60.7%로 가장높게 나타났으며, ‘ 취업 경쟁이 더 치열할 것 같아서’라는 응답이 57.6%로 뒤를 이었다(YTN, 2021.6.23.). 전문기술과정에 다니며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밤낮없이 열심히 하고 있는 A군처럼 지금 현재 한국 사회에서 많은 청년들이 취업 스펙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 전례없이 일자리가 넘쳐나는데도 청년 실업률이 낮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젊은 청년들의 일자리 눈높이가 상향되서 일까? 우리 한국 사회의 청년은 공무원을 선호하면서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변화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스펙문화는 자리를 찾고.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는걸까?
청년의 취업, 일자리 관련 정책의 역할은 제대로 기능을 하는 걸까?
높아져만 가는 실업률과, 대책 없는 일자리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자식, 형제자매, 부모님의 이야기이며, 청년 고용 및 경제정책은 우리 미래를 설계하는 초석이 되고, 미래의 국가를 떠받치는 기반이라 할 수 있다. 높은 스펙을 통하여 만족하는 일자리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면서, 제공된다고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의 청년은 스펙 쌓기에 몰입하고 있다. 스펙쌓기 공화국으로 가지 않길 바랄뿐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로 인한 일자리 양극화에 따른 '미스매치'(불일치)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강요하기 보다는 보다 한국사회가 나서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이중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22-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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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
폐장을 앞두고 주말을 맞아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가 열리는 계룡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전국에서 어린이와 함께 찾은 가족 단위 관람객들로 전시장마다 크게 붐볐다. 무엇보다 전시관마다 흥미진진한 전시물과 다양한 볼거리가 잠시도 눈길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관람객들을 사로잡았다. 야외 전시장에 마련된 전차와 장갑차 등 군장비탑승 체험은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위용을 자랑하는 무기장비 야외 전시도 생동감을 더했다. 여기에다 병영훈련체험과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사격체험, 헬기탑승 체험, 비행 조종 체험 등은 그야말로 환상의 세계로 이끌었다. 군복도 착용하며 실제 군인이 되는 느낌도 체험하는 현장에는 대기자들이 줄을 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계속 연기되다가 그 위용을 드러낸 군문화엑스포는 한마디로 장관을 연출했다. 야외에는 푸드트럭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했다. 전시장마다 흥미를 더하는 전시 품목들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특히 첨단기술로 과학화된 군 장비들은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에게도 놀라움을 더했다. 볼거리와 먹거리,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어우러진 군문화엑스포는 계룡대 현장을 뜨겁게 달궜다.
지난 7일부터 화려하게 개막해 계룡시 계룡대 활주로 일원에서 23일까지 17일간 다채롭게 펼쳐진 군문화엑스포는 그 자체가 성공작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우리 국군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평화에 대한 의식을 고취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K-Military, 평화의 하모니’란 주제가 함축하는 것처럼 이번 엑스포는 많은 군 문화 정보를 제공하고 전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다. 세계 유명인사의 전쟁 관련 어록도 전시돼 많은 의미를 시사해 줬다.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남긴 말이 관람객들에게 전쟁의 의미를 한층 더 깊이 새겨주었다. “우리가 전쟁을 끝내지 않으면, 전쟁이 우리를 끝낼 것이다."(Mankind must put an end to war, or war will put an end to mankind.) 전쟁을 경험한 우리에겐 더욱 절실하게 다가서는 내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6.25 전쟁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다시금 당시 전쟁의 참혹상을 보여준 전시물은 그 자체가 체험교육의 현장이었다.
이번 군문화엑스포가 어린이들에게 더욱 인기를 끌었던 것은 현장 체험의 공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어린 시절부터 새롭게 익히고 저마다 추억의 엑스포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행사는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와 함께 코로나로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기에 충분했다. 어린이들의 해맑은 모습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고공낙하 훈련 등 흥미진진한 프로그램들이 어린이들을 매료시켰다.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매김할 것 같다. 영화에서나 본 엄청난 무기 장비들이 선보이고 장갑차들도 현장에서 운행 시연 행사가 펼쳐졌다. 육해공군 해병대의 모든 것이 새롭고 흥미를 더했다.
현대로템의 전차, 장갑차 모형과 웨어러블 로봇, 한국항공우주산업의 조종 훈련 장치의 시연과 체험행사에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대우조선해양의 잠수함과 드론 관련 업체, 인공지능업체, 무인항공기 등에 이르기까지 민간업체와 방산업체들이 선보인 4차 산업융합관의 전시물도 그 고도의 신기술력과 첨단기술이 관람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국내외 최대규모의 군과 방산 관계자 참여를 통한 4차산업 비즈니스의 연계 장으로 체험의 공간도 마련됐다. 군문화엑스포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었던 것은 충청남도와 계룡시, 조직위, 군, 유관 기관단체와 업체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인 협력으로 다채로운 콘텐츠를 제공했기 때문으로 평가된다. 향후 무한한 가능성을 더해주는 엑스포로 기대를 모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관군이 함께 이룬 성공적인 이번 엑스포는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그려내는 군문화엑스포는 우리 국군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유비무환의 소중한 자세를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전쟁은 힘이 없는 민족과 나라에 재앙처럼 다가선다는 역사적 교훈과 함축의미가 담겨 있다. 이번 군문화엑스포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국방과 안보 의식을 한층 드높이고 어른들에게도 우리나라 군대의 위상과 자유와 평화를 위한 우리의 자세를 새롭게 일깨웠다.
