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 국민의 눈을 외면한 정치의 장(場)

정쟁에 갇힌 국감, 민생은 어디로 갔나

김헌태논설고문

2025-10-27 10:14:26

 

 

 

 


국정감사의 본뜻이 사라진 자리

10월의 대한민국은 ‘국정감사 시즌’이다. 국회는 헌법이 부여한 막강한 권한인 ‘감시와 견제’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을 상대로 한 해의 행정을 점검하는 대장정에 들어간다. 이름 그대로 ‘국정을 감사’하는 자리다. 그러나 올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장면은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준다. 국민의 눈에는 ‘국감’이 아니라 ‘정감(政監)’으로 비친다. 정책과 행정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여야가 상대를 향해 날선 정치공세를 퍼붓는 ‘정치 싸움터’로 변질된 지 오래다.

이번 국정감사는 대선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정부를 대상으로 22대 국회가  처음 실시하는 감사지만, 새로운 변화나 민생 중심의 통찰은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더 격화된 여야의 대립 구도가 국정감사 전면에 펼쳐지고 있다. 여당은 과거 정부의 정책 실패와 야당의 발목잡기를 성토하고, 야당은 현 정부의 인사 난맥과 민생 무능을 질타하며 맞불을 놓는다. 그러나 이 모든 공방의 한가운데에서 정작 국민의 삶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대신해 정부를 감시한다’라는 헌법 정신은 사라지고, ‘정쟁을 위한 무대’만 남았다.

국정감사는 본래 행정부의 정책 수행을 점검하고 국민 세금의 쓰임을 살피며, 부처의 비리나 부당한 행정을 바로잡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의 관심은 국민이 아니라 카메라다. 한정된 질의 시간 속에서 국민이 궁금해할 현안 대신, ‘유튜브용 질의’, ‘SNS용 발언’이 난무한다. 국민의 삶을 위한 질의보다 언론에 한 줄이라도 더 오르려는 ‘퍼포먼스 정치’가 국감장을 장악하고 있다. 질의보다 고함이 많고, 자료보다 말싸움이 많다. 국민은 묻는다. “이게 나라의 감사냐, 쇼냐?”

시민들은 이미 냉소적으로 반응한다. “국감은 매년 하는 정치 드라마다.” “시즌 20년째인데 내용은 늘 비슷하다.”라는 자조 섞인 반응이 온라인을 채운다. 국정감사가 ‘권력 감시의 장’이 아니라 ‘정치 흥행의 무대’로 전락한 현실, 그것이 국민의 가장 깊은 피로감을 자아낸다. 정치의 무게 중심이 민생에서 멀어질수록, 국감의 권위는 무너지고 국민의 신뢰는 식어간다.

 

민생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때다

국정감사의 본질은 정쟁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정부의 행정을 점검하고 바로잡는 일’이다. 이 단순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국감은 아무리 화려한 의사진행으로 포장해도 결국 ‘정치의 무능’을 드러내는 무대에 불과하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정부를 향한 질책보다 현실을 바꾸는 해결책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상대방의 과오를 들춰내는 데 몰두하고 있다.

가령, 이번 국감에서도 청년실업 문제, 지방 소멸 위기, 농가 소득 감소,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부동산 시장 불안, 국가채무 급증 등 국민 삶의 핵심 현안들이 산적해 있지만, 정작 이 문제들을 다루는 질의는 찾기 어렵다. 여야 모두 ‘책임 공방’에만 몰두한다. 여당은 “이전 정부의 부실한 정책 탓”이라 하고, 야당은 “현 정부의 무능 때문”이라 한다. 그러나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이제 어떻게 할 것이냐’다. 국회가 이 단순한 국민의 질문에 답하지 못할 때, 국정감사는 존재 이유를 잃는다.

정치가 정쟁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는 사이, 행정은 안일해지고 권력은 비대해진다. 감사의 본래 목적은 행정부의 견제와 투명성 확보에 있다. 국감이 무력화되면 공직사회의 책임 의식도 함께 무너진다. 공무원들은 “어차피 국회는 정쟁만 한다.”라며 국감 준비를 형식적으로 대하고, 국회의원들은 “어차피 국민은 정치에 실망했다.”라며 책임감을 놓는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될수록 대한민국의 정치 시스템은 더 깊은 불신의 늪에 빠진다.

