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민심, 무거워지는 서민의 삶
지금 대한민국의 가장 큰 위기는 경제지표가 아니라 ‘심리’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 때 사회는 급격히 흔들린다. 젊은 세대는 노력해도 나아질 수 있을지 묻고, 중산층은 아래로 미끄러질지 모른다는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노년층은 쌓아온 삶의 무게보다 불안이 더 커졌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의 역할은 분명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연말이 깊어갈수록 정치는 이미 선거의 언어로 가득 차 있다. 저마다 출사표를 던지며 구호를 외친다. 비전은 넘치지만 신뢰는 부족하고, 말은 많지만 책임은 보이지 않는다. 민생은 선거용 수식어가 되고, 고통은 정치적 재료로 소비된다.
다시 시작된 선거의 시간, 그러나 잊힌 질문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지만, 그 꽃이 피기 위해서는 토양이 건강해야 한다. 지금의 토양은 메말라 있다. 민심은 분열되어 있고, 진영 논리는 상식의 자리를 잠식했다. ‘누가 옳은가’보다 ‘누가 적인가’를 먼저 따지는 정치가 반복되면서 국민은 점점 피로해지고 있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사라졌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은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정치권이 던져야 할 질문은 지지율이 아니라 책임이고, 공격이 아니라 대안이다. 그러나 연말의 정치 풍경은 여전히 상대를 향한 비난과 과거의 재탕에 머물러 있다.
연말에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니라 태도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 전체가 되묻는 질문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답은 거창하지 않다. 상식, 책임, 그리고 절제다. 위기의 시대에는 더 큰 소리보다 더 낮은 자세가 필요하다. 더 빠른 결단보다 더 깊은 숙고가 요구된다.
연말은 돌아보는 시간이다. 개인에게도, 사회에도 그렇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연말을 흘려보내며 같은 실수를 반복해 왔다. 반성은 말로 끝나고, 다짐은 새해 벽두에 사라진다. 정치도, 사회도, 개인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약속이 아니라 오래된 원칙으로 돌아가는 용기다.
책임의 언어가 사라진 사회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가장 희귀한 단어는 ‘책임’이다. 결과에 대한 책임, 말에 대한 책임, 선택에 대한 책임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대신 변명과 탓하기가 자리를 차지했다. 정치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퍼진 책임 회피의 문화는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
책임 없는 권력은 폭력이 되고, 책임 없는 자유는 방종이 된다. 연말의 혼란은 단지 경제 때문만이 아니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학습이 사회 전반에 퍼진 결과다. 이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도, 어떤 선거도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
절제와 존중, 지금 다시 배워야 할 가치
격한 언어가 일상이 되었다. 타인을 향한 존중은 약해지고, 상대를 꺾는 말이 환호를 받는다. 그러나 사회는 말의 품격만큼 성숙한다. 절제되지 않은 언어는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정치의 언어가 거칠어질수록 민심은 멀어지고, 갈등은 깊어진다.
연말은 절제의 미덕을 되새기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덜 말하고 더 듣는 자세, 더 주장하기보다 더 이해하려는 태도가 지금 이 사회에 절실하다. 이는 정치인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일상의 언어에서부터 실천해야 할 가치다.
불안의 시대, 희망은 어디에서 오는가
희망은 구호에서 오지 않는다. 희망은 신뢰에서 나온다.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는 믿음,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최소한의 확신이 사회를 지탱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화려한 미래상이 아니라, 작은 신뢰를 하나씩 회복하는 과정이다.
정부는 정책으로, 정치인은 책임으로, 사회 지도층은 모범으로 답해야 한다. 그리고 시민은 냉소 대신 비판적 참여로, 분노 대신 성찰로 응답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혼돈의 시대를 건너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송년의 끝자락에서 다시 묻는다
2025년의 끝자락,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더 깊어진 갈등인가, 아니면 다시 시작할 여지인가. 연말의 술잔이 일시적인 위로가 아니라,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거를 앞둔 정치도, 불안한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도 지금은 속도를 늦추고 방향을 점검해야 할 때다.
대한민국은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 온 나라다. 그 힘은 언제나 국민의 성숙함에서 나왔다. 이번 연말 역시 다르지 않다. 우리가 다시 상식과 책임, 절제라는 오래된 가치를 붙들 수 있다면, 혼돈의 시간은 새로운 도약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
송년은 끝이 아니라 질문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대한민국의 내년을, 아니 다음 세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