전시관 벽면에는 ‘끝나지 않는 위기‘라는 전시 문구가 경각심을 던져준다. 함께 첨언하고 있는 글이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말해주고 있다. ”북한은 여전히 끊임없는 도발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북한의 도발을 경계하고 강력한 국방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번 엑스포는 아직도 끝나지 않는 위기 상황에서 이처럼 국방과 국가안보를 위해 유비무환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가치임을 재삼 일깨우고 있다. 이런 값진 메시지를 던져준 2022 계룡세계군문화엑스포는 성공적인 엑스포로 모두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훌륭한 엑스포를 선보인 관계자와 조직위 측의 헌신적인 노고에 감사하며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2022-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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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대한민국 국민은 분노한다
대한민국이 바람 잘 날 없다. 정치판이 그려내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난장판 그대로다. 꼬투리에 꼬투리를 물고 연일 싸움판이다. 한마디로 추태를 보이고 있다. 집권당인 여당은 여당대로 집안싸움에 콧잔등 아물 날이 없다. 이런 여당을 향해 야당은 연일 각종 공세를 펼치며 흠집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대통령 부인의 주가 조작이니 논문표절이니 뭐니 흘러간 노래를 끊임없이 불러대고 있다. 식상할 정도다. 이것도 먹히지 않으니 이제는 친일 논쟁으로 케케묵은 레퍼토리를 들고 나오고 있다. 북한은 틈만 나면 미사일을 쏘아대고 심지어 전투기까지 동원해 무력 시위를 벌이며 핵 위협도 불사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북한을 향해서 야당은 이렇다 할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전개하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에는 게거품을 물고 친일 논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 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그렇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북한에 접수당하라는 뜻인가 묻고 싶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들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처절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방사포를 쏘아대고 무력 시위를 벌이는 북한이 누구를 위협하는지 모른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정치인이고 인물이다.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쏠 때 북한 편을 들었다고 자신들을 제외시키고 쏠 것이라 생각하면 이는 천부당만부당한 것이다. 더더욱 우리의 위협을 당연시하거나 외면한다면 이는 적과의 내통자이자 간첩일 뿐이다.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노리는 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언행을 일삼는다면 이는 여적죄로 다스릴 일이다. 내 나라 정치인이 내 나라 국민을 핵과 미사일로 위협하고 도발하고 있는 적을 감싸고 옹호한다면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국민 배반자이자 매국노다. 정쟁을 벌여도 국가안보를 놓고 싸우는 어리석은 정치인은 애국이나 국민을 논할 자격이 없다. 이런 정치인들의 준동을 지금 국민은 싸늘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선놀음에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작금의 나라 꼴이다. 국회의 국정감사장은 이념논쟁의 장이 되어 버리고 언론들은 갈지(之)자 행보를 하고 있다.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정도 언론의 길을 걸어가야 할 일부 메이저 언론들이 언제부터인가 삐딱선을 걷고 있다. 참으로 심각하다. 이들은 국회의 권위도 무시할 지경이다. 심지어 과거에는 검찰과 관련한 조작적 편파보도로 개망신도 당했다. 언론이 언론이기를 거부하고 끊임없이 국민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하는 보도를 서슴지 않고 있다. 과거에는 먹혔지만, 인터넷 시대인 지금은 어림없는 작태다. 국민이 더 잘 안다. 작금에 대한민국은 언론의 춘추전국 시대를 맞고 있다. 15일 기준 대한민국의 정기간행물 등록현황을 보면 일반일간신문이 345개, 인터넷 신문 1만 899개, 인터넷 뉴스 서비스 288개, 잡지 등 정기간행물 9,916개 등 2만4,533개에 달한다. 일 년 사이에 3%에 육박하는 708개의 언론사가 늘었다. 이 가운데는 인터넷 신문의 증가율이 82%를 넘고 있다. 한마디로 차고 넘는 것이 언론사다. 너도나도 기자들이다. 생존경쟁도 그만큼 치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언론 상황에서 이른바 일부 메이저 언론들이 가소로운 보도 행태로 국민을 우롱하고 있으니 매스컴론 기초 공부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에서 있을 법한 작태를 멈추지 않는다면 일부 메이저 언론의 개혁이 불가피해지는 듯하다. 편파보도를 일삼고 국가 안위를 위협하는 언론은 이미 국민을 위한 진정한 공익 언론의 길을 포기한 것이다. 그것이 신문이건 방송이건 인터넷신문이건 예외가 없다. 언론의 자유는 정도를 벗어나면 이미 언론의 횡포이자 언론의 사기 생각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나라와 국민 불행만을 자초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15일 주말 카카오톡이 판교데이터센터 화재로 장시간 불통이 되어 난리가 났다. 12년 만의 최장기간 서비스 장애로 기록되고 있다. 10여 시간 만에 복구했지만, 그것도 완전 정상화가 아니다. 처음에는 북한해킹 아니냐는 반응들이었다. 미사일과 방사포를 펑펑 쏘아대고 전투기로 무력 시위를 벌이고 있는 북한의 행각이 이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시국이 이렇게 불안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데도 우리나라 국회와 국회의원들만 으르렁거리며 싸움판에 몰입하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어느 나라 국회고 국회의원이고 여당이며 야당인지 모를 정도다. 과거 이게 나라냐고 소리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이 그런 때다. 대통령과 부인을 틈만 나면 물어뜯고 나랏일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다. 불법 정치인을 수사하면 정치 탄압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 또한 목불인견이다. 물가가 치솟고 금리가 오르며 서민 경제가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매화타령만 일삼고 있다. 300명의 그 많은 국회의원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질 않는다. 친일 타령이나 하고 정치 탄압이니 뭐니 하는 자들만 보인다. 여기에 여당의 전직 대표는 추잡한 성 상납 취지의 무고죄로 검찰에 송치되고 야당의 대표는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되고 각종 불법 사실이 수사대상에 올라 있다. 서해 피격공무원의 실상도 감사원을 통해 밝혀지면서 충격을 더 하고 있다. 온통 난마처럼 얽혀있는 대한민국의 자화상이 참으로 안타깝다. 한마디로 난장판 대한민국이다.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는 국민만 불안한 나날을 보낼 뿐이다.
지금 남북 분단의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남의 일처럼 쳐다볼 일이 아니다. 조선 시대 노론소론 남인북인의 당파싸움을 연상시키는 정치인들의 행각이 우려된다. 만일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 불행을 자초하는 정치 행각을 멈추지 않는다면 위기 극복을 위해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2024년 22대 국회는 무능력하고 빈 깡통같이 요란한 허상의 국회의원들을 모조리 물갈이해야 할 것 같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교만하고 부정부패한 지방자치단체의 장들도 마찬가지 퇴출 대상이다. 인사 전횡을 일삼는 단체장들도 예외가 아니다. 분노한 국민은 난장판 대한민국을 그려가는 중앙이나 지방 정치인들 모두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길 촉구한다. 이제라도 상대방의 탓만 하지 말고 자신들의 일그러진 추한 자화상을 살펴라.