시중의 여론은 명확하다. “국감은 이제 쇼가 아니라 성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국민은 진정성 있는 질의를 원한다. 단순한 정치공세가 아니라 ‘대안’을 요구한다. “무엇이 잘못됐는가”를 넘어서 “어떻게 고칠 것인가”를 말하는 국회의원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다. 질의의 상당수는 정치적 이벤트에 불과하고, 질의의 결론은 대체로 “정부를 규탄한다”거나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로 귀결된다.

올해 국감 역시 ‘여야의 정치 대결 구도’ 속에서 ‘민생감사’라는 본뜻이 실종됐다. 노동 현장에서는 산업재해가 끊이지 않고, 학교에서는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병원에서는 의료 공백이 커지고 있다. 이런 국민의 고통이 산처럼 쌓여 있는데도, 국감장은 마치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국민이 느끼는 괴리감은 그만큼 깊다.

 

정치가 국민에게 배워야 할 시간

정치의 본령은 ‘국민을 위하는 책임’이다. 국감은 그 책임을 시험하는 자리다. 여야가 서로의 책임을 묻는 자리이기 전에, 국민이 국회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국감은 ‘국민을 위한 정치’보다 ‘정당을 위한 정치’로 흐르고 있다. ‘내가 이겼다’라는 정치적 점수 계산만 남고, 국민의 삶은 잊힌다.

국민은 더 이상 ‘감정의 정치’를 원하지 않는다. 국민은 실질적 대안을 원한다. 민생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점검, 비효율적인 예산의 절감, 국민 세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투명한 공개, 공공기관의 책임경영, 청년과 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복지와 일자리 대책 — 이런 현실적 해답을 요구한다. 그런데도 정치가 여전히 ‘상대 진영 흠집 내기’에 머무른다면, 국민의 심판은 더욱 냉혹해질 것이다.

정쟁의 국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민에게 식상함을 넘어 분노를 불러왔다. 올해 국감이 끝나면 여야 모두 “성과가 있었다”라고 주장하겠지만, 국민은 알고 있다. 그들의 ‘성과’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을 위한 홍보전’이었다는 것을. 국정감사는 국민 세금으로 진행되는 국가의 공식 절차다. 그러므로 그 무대에서 벌어지는 모든 말과 행동은 국민 앞에서의 책임이어야 한다. 정치가 이를 망각한다면, 국정감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국정감사가 진정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치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의 눈’으로 정부를 감시해야 한다. 정쟁이 아니라 협력과 대안의 경쟁이 필요한 시점이다. 불필요한 정파적 공세를 멈추고, 실질적 국정 개혁과 민생 점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위기의 연속에 놓여 있다. 경제는 둔화되고, 물가는 치솟고, 민생은 벼랑 끝에 서 있다. 청년들은 미래를, 노년층은 삶의 희망을 잃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정치가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서로의 탓만 하며 싸운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국정감사는 그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다.

이제 국감은 ‘국민의 국감’으로 돌아와야 한다. 국민이 묻는다. “누가 잘못했느냐”가 아니라 “누가 책임지느냐”를. 그리고 “누가 바꾸느냐”를. 여야 모두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국감에서만큼은 진심을 보여야 한다. 국민의 분노와 피로를 감동으로 바꾸는 국회, 민생을 회복시키는 국감,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이 절실히 바라는 정치의 모습이다.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거울이다. 그 거울이 흐려지면, 국가는 길을 잃는다. 올해 국정감사, 여야 모두 다시 거울 앞에 서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 눈을 똑바로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감사(監査)’의 시작이다.

정쟁에 빠진 국감은 국민을 잃고, 국민을 잃은 정치는 미래를 잃는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싸움이 아니라 성찰이다. 국정감사는 ‘정치의 거울’이다. 그 거울 속에 국민이 웃을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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