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의 명암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일자리 질서

‘일할 권리’와 ‘세대 균형’ 사이, 국가의 시간은 멈춰 서는가

김헌태논설고문

2025-11-08 17:45:20

 

 

 

다시 불붙은 정년 논의, 한국 사회의 시계가 움직인다

대한민국 사회의 시계가 ‘정년 연장’이라는 단어 앞에서 다시 요동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노동계가 동시에 뜨거운 논의의 장으로 뛰어든 이유는 명확하다. 고령화의 가속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올해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평균수명은 84세를 넘어섰고, ‘60세 정년’은 현실의 수명과 일할 의욕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더 오래 일하고 싶다”라는 열망이 아니다. 정년을 연장하면 그만큼 일자리가 오래 점유된다. 이는 곧 ‘청년 고용’이라는 민감한 균형추를 건드린다. 정년을 늘리느냐, 아니면 청년의 기회를 보장하느냐—이 두 축의 충돌이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정치권의 ‘정년 포퓰리즘’, 현실을 오판하다

정년 연장 논의는 정치권에서도 주요한 선거 의제가 되고 있다. 여야 모두 고령층의 표심을 의식하며 앞다투어 “일할 권리 보장”과 “고용안정 확대”를 외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현실을 정밀하게 계산하지 않은 ‘정치적 포퓰리즘’의 그림자가 짙다.

노동시장은 단순한 계산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정년이 연장되면 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급증한다. 인건비는 늘어나고 생산성은 줄어드는 구조적 한계 속에서, 결국 기업은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명예퇴직을 유도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일자리 총량의 축소’라는 역풍이 청년층에 직격탄을 날릴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은 표심을 얻기 위해 ‘정년 연장’을 마치 복지 확대처럼 포장하지만, 그 실상은 미래세대의 일자리와 연금, 그리고 산업 경쟁력의 문제로 연결된다. 단기적 정치 논리가 국가 장기 비전을 압도하는 순간, ‘정년 연장’은 더 이상 개혁이 아니라 ‘시간의 덫’이 될 수 있다.

 

청년의 분노, “기회는 왜 늘지 않는가”

청년 세대의 불만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취업 문은 좁아지고, 비정규직과 단기 일자리가 늘어나며, 청년층은 ‘경력 없는 늙은이’로 불리는 세태를 두려워한다. 만약 정년이 65세, 혹은 70세로 연장된다면, 기업은 기존 인력을 유지하기 위해 신규 채용을 더 줄이게 된다. 청년들은 ‘대기조’로 밀려나고, 노동시장 진입은 더 늦어진다.

이미 OECD 주요국 중 한국의 청년실업률은 상위권이다. 고령층의 고용이 늘어나는 대신 청년층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대 전이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세대 간 경쟁을 넘어, 사회의 활력 자체를 떨어뜨리는 구조적 위기로 번질 수 있다. 정년 연장은 어쩌면 ‘노인의 생계’를 보호하는 대신 ‘청년의 미래’를 담보로 잡는 정책이 될지도 모른다.

 

기업의 현실, “사람이 아니라 비용이 남는다”

기업 입장에서 정년 연장은 결코 단순한 고용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냉정하다. 노동비용이 늘어나면, 인력 효율화를 모색한다. 실제로 대기업의 경우 50세 전후의 인력 구조조정이 이미 일상화되어 있다. 정년을 늘린다고 해서 기업이 선뜻 그 고령 인력을 활용할 여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명예퇴직 확대’나 ‘조기퇴직 프로그램’이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특히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산업 현장에서는 숙련보다 ‘적응력’이 더 중요하다. 인공지능, 자동화, 디지털 전환 등 산업구조가 바뀌는 가운데, 나이 많은 인력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면 기업은 불가피하게 ‘퇴출의 합리화’를 시도한다. 정년 연장이 법으로 강제된다면, 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외주화·자동화를 확대할 것이다. 결국 “정년은 늘었지만, 일자리는 줄었다”라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연금과 복지의 균열, ‘일할 권리’가 ‘노후의 불안’으로

정년 연장은 연금제도와도 직결된다. 국민연금은 이미 재정적 경고등이 켜졌다. 수급자 수는 급증하지만, 납입자는 줄고 있다. 만약 정년이 연장된다면, 연금 납입 기간은 늘어나겠지만 수급 개시 시점도 늦어질 수 있다. 노후 불안은 줄지 않고, 오히려 “언제까지 일해야 하나”는 불안감이 더 커질 수 있다.

명예퇴직을 선택한 중장년층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실질적인 재취업의 문은 좁고, 재교육이나 직업훈련도 형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고령자 고용지원 정책이 현장성과 실효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년 연장은 결국 ‘생계형 노동의 장기화’라는 새로운 사회적 빈곤을 낳게 된다.

 

일본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

일본은 이미 ‘70세 고용 연장제’를 도입하며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단순히 법으로 정년을 늘린 것이 아니다. 기업 자율에 맡기되, 재고용제도·탄력근무제·직무 전환 등을 병행했다.

즉, 정년을 늘리기보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한국이 지금 논의하는 정년 연장은 제도적 강제성이 강하다. 하지만 고령사회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정년의 숫자’가 아니라 ‘일자리의 질’이다.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고, 연령별 직무 전환과 임금체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구조개혁이 병행되지 않는 한, 단순한 정년 연장은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이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는 ‘세대 간 사회계약’을 다시 써야 할 시점에 서 있다. 고령자는 존중받아야 하고, 청년은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정년 연장 논의는 이 두 세대가 서로의 자리를 빼앗는 제로섬 게임으로 흘러가고 있다.

정년을 연장하려면 ‘임금피크제의 실효성 강화’, ‘직무 기반 보상 체계의 개편’, ‘세대 간 멘토링 일자리 모델 구축’ 등 세밀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또한 기업이 고령 인력을 재교육하고 재배치할 수 있도록 세제 지원과 기술훈련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정년은 더 이상 ‘퇴직의 나이’가 아니라 ‘일할 수 있는 능력의 나이’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정년 연장, 그 마지막 선택의 책임은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연장은 답이 아니다. 사회적 합의 없이, 세대 간 이해조정 없이, 정치적 공약으로만 추진되는 정년 연장은 또 다른 불평등의 불씨가 될 것이다.

국가는 고령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청년 세대의 기회를 확장해야 한다. 기업은 사람을 비용이 아닌 자산으로 보는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는 ‘일하는 존엄’과 ‘쉬는 권리’가 공존하는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시대의 결단, “일의 종말이 아닌 일의 재창조로”

정년 연장은 단순히 몇 살까지 일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의 의미’를 다시 묻는 사회적 성찰이다. 우리가 정말 연장해야 할 것은 ‘정년’이 아니라 ‘일의 가치’이며, ‘나이’가 아니라 ‘능력’이다.

정치권이 일시적 표심이 아닌 국가의 백년대계를 본다면, 지금이야말로 사회 전체가 노동의 패러다임을 다시 써야 할 시점이다. 청년과 노인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 일하는 것이 행복한 사회—그것이야말로 정년 연장이 진정 추구해야 할 대한민국의 미래다. 정년을 늘리기 전에, 세대가 함께 설 수 있는 일터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