2022-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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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협받는 평화를 지키는 길
지난 2월 24일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이후 벌써 8개월이 다 되고 있다. 그동안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처음에 쉽게 끝날 것처럼 보였으나 아이러니하게도 군사 대국이라는 러시아가 오히려 패색이 짙어가고 있다. 급기야 핵무기 사용 카드를 들이밀고 있다. 필사즉생이라는 각오로 임하는 우크라이나군의 전투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러시아 군인들의 모습은 마치 오합지졸이란 말이 어울릴 듯싶을 정도다. 러시아 본토에서는 징집령이 내려진 가운데 30만 명을 차출했다고는 하지만 자원입대가 아닌 차출이다. 심지어 징집령을 피해 러시아 대탈출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여기에는 푸틴의 무모한 전쟁 놀음도 함께 하고 있다. 세계평화를 비웃는 안하무인의 모습이 세계인을 분노를 사고 있다. 푸틴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놓여있다. 과거 크림반도를 빼앗아 재미를 붙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우습게 알고 벌인 전쟁이다. 금방 잡아먹을 줄 알고 벌인 한마디로 명분 없는 전쟁이다. 이번 전쟁은 그동안 러시아가 세계 제2위의 군사 대국인 줄 알았지만, 종이호랑이고 허풍이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초기에 점령한 땅에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는 러시아 군대의 탐욕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절박감을 가진 우크라이나 군대의 애국심을 이기지 못하는 형국이다. 다시 탈환한 땅에서는 민간인 대량 학살이 자행된 비극의 현장이 드러나고 있다. 민간인들에게조차 참혹한 살상이 자행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에게는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우리나라 6.25전쟁을 일깨우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괴군의 느닷없는 남침으로 서울이 함락되고 전국이 초토화되었다. 6.25의 인명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3년간의 전쟁으로 150만 명의 사망자와 360만 명의 부상자, 1,000만 이산가족, 10만 명의 전쟁고아를 낳았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통계로 본 6·25전쟁을 보면 한국군과 유엔군의 인명피해는 전사 17만5,801명, 부상 55만4,202명, 실종 및 포로 4만2,605명 등 모두 계 77만2,608명이다. 한국군은 전사 13만7,899명 부상 45만742명 실종 및 포로 3만2,838명 등 모두 62만1,479명이다. 유엔군은 전사 3만7,902명 부상 10만 3,460명, 실종 및 포로 9,767명 등 모두 15만1,129명이다. 한마디로 어마어마하다. 여기에다 교량과 항만 및 산업시설이 크게 파손되었다. 군사시설로 전용된 학교 및 공공시설도 파괴되어 국민 생활의 터전과 사회·경제체제의 기반이 황폐해졌다. 산림도 역시 황폐해져 민둥산으로 변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바로 육탄용사들이자 호국영웅인 6.25참전용사들의 애국심과 희생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현충원에 잠들어 있다. 일부는 아직도 구순을 넘기고 생존해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도 정전상태에서 남북으로 분단된 채 전쟁 발발 73년째를 맞고 있다.
작금의 남북상황은 마치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속에서 살얼음판을 걷는 평화행진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한동안 평화공존을 부르짖으며 비핵화의 대형 쇼가 펼쳐졌지만, 이것은 금방 그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문제는 정치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이 핵의 위험성을 간과하며 국방과 안보를 우습게 아는 언행을 일삼고 있다는 점이다. 북은 계속 미사일을 쏘아대고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친일 논쟁이 등장하고 있다. 북은 9일 새벽 탄도미사일 2발을 쐈다. 최근 보름 사이 7차례다. 폭격기와 전투기 12대로 공중위협도 벌였다. 북은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하고 7차 핵실험도 하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일 합동훈련을 놓고 시대착오적인 친일 논쟁이나 벌일 때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민의 평화를 볼모로 정쟁이나 일삼고 국가 안위를 도외시하는 행태를 벌인다면 이는 참으로 위험천만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우리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북을 이롭게 하는 발상이라고 한다면 이는 여적죄일 뿐이다. 안보를 무시하고 내부분열을 조장하여 나라의 위험을 자초하는 어리석은 행태는 지양해야 한다. 전쟁을 무슨 아이들 장난감 놀이 정도로 생각하는 정치지도자들이 있다면 나라의 안위를 위해 퇴출당해야 마땅하다. 국가안보에는 여야나 너와 내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젤렌스키대통령의 지도력을 중심으로 한 우크라이나를 보면 답이 나온다. 뭉쳐야 한다. 미사일을 펑펑 쏘아대고 있는데도 폭죽놀이 정도로 생각한다면 이는 제정신이라고 할 수 없다. 6.25전쟁의 비극을 경험한 민족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극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목도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 종북좌파들이 득세하고 있다. 나라의 안위는커녕 사회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마치 남한 속의 북한이 또 있나 싶을 정도다. 북한에서 미사일을 쏘아대도 아무런 말도 없다. 핵으로 무장하여 우리를 위협한다고 해도 마이동풍이다. 핵전쟁의 위협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이를 수수방관하며 오히려 우리 측의 한미 군사훈련을 멈추라고 하고 있다. 이제는 한미일 합동훈련도 시대착오적인 친일 논쟁으로 몰고 가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할 시점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저항하기는커녕 딴전을 피우는 것은 본질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거세다. 말장난으로 국민을 지킬 수 없다. 안보태세를 강화하는 일이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작금에 보여주는 북의 행태는 평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틈만 나면 북의 미사일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상황에서 국가 분열을 초래하고 배부른 매화타령이라 하고 있다면 이는 무엇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행태다. 작금의 상황이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비정상적 상황이다. 말로만 안보니 하면서 마냥 평화 타령을 할 시기가 아니다. 안보 위협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위기감이 날로 고조되고 있다.
