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자리에서 – 진짜 인생의 시험은 이제 시작이다

김헌태논설고문

2025-11-16 19:58:08

 

 

 

진인사대천명, 그 치열했던 여정의 끝에서

13일 오후,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이 한 해를, 아니 인생의 한 시절을 통째로 바쳐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마지막 종소리가 울렸다. 시험지를 걷어내던 감독관의 손끝에는 긴장의 흔적이 남았고, 교실마다 번져나가던 깊은 숨소리에는 안도의 빛이 스며 있었다. 그동안 이 나라의 수험생들은 한겨울을 뚫고, 장맛비를 견디며, 교과서와 문제집 사이에서 청춘의 가장 빛나는 시간을 견뎌냈다.

부모는 뒤에서 숨죽이며 도시락을 싸고, 학원비를 감당하며, 마음속으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의 기도를 올렸다. 그 치열한 과정이 13일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가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새로 설계해야 할 시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능이 끝났다고, 인생의 답이 끝난 것은 아니다

수능은 분명 인생의 큰 관문이지만, 결코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 시험 하나가 한 사람의 가치를 정의할 수는 없다. 높은 점수를 받은 학생도, 기대 이하의 결과를 얻은 학생도 결국 같은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문제는 수능 이후의 시간이다. 긴장이 풀리며 생기는 해방감 속에 자칫 방황과 일탈의 유혹이 스며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억눌린 자유를 폭발시키듯 밤새 거리를 배회하거나, 무분별한 음주와 유흥에 빠지는 일들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잠깐 쉬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잃는 것’이다. 이 시기는 청춘의 자유와 절제가 시험대에 오르는 두 번째 수능이다.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진짜 세상은 훨씬 냉정하게 그 대가를 요구한다.

 

학부모들에게 – 이제는 놓아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수능이 끝난 순간, 부모의 손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지금까지는 아이의 옆에서 학원 스케줄을 챙기고, 모의고사 점수에 울고 웃으며 함께 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조종사에서 관찰자’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과 조급함은 오히려 자녀의 자립심을 가로막는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성적에 대한 불안과 비교 의식이 가정을 짓누르기도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점수표가 아니라 대화와 신뢰다. “넌 충분히 잘했어.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걸 찾아봐.” 이 한마디가 때로는 그 어떤 입시 성적보다도 더 큰 인생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성숙한 부모의 태도는 자녀의 인생을 단단히 세워주는 보이지 않는 기둥이다.

 

사회의 책임 – 경쟁만 부추긴 교육의 그늘

수능이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논란은, 사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모든 가치가 점수로 환원되고, 인간의 잠재력과 다양성이 ‘한 줄의 표준점수’로 평가받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은 일찍부터 경쟁에 내몰렸다. “수능이 끝났으니 이제 자유다.”라는 말이 오히려 슬프게 들리는 이유다. 교육의 목적은 인간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고 ‘성장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수능이 끝난 자리에서 우리 사회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어떤 청년을 길러내고 있는가?”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힘, 인간에 대한 통찰, 그리고 삶을 설계하는 지혜다. 그것이 없는 교육은 단지 지식의 암기장이며, 그 끝은 피폐한 경쟁의 악순환일 뿐이다.

 

수험생들에게 – 쉬어도 좋지만, 멈추지는 말자

이제 책을 덮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마음껏 웃어라. 그동안의 노력은 이미 수험생들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 그러나 그 웃음이 ‘끝’이 아니라 ‘시작의 신호’가 되길 바란다. 쉬어야 한다. 그러나 멈춰서는 안 된다. 수능이 끝났다고 해서 인생의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제부터는 ‘정답 없는 문제’를 푸는 시간이 시작된다. 그 문제는 교과서가 아닌 현실 속에 있다. 자신의 진로를 찾는 일, 인간관계를 배우는 일, 사회의 불합리를 견디고 이겨내는 일 —그 모든 것이 진짜 수능보다 훨씬 어려운 인생의 문제집이다. 그러니 지금은 자신을 되돌아보고, 무엇을 위해 공부했고 앞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를 생각해야 할 때다.

 

성적보다 중요한 ‘자기 존중’과 ‘방향 감각’

수능 성적표는 숫자로 찍히지만, 인생의 가치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시험결과가 좋지 않다고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인생은 언제나 두 번째 기회를 주는 법이며, 노력은 반드시 다른 문을 연다.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존중감이다. 남보다 늦을 수 있고,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된 길은 아니다. 세상은 이미 다양성의 시대다. 대학 진학이 전부가 아닌 세상, 기술과 창의력, 인성으로도 얼마든지 빛날 수 있는 길들이 열려 있다. 그 가능성을 볼 줄 아는 눈, 그것이 진짜 공부의 시작이다.

 

수능 이후 사회가 해야 할 일

수험생을 단순히 ‘입시 기계’로만 보던 시선을 거두고, 청년 세대를 위한 다층적 지원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심리적 공백기를 채워줄 상담 프로그램, 사회적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봉사나 체험활동,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멘토링 시스템이 필요하다. 수능이 끝나면 ‘놀아야 한다’는 공식 대신, ‘배움의 확장’과 ‘삶의 설계’로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교육당국과 지자체, 학교가 함께 이 시기를 인생 설계의 전환기로 만들어야 한다. 청년은 국가의 미래다. 그들의 잠재력은 시험점수보다 훨씬 크다. 지금 그들을 지켜보는 어른들의 태도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진짜 수능은 인생 그 자체다

한 번의 시험이 끝나도, 인생은 늘 새로운 문제를 낸다. 그 문제에는 객관식 답안지도, 선택지도 없다. 오직 자신의 가치관과 노력으로 채워야 한다. 수능은 그저 한 챕터일 뿐, 인생은 훨씬 더 긴 서사다. 성공은 한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고 세상을 이해해 가는 과정이다. 이제 수험생들은 그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 발걸음이 불안보다 희망으로, 방황보다 성장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 길 위에서 청춘들의 꿈을 응원해야 한다.

 

맺음말 – ‘결과’보다 중요한 ‘사람’의 가치

수능 종료는 누군가에게는 해방의 날이고, 누군가에게는 불안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점수표를 걱정하고, 누군가는 내일을 그려보고 있다. 모두 다 옳다.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사람’이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을 이해하며, 세상을 향해 건강한 걸음을 내딛는 것 —그것이 진짜 수능을 통과하는 길이다. 진인사대천명, 그 말의 의미를 다시 새기자. 할 만큼 했으니, 이제 하늘에 맡기되, 다음 걸음을 향한 준비를 멈추지 말자. 수능은 끝났지만, 인생의 수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교육은 점수가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일이며, 오늘의 수험생이 내일의 대한민국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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