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그 넉넉한 달빛에 담긴 우리의 삶

2025년 추석, 변화를 넘어 공존의 명절로

김헌태논설고문

2025-10-05 10:08:39

 

 

 


달빛 아래 피어나는 전통의 의미

추석은 풍요와 나눔의 명절이다. 예부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전해온다. 농경사회에서 추석은 한해의 결실을 수확하고, 그 기쁨을 함께 나누는 자리였다. 햅쌀과 송편, 햇과일은 그 풍요의 상징이었다. 달빛에 비친 송편의 반달 모양은 모난 데 없이 원만하고 다복한 삶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이렇듯 추석은 단순한 음식문화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모여 서로의 수고를 위로하고 감사하는 삶의 의례였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추석은 예전과는 사뭇 다르다. 명절 음식 장만의 부담, 장시간 귀성길의 피로, 갈등과 불화로 얼룩지는 가족 모임 등이 새롭게 대두되는 문제로 지적된다. 명절을 앞두고 ‘명절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언론에 오르내리는 현실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추석의 의미를 단순히 과거의 전통으로만 묶어두어서는 안 된다. 시대에 맞게, 사람들의 삶의 구조에 맞게 추석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변화하는 명절 풍경, 세대 간의 간극을 메우다

최근 추석은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세대에게는 단순히 ‘고향 방문’이 아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긴 연휴는 여행의 기회가 되고, 가족보다는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많다. 과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이 당연시되던 풍습은 점차 다양화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명절의 개인화’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는 곧 명절의 본질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시대적 변화 속에서 또 다른 의미로 자리 잡고 있는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세대 간 간극을 어떻게 메우느냐에 있다. 부모 세대는 자녀들의 귀성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자녀 세대는 긴 이동 거리와 업무 부담, 생활 패턴 때문에 고향 방문을 쉽지 않게 느낀다. 이러한 갈등을 줄이려면 전통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추석은 결코 의무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이 모일 때 비로소 진정한 명절로 완성될 수 있다.

 

‘나눔’과 ‘배려’의 가치를 되새기다

추석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바로 나눔이다. 우리의 조상들은 추석이 되면 이웃과 음식을 나누고, 홀로 사는 노인을 챙겼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정신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정부와 지자체, 각종 기관과 기업들은 소외된 이웃을 위한 다양한 나눔 행사를 마련한다. 명절 때마다 푸드뱅크, 자원봉사 단체가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그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는 외로운 명절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독거노인, 저소득층,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민자와 노동자들은 추석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따뜻한 한 끼,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한가위 정신이다. 추석의 본질은 화려한 음식이나 풍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연대에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긴 연휴, 삶의 쉼표이자 새로운 출발선

2025년 추석은 유난히 길다. 일주일, 길게는 열흘 가까운 휴일이 주어지면서 국민들은 오랜만에 충분한 쉼을 누릴 수 있다. 그동안 바쁘게 달려오느라 미처 돌보지 못한 가족과 자신을 돌아보고,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어떤 이는 여행을 떠나 자연 속에서 마음을 치유하고, 또 어떤 이는 집에서 조용히 휴식을 취하며 책을 읽는다. 긴 연휴는 각자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삶의 균형을 찾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긴 연휴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내수 경기 침체 속에서 소비 진작의 긍정적 효과가 있기도 하지만, 장기 휴무로 인한 산업 현장의 공백, 해외여행으로의 과도한 지출, 교통 혼잡과 사고 위험 등도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다. 명절은 개인의 행복을 위한 시간이지만, 국가 경제와 사회 질서와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달빛 아래서 하나 되는 대한민국

추석 보름달은 언제나 우리에게 같은 메시지를 던진다. 하늘 높이 떠오른 보름달은 계층과 지역, 세대를 초월해 모두에게 똑같이 비춘다. 서울의 빌딩 숲에서도, 시골 들녘에서도, 먼 해외에서도 그 달빛은 차별 없이 내리쬔다. 그렇기에 추석은 민족이 하나로 이어지는 특별한 시간이다. 정치적 갈등과 사회적 분열로 마음이 흐트러진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그 달빛은 화합과 공존의 길을 비추고 있다.

2025년의 추석은 변화와 도전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중한 성찰의 기회를 준다. 빠른 변화 속에서도 전통을 잊지 않고,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가치를 함께 존중하며,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 그것이 곧 추석의 참뜻이다. 올해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다시 다짐해야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따뜻한 한가위가 되도록 서로를 위하고, 함께 손잡는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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