6.25전쟁 세대들이 아직도 생존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무슨 일이 생기면 여야정치지도자들은 현충원을 달려가 참배를 한다.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참배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6.25를 경험한 세대들과 참전용사들은 지금도 엊그제 전쟁을 치른 것 같은 마음으로 참배를 한다. 전쟁은 두 번 다시 이 땅에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국영웅들의 위대한 정신이 지켜온 대한민국에 비극적 상황은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들이다. 서울 용산 삼각지의 육탄용사호국선양회에는 매주 수요일 6,25전쟁으로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을 추모하는 추도식이 열리고 있다. 이 자리에는 94세의 참전용사, 학도병, 퇴역 장성, 예비역, 회원들이 참석해 호국영령의 넋을 달래며 그 참뜻을 기리고 있다. 전국에 기념탑도 세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지난달 29일 강릉에서는 영천전투를 승리로 이끈 8사단 호국영웅들을 기리는 추도식이 거행되어 그 숭고한 뜻을 되새겼다. 6.25의 전쟁이 끝나 70년을 지나고 있지만,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같은 민족이 총부리를 겨누다가 이제는 미사일과 핵으로 일촉즉발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사태까지 빚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6.25전쟁을 잊은 채 종북을 일삼고 있는 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다. 육탄용사호국정신선양회가 매주 또는 추도 일에 나라를 지키다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뜻을 기리며 자유대한을 지키고자 하는 뜻을 드높이고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 지금 대한민국은 북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것은 물론 내부로부터 총질하는 종북세력으로부터 평화를 위협받고 있는 형국이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보듯이 평화는 자신의 힘으로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의 오늘의 평화는 6.25전쟁 참전 영웅들이 지켜온 위대한 업적이다. 이런 소중한 평화를 지키는 길은 말로만이 아닌 유비무환의 안보태세를 행동으로 보여주며 굳건히 갖추는 것이다. 참혹한 전쟁과 평화는 너무나 극명한 세계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6.25전쟁의 참상을 뼈저리게 경험한 우리에게 북은 물론 종북세력의 망상을 경계하고 작금의 북핵과 미사일로 위협받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더욱 정신을 차리라는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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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 세종시 축제여 영원하라
뉴욕필하모닉 센트럴파크 공연이 3년 만에 이루어져 성황리에 마쳤다. 지난 5월 15일 맨해튼 센트럴파크에서 3년 만에 열린 뉴욕필하모닉 ‘콘서트 인 더 파크’ 공연을 찾은 5만여 명의 뉴요커들이 초여름 밤의 그레이트론을 가득 메웠었다. 특히 이날 공연엔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뉴욕필과 협연을 펼쳐 뉴요커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김 바이올리니스트는 센트럴파크에서 얍 반 츠베덴이 지휘한 뉴욕필하모닉과 협연했다. 막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모습에 관람객들은 환호했다. 김봄소리는 뮌헨 ARD 국제 콩쿨로 시작해 줄리어드 스쿨 콩쿨, 몬트리올 국제 음악 콩쿨 등에서 화려한 수상 경력을 갖은 우리 대한민국의 보배같은 연주자다.
뉴욕의 센트럴파크는 1873년 16년의 공사 끝에 완공된 미국 최초의 대형 도시공원이다. 150년의 역사를 가지며 현대 도시공원의 시발점이자 대명사라고 평가받고 있다. 이곳은 평지처럼 보이지만 작은 구릉지대와 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이곳은 베데스타 테라스와 ‘더몰(The Mall)이 있어 이름모를 연주자들이 공원관리사무소에 신고만 하면 얼마든지 공연을 할 수 있다. 우리 예술가들이 부러운 이유가 된다. 여하튼 센트럴파크에는 인공 호수와 연못, 여러 개의 산책로, 2개의 빙상장, 동물원, 정원, 야생동물 보호구역, 넓은 자연림이 있다. 더구나 외부 노천극장과 델라코트 극장이 있어 여름마다 ’햄릿‘ ’리어왕‘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하는 셰익스피어 축제가 열린다.
그렇다면 세종시 호수공원에서 시작된 축제는 어떨까? 우리도 예술의 전당과 호수공원이 있고 중앙공원이 멋지게 자리하고 있다. 더구나 국립수목원과 박물관, 이응교가 있어 이것을 연결하면 센트럴파크 못지않은 멋진 문화 벨트로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비단강(금강)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제일 큰 문제는 소리이다. 호수공원 수상섬에서 개막된 축제의 대부분은 음악이 주를 이룬다. 음악은 소리의 높낮이·장단·강약 등의 특성을 소재로 하여 목소리나 악기로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시간예술이다. 아무리 야외무대라 해도 들리는 연주 소리가 귀를 거슬리니 너무 아쉬웠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관객이나 오케스트라, 그리고 합창단까지 한 곳을 향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관객은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아름다운 합창을 귓등으로 듣게 된다는 것이다. 뭐랄까, 이건 마치 호수에 사는 물고기를 위한 연주회처럼 보인다.
우리 귀에 들리는 음악에는 어떠한 규칙이 있다. ‘수는 만물을 지배한다’라고 말한 피타고라스의 말을 빌리면. 길이가 다른 두 줄을 튕길 때, 그 두 줄의 길이의 비가 간단한 분수로 표현될 때 듣기 좋은 화음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줄의 길이가 2:3이면 이 간격을 ‘완전 5도’라 하여 듣기에 가장 편안한 화음으로 알려져 있다. 이 피타고라스의 발견은 기하학이 아닌 수를 기본으로 하는 규칙이 자연에 존재한다는 것을 세상에 밝힌 최초의 사건이 소리과학의 발전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귀는 매초 고막이 흔들리는 횟수를 듣고 파동의 음높이를 인식한다.
한 대의 악기 연주에서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지만, 두 대의 악기는 연주할 때는 두 악기가 만들어 내는 위, 아래, 위, 아래 압력의 파동이 정확하게 서로 맞아 떨어져야 두 배의 파동을 만든다. 이것은 곧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는 특성상 관객과의 친밀도, 음의 풍부성, 객석에서의 균일한 음질 등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계단계부터 객석의 음향성능을 예측하고 그 문제점을 파악한 후 최적화된 음악당의 설계가 필요했다. 따라서 세종축제같은 규모의 개막식공연은 여기에 어울리지도 맞지도 않는다. 차라리 중앙공원의 무대를 보완해 개막식 공연을 시작해야 했다. 하지만 세종축제 공연을 훌륭하게 기획하고 비가 오는 날에도 행사를 소화해내는 문화재단 관계자들에게 심심한 위로와 박수를 보낸다.
2022-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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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을 새롭게
10월은 결실의 계절이다. 코로나의 악몽과 태풍의 위협에서도 변함이 없이 올 10월의 가을은 위대한 결실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산과 들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고 천고마비의 풍요로움과 평화로움이 넘친다. 가을이 안겨주는 모든 정취를 느끼고 삶을 되돌아보는 시기가 바로 10월인 것 같다. 올해도 어김없이 10월이 다가왔다. 올 10월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코로나에 대한 인식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지난해와 2020년 가을과는 달리 올 10월은 다소 숨통이 트였다. 코로나19 신규환자가 2만 명대로 줄어 감소세로 돌아서고 있다. 코로나 감염에 대한 공포나 불안감이 사라지고 이제는 감기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그동안 2,480여만 명의 누적 확진자가 발생했으니 참으로 엄청나다. 한 가정에서 한 명만 감염되면 전 가족이 모두 코로나에 감염될 정도다. 쉽게 말해 대부분이 코로나에 감염돼 치료했거나 지나갔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은 방역 당국의 조사에서 엿볼 수 있다. 우리 국민의 항체 양성률이 97.38%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국민 거의 다 자연 감염 생성 항체든 백신으로 유도된 항체든 코로나 항체를 가졌다는 뜻이다. 햇수로 3년 만에 얻은 코로나19 사태 성적표다.
정부도 입국 관련 추가 방역 완화조치를 발표하고 1일 0시 입국자부터 입국 후 하루 이내에 받아야 했던 PCR 검사 의무를 해제했다. 앞서 입국자 격리 의무 해제와 입국 전 검사 해제가 시행된 데 이어 이번 조치로 국내 입국 관련 코로나19 방역 조치는 모두 사라지게 됐다. 코로나19 재유행확산으로 제한됐던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서의 대면 접촉 면회도 4일부터 두 달 만에 재개되고 백신 4차 접종을 마친 어르신 등은 외출과 외박이 허용된다. 지난 9월 26일부터는 실외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자율로 전환되어 사실상 제재가 풀렸다. 올 10월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주어졌다. 이를 반영하듯 연휴 기간 지난 태풍 고난을 잊은 듯한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관광지마다 숙박업소가 동이 나고 곳곳에서 인산인해를 이뤘다. 해방감이 넘치는 가을 분위기는 그동안의 피로감을 덜어주기에 충분했다. 모처럼 이런 10월 분위기가 코로나의 일상을 잊게 했다.
올 10월은 이런 일상을 되찾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새롭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각종 축제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 금산의 인삼축제, 백제문화제, 계룡시의 세계문화엑스포 등등 전국 곳곳에서 봇물 터지듯 축제가 펼쳐지고 있거나 펼쳐질 예정이다. 사실 잃어버린 10월을 되찾는 느낌이다. 지방 연예인들도 분주해졌다. 10월은 의미 있는 날들이 참으로 많다. 국군의 날에 이어 노인의 날, 개천절, 한글날, 경찰의 날, 교정의 날, 여기에다 지방자치의 날도 이달에 있다. 여기에다 연휴까지 이어지면서 코로나의 일상을 벗어나 모처럼 10월의 아름다운 정취를 자유롭게 만끽하고 있다. 얼마나 기다린 일상인가 싶다. 그래서인지 가족 나들이가 부쩍 늘었다. 어린이들의 모습에도 활기가 차 있다. 어린이 놀이터에도 마음껏 뛰노는 어린이들의 활짝 웃는 얼굴이 드러나고 있다. 참으로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이다. 올 10월은 곳곳에서 크고 작은 축제들이 다시 시작되고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나날이 이어질 듯하다. 사실 요즘 실내에서도 그다지 큰 제약을 받고 있지는 않다. 카페나 식당들도 일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물가 폭등과 달러 강세, 금리 인상, 부동산값 폭락, 치졸한 정쟁에 이르기까지 탐탁지 않은 상황이 국민 생활을 짓누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여파가 심상치 않다. 10월과 전쟁은 마치 평화와 전쟁과 같은 상반된 용어임이 틀림없다. 모처럼 평화로운 계절을 맞았는데 때아닌 삭풍이 몰아치니 10월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잡치고 있다. 작금에 어렵고 힘든 시기에 정치인들은 치졸한 싸움에 혈안이 되어 도낏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있다. 무슨 셈법이 그리 복잡한지 갖은 잔머리를 다 쓰면서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느라 소모적인 정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정치가 이런 것인지 국민은 신물이 날 정도다. 여기에다 국민을 이분법으로 편 갈이를 하며 좌우 진영논리로 몰고 가고 있으니 나라가 편할 날이 없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달려가도 힘든 국내외적인 난관의 시대에 집안싸움에만 몰입하는 정치 세력들의 모습은 추하기 이를 데 없다. 국회는 열렸다 하면 고성과 트집과 몽니로 얼룩지고 있다. 이런 모습은 민주적인 국회의 모습이 아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달라진 것이 없다. 정치의 선진화, 국회의 선진화는커녕 술수와 꼼수가 난무하니 어느 국민이 이를 공감할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조건 없는 추종 세력이나 집단들에게는 통할지 모르지만, 정상이라고 할 수 없다. 본질을 외면하고 헛다리만 긁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역사의 준엄함을 모르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억압된 일상이 다소나마 풀렸지만, 10월은 마냥 평화롭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다. 10월의 시작부터 진영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좌우 진영에서의 대규모 집회는 향후 대한민국의 행보가 순탄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분명한 것은 집회의 성격이 무엇이든 정의와 진실, 대한민국의 정상성을 되찾는 몸부림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거짓과 술수가 난무하는 허상의 모습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행태는 반드시 척결되어야 한다.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상식이 통하는 집회가 되어야 한다. 선동과 허풍으로는 올바른 나라를 이끌 수 없다. 평화로움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10월이 투쟁과 비방으로 얼룩진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10월의 시작이 자유로운 것이 바로 대립과 반목이 시작이어서는 안 된다. 코로나로부터의 자유로움이 투쟁의 자유로움이어서도 그렇다. 한 해의 결실을 수확하고 내년의 계획을 수립하며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하는 중차대한 시점에서 소모적인 싸움에만 혈안이 된다면 그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뿐이다. 모든 것이 위기로 치닫고 있는 절박한 상황에서 만용을 부리며 이를 호도하는 세력이 있다면 단호히 배척해야 한다. 코로나로에서 벗어나 모처럼 다소나마 찾은 10월의 평화와 자유로움을 해치는 자들은 공공의 적이다. 2022년의 10월은 우리가 모두 새롭게 받아들이고 새롭게 느끼며 새롭게 가꾸는 달이 되어야 한다. 10월에 서서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보며 자유롭고 평화로운 가을을 마음껏 느끼고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도 또 다른 의미를 던져주리라 본다.
20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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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과 반목의 대한민국 어디로 가는가
대한민국 사회가 갈등과 반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를 부추기는 세력은 다름 아닌 정치 세력들이다. 좌우로 갈려 끊임없는 갈등과 반목으로 국민 분열을 일삼고 있다. 틈만 나면 흠집을 찾아 상대를 물고 뜯고 으르렁거리고 있다. 콧잔등이 아물 날이 없는 나날이다. 무엇인가 꼬투리를 잡으면 놓지를 않는다. 심지어 국회에서조차 그렇다. 군인들의 팬티 예산을 두고 삭감과 감액의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난리를 피웠다. 국회의원의 자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민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5박 7일의 해외순방에도 역시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말을 만들다가 개망신을 당했다. 영국 조문과 검은 망토 문제다.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하다가 역시 망신을 당했다. 영국대사까지 나서서 해명하는 촌극까지 빚어졌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엄청난 잘못이나 실수를 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퍼트리다가 꼬랑지를 내렸다. 그러다가 뉴욕에서 대통령의 은밀한 사적 발언을 카메라로 당겨 잡아 막말 표현을 했다고 방송과 신문에서 요란을 떨었다. 여기에다 캐나다에서는 우산을 받고 비행기 트랩을 올라가는 묘한 장면을 찍어 부정적인 면을 부각하는 언론까지 등장했다. 틈만 나면 일부 색깔 있는 언론이나 야당은 대통령과 부인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다. 해외순방도 이렇게 막을 내렸다. 국격이나 외교적 공적은 아예 안중에도 없는 모습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 사회는 좌우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가 국민을 두 갈래로 갈라놓고 있다. 중도 성향도 있지만, 중도는 말이 없고 좌우만 보인다.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기찻길과 같다. 과거에는 민주와 독재를 놓고 투쟁을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던 이른바 민주투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국민이 성원하며 지지했던 시절도 있다. 박해를 받던 민주투사들의 명예도 회복되고 그 토대 위에서 정치지도자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그런 세월을 거친 대한민국 정치이고 사회다. 정치적인 후진성과 진통 속에서도 국민의 성실성과 근면성으로 인해 세계적인 경제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좌우를 가르는 리트머스시험지는 어느덧 색깔이 분명해졌다. 이른바 종북세력들이 좌에 몰려 있고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우의 색깔을 더욱 짙게 하는 형국이다.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남한을 협박하는 북한에게 정권은 바뀌었어도 9.19선언을 지켜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관인 것은 내부적인 싸움이 남북의 싸움 못지않게 극한을 치닫고 있는 것이다. 증오와 질시가 차고 넘친다. 이를 국민에게 여과 없이 투영시키며 갈등과 반목의 사회를 조장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일부 국회의원들은 청문회나 대정부질문을 통해 수준 이하의 자질이 드러나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인물로서 국민의 조소를 받고 있을 정도다. 까놓고 보면 수준 이하의 민낯을 드러내는 자들이 대한민국을 갈가리 찢어놓고 있으니 참으로 비감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여당의 정치세력도 다 긍정적인 인물들은 아니다. 정당의 대표까지 한 젊은 정치인은 미꾸라지처럼 흙탕물을 만들며 이전투구를 일삼고 있다. 참으로 추한 모습이다. 성 상납 의혹 등으로 국민에게 식상함을 던져주고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핍박을 받는 정치인 것처럼 돈키호테식 행보를 일삼고 있다. 국민피로감을 더하고 있다. 이것도 좋다고 하는 인물들이 있는 것을 보면 참으로 대한민국 정치 수준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자신이 몸담은 당을 분열시키고 해코지하는 행태가 볼썽사납다. 추가 징계를 한다고 하면 법원으로 쪼르르 달려가 무슨 가처분신청을 남발해 대고 있다.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어떤 인물은 평소 가만히 있다가 대통령과 관련된 뉴욕 사적 발언이 논쟁거리가 되니 이때다 싶어 진위 확인도 없이 독설을 퍼부어대고 있다. 같은 편인지 아니면 남의 편인지 헷갈린다는 평을 듣고 있다. 참으로 기회주의적이다. 좌충우돌하는 이런 여당의 모습에서도 갈등과 반목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보게 된다. 수준이 떨어진다. 진중함이 없고 가벼움을 보게 된다.
건전한 비판과 견제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언론의 기능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기 잡는다고 망치를 휘두르고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돈키호테처럼 날뛰면서 이른바 가짜뉴스로 국민을 오도하고 분열시키는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아니라 수백 마리가 대한민국을 흙탕물로 만드는 행태도 과감히 척결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이상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면서 무엇을 얻고자 함인지 그 불순한 의도를 분명히 알고 대처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건전성을 해치고 권력 쟁취와 탐욕에만 혈안이 되어 으르렁거리는 무리를 경계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갈등과 반목은 위험수위에 올라와 있다. 이들 세력이 정치세력이든 사회단체든 노동단체든 언론이든 과감한 개혁으로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사실을 작금의 사회상에서 여실히 보게 된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지켜보고 있다. 현충원에서 참배하며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층들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위상을 떨어트리고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소모적인 정치세력들은 이젠 국민의 이름으로 척결해야 한다. 지금 국민은 묻고 있다. 갈등과 반목의 대한민국이 어디로 가는지를 말이다. 매국노가 따로 없다. 국가를 위기에 몰아넣는 자들이 정상 모리배들이자 매국노다. 이들은 척결해야 할 절박한 시점이다. 부정부패와 불법, 탈법을 일삼는 코로나와 같은 정치세력과 반사회적인 무리를 퇴치해야 한다.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자들이야말로 대한민국 공공의 적이기 때문이다.
2022-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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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언제부터인가 ‘6.25의 노래’를 잊고 있다. 부르지도 않고 있다. 72년 전 6.25전쟁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노래다. 6.25전쟁은 북한 공산군이 암호명‘폭풍’이란 이름으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불법 남침한 것이다. 부끄럽게도 사흘 만에 서울을 뺏겼다. 물론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되찾았지만 정전협정이 이뤄진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무려 1,129일 동안 동족상잔의 비극적인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72년이 지난 지금도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휴전 중이다. 다시 말해 아직도 진행형이다. 전쟁이 끝난 것처럼 착각하고 살 뿐이다. 엄연히 38선을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다. 이제는 핵전쟁의 위협까지 받고 사는 험악하고 살벌한 대치 상황이 끝나지 않고 있다. 틈만 나면 위화감을 조장하고 있다. 심지어 오늘날에 이르러 남침을 북침이라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파죽지세처럼 쳐들어오는 북한군의 기세에 밀려 남한 땅을 다 뺏길 위기에 처했었다. 유엔군이 참전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인해 전세를 뒤집었지만, 6.25전쟁의 악몽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연한 역사다. 북을 아군이라고 착각하고 살아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이 모든 것을 ‘6.25의 노래’는 함축하고 있다.
지난 어느 정권 시절 ‘6.25의 노래’가 국민이 부를 수 없는 금지곡으로 지정된 적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10년간 금지곡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이 이 노래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심지어 가사까지 바뀌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6.25의 노래’ 원곡은 박두진 시, 김동진 곡이다. 내용을 보면 이렇다. 1절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2절은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불의의 역도들을 멧도적 오랑캐를 하늘의 힘을 빌어 모조리 쳐부수어 흘려온 값진 피의 원한을 풀으리 :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3절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 정의는 이기는 것 이기고야 마는 것 자유를 위해서 싸우고 또 싸워 다시는 이런 날이 다시 오지 않게 하리 : 후렴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이 노래는 기성세대들이라면 어린 시절부터 입이 닿도록 부른 노래다. 6.25전쟁이 북침이라는 황당한 말이 나오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들이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을 부르며 ’상기하자 6.25, 무찌르자 공산당‘이란 표찰도 학창시절 가슴에 달고 살았다.
그렇다고 하면 이른바 ’신 6.25의 노래(심재방 지음)‘를 보자. ’1.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조국의 산하가 두 동강 나던 날을 동포의 가슴에다 총칼을 들이대어 핏물 강이 되고 주검 산이 된 날을 2.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동포 형제를 원수로 만든 그들을 겨레의 이름으로 부수고 또 부수어 선열의 흘린 피 헛되지 않게 시리 3.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자유와 민주와 평화와 번영 위해 민족의 공적과 싸우고 또 싸워서 통일의 그날이 기어이 오게 시리 (후렴) 이제야 이루리 그날의 숙원을 동포의 힘 모아 하나의 나라로 피의 원한 풀어 하나의 겨레로 이제야 이루리 한나라 한겨레‘이렇게 되어 있다. 6.25전쟁을 치른 세대들이 이를 보면 소름이 돋고 지하에서 호국영령들이 분통을 터트릴 참으로 황당한 노래다. 6.25전쟁의 민족 최대 비극사를 왜곡하고 전쟁책임이 있는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씌어주는 이런 황당한 ’신 6.25의 노래‘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어떻게 이런 노래가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모르겠다는 비난이 거세다. 이는 종북좌파들의 노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1절에는 북괴군이 남침했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남북한이 총칼을 들이댔다는 정황만 나열했다. 2절에는 6.25전쟁의 책임이 북한이 아니라 ’외세‘에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유엔군의 참전이 누구 때문인지를 왜곡하고 있다. 3절은 민족의 공적과 싸워서 통일을 이루자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족의 공적이 과연 어디를 말하고 있으며 왜 이런 내용을 담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런 왜곡된 가사 내용을 갖고 6.25전쟁을 제대로 설명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반공정신을 일깨울 수 있는지 짚어보면 불문가지다. 이런 교육이 전교조를 통해 세뇌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도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할 일인지조차 의아할 정도이다. 역사를 잊는 것을 넘어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세력들이 과연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를 철저히 파악해야 한다. 이 땅의 공산화인지 말이다. 우리의 비극적인 역사가 담긴 ’6.25의 노래‘를 금지곡으로 만들어놓다가 ’신 6.25의 노래‘라는 황당한 노래로 역사를 왜곡하는 이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6·25전쟁의 인명피해는 가히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피해 규모를 보면 군인 17만 927명 전사, 3만 2,585명 실종, 56만 6,434명 부상, 민간인 100만여 명 사상 추정된다. 군인과 민간인이 250여만 명이 사망했다. 좌우 대립이 극심했던 호남지역의 학살피해자는 8만4,003명으로 대한민국 전체 학살피해자 12만8,936명의 65%에 이른다. 무고한 사람들에 대한 일방적 학살을 말한다. 참전국의 피해도 크다. 참여 유엔국가는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 캐나다, 필리핀, 태국, 뉴질랜드, 호주,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그리스 등 16개국이다. 특히 미국의 참전 규모가 참전국의 80% 정도로 차지할 정도로 매우 컸다. 유엔군 전사자만도 3만3,700여 명에 이른다, 국군 전사자 13만7,900여 명을 생각하면 남의 나라 자유와 평화를 위해 엄청난 유엔군 참전용사들이 산화했다.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가족을 잃고 헤어져 이산가족의 아픔이 지속되고 있는 비극의 역사가 6.25전쟁이다. 이를 잊는다고 잊을 수 있으며 왜곡한다고 왜곡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착각 중의 착각이고 망상일 뿐이다. 72년이 지난 지금 역사를 왜곡하는 종북좌파들이 날뛸 때 현충원에는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의 묘비가 그날의 비극적인 역사를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요즘 아쉬운 것은 젊은이들이 의식 수준이다. 역사를 잊은 것인지 아니면 외면하는 것인지 참으로 아리송하다. 17일 오전 서울 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형산강 전투의 영웅 연제근상사와 12인의 특공대원 추모식에서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고령자 참석자들이었다. 구순은 넘긴 수훈의 참전용사들과 유관 기관단체 원로들이 노구를 이끌고 추모식을 참석해 6,25전쟁을 회상하고 추모하는 모습은 시대적 아픔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목숨을 바친 호국영웅들과 아직도 살아 계신 90대 영웅들이 오늘의 이 나라를 지킨 진정한 애국자라는 사실을 잠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줬다. 자라나는 세대와 젊은 세대들을 왜곡된 역사로부터 보호할 절박한 시점이다. 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포장하여 살아있는 전쟁 세대들을 우롱하는 역사적 경거망동은 결코 좌시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다.
김일성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예비역 이진삼대장이 살아계신다. 남침 땅굴까지 찾아내어 엄청난 공적을 이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도 육탄용사호국정신선양회와 UN한국전참전국친선협회, 대한항일순국열사회 총재로 젊은 세대들과 애국애족 정신을 선양하고 있다. 이진삼 총재와 함께 하는 유법안 스님은 전국에 100여 곳에 달하는 6.25전쟁 관련 기념탑을 사비까지 투자해 건립하고 호국영웅의 참뜻을 기리고 있다. 조만간 미육군 싱그러브장군 공적탑 제막식도 거행한다. 무엇보다 6.25 전쟁사를 정립하고 후손들에게 올바로 알리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유법안 스님은 용산전쟁기념관의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의 비극을 상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참뜻이 담겨야 한다는 의미가 공감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 역사는 왜곡이나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인 듯하다. 역사를 잊지 않도록 오래 간직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애국애족의 마음이자 우국충정이다. 6.25전쟁의 격렬했던 전국의 전투 현장에는 유법안 스님의 애국애족 정신이 서린 기념탑이 우뚝 서고 있다. 유법안 스님의 애국애족 정신과 6.25전쟁사의 올바른 기술에 대한 헌신적인 열정이 이 시대에 빛을 발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유법안 스님의 위대한 행보가 왜곡된 역사관이 판을 치는 오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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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를 말한다
각종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흉악 범죄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정신질환 유형에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것이 있다. 가끔 언론에 회자되면서 비정상적인 인물들에 대해 이를 적용시키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인성문제와 더불어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인물들이 그 대상이다. 흉악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인면수심의 범죄자들이 여기에 속한다. 사실 같은 듯 다른 두 가지가 바로 소시오패스(sociopath)와 사이코패스(Psychopath)이다. 쉽게 말하면 전자는 후천적이고 후자는 선천적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는 둘 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닮은 듯 다른 질환인 것이다. 또 소시오패스는 환경적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알려졌고 사이코패스는 뇌의 이상이나 유전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를 뜻하는 소시오패스(sociopath)란 사회를 뜻하는 소시오(socio)와 병리 상태를 의미하는 패시(pathy)의 합성어이다. 특히 나쁜 짓을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사이코패스는 역시 반사회적 인격 장애로 자신의 행동에 죄책감이 없고 타인에게 동정심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다만, 사이코패스는 선천적으로 충동적이고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기질로 태어나 공감 능력의 결여로 범죄나 잘못된 행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잘못된 행동이란 것을 알면서도 반사회적 행위를 한다.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소시오패스다. 소시오패스는 정상인의 기질로 태어나지만 유년기 시절이나 사회생활 중 결핍요인에 의해 성격장애를 갖게 되는 경우다. 이들은 계산이 빠르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행동에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또한 감정 조절이 뛰어나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평범한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철저히 숨긴다. 소시오패스는 전 인구의 4%라고 알려져 있다. 주변 25명 중에 1명은 소시오패스인 것이다. 소시오패스 중에는 상류층 인사와 유능한 직업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히틀러다.
소시오패스(sociopath)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나쁜 짓을 저지르며 이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특히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이라 호감을 쉽게 얻는다. 하지만 이들의 공감은 정서적 공감이 아니라 인지적 공감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쓰이지 않고 오직 자신을 위해서만 사용된다. 이에 주변 사람을 조종하며 착취하는 기생적 인간관계를 맺곤 한다. 또한 거짓말을 하는데 능숙하다. 일반인은 양심이 있기 때문에 들통날까봐 긴장하지만, 소시오패스는 양심이란 사전 속 단어이기에 일말의 망설임 없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할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선천적 기질이라 그렇다고 해도 소시오패스는 정말 사회의 암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양심의 가책이 없기 때문에 무슨 짓을 해도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다. 각종 살인사건을 통해 볼 때도 그렇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 저지른 천인공노할 범죄를 비롯해 존속살인 사건, 각종 방화사건 등등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나 없는 사실을 꾸며 다른 사람들을 음해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비정상적인 행동의 인물들 속에서 소시오패스의 모습이 보인다. 심지어 해외에서 같은 나라 사람이면서도 교묘하게 접근해 우리나라 사람들을 속여 등쳐먹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부류이다. 중국 등 해외에서 조심해야할 사람의 1호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들은 이제 다 아는 사실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인의 고통을 아랑곳하지 않는 자들의 모습을 볼라치면 인면수심(人面獸心)을 보게 된다. 다양성을 떠나 악질적인 행위로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가 이처럼 혼돈스럽다. 내로라하는 정치지도자란 사람들이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검찰과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벌써 영창에 있을 법도 한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면 끗발이 좋긴 좋다. 문제는 사건이 존재하는데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묵언수행(默言修行)하듯이 회피하거나 아니면 동문서답을 하면서 딴전을 부리는 모습이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마치 억울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핍박을 받는 사람 행세를 하면서 모든 잘못은 다른 사람에게 있는 양 호도하고 있다. 자신은 떳떳한데 다름 사람들이 죄를 덮어씌우려 하고 있다는 듯이 동네방네 언론사마다 쫓아다니며 빈 수레처럼 요란을 떨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전 현직 정당대표들이 각종 범죄에 연루되어 검찰과 경찰의 소환을 받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국민적 스트레스다. 본인들은 마치 핍박을 받고 있는 것처럼 출두를 하느니 마느니 하면서 무슨 전쟁을 치를 듯이 요란을 떨고 있지만 이는 요란을 떨 일이 아니다.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떳떳하게 조사에 임하고 결백을 밝히면 된다. 대한민국에는 엄연히 법이 존재한다. 법대로 하면 된다. 밖에서 매화타령만 해서는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국가 공권력이 할 일이 없어 죄도 없는 사람을 오라 가라 할 것인지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비정상이 정상인양 돌아간다면 그것은 큰일이다. 이런저런 일로 벌써 사람이 한두 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 아니다. 왜 멀쩡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겠는가를 남아 있는 사람들이 답을 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있다면 이는 앞서 말한 소시오패스의 전형이다. 잘못을 하고도 양심의 가책은커녕 교묘한 거짓말로 본질을 호도하려는 행태를 보인다면 이 역시도 소시오패스다. 지금 국민들은 정치권에서 보여주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가 정신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정치적 탄압인지를 지켜보고 있다.
언론들도 마찬가지다. 본질을 호도하는 언론의 행태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치적 이념이나 좌경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은 팩트를 갖고 정론직필을 생명으로 삼아야 한다. 조작적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그것은 사이비언론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을 속이는 언론은 이미 언론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퇴출되어야 마땅하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언론도 소시오패스 언론에 다름 아니다. 언론과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면에서 무엇인지 늘 1인치가 빈 채 돌아가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볼라치면 인성교육이나 준법교육이 다시 강화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작금의 대한민국 사회의 정치지도자들의 형사사건 문제는 앞으로 소시오패스를 보게 되는지 아니면 탄압받는 모습을 보게 되는지 둘 중의 하나는 분명 보게 될 것이다. 그 이유는 너무나 많은 말들과 행동거지로 진실게임을 벌여왔기 때문이다. 종국에는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이라는 옛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구나하는 깨달음도 분명 던져줄 것이다. 국민들은 그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202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