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이름으로 묻는다

"당신은 왜 그 자리에 서려고 합니까? 누구를 위해 그 꿈을 꾸었습니까?"

김헌태논설고문

2025-05-26 08:58:13

 

 

 

역사의 갈림길에 선 우리, 다시 묻는다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을 뽑는 조기 대선이 전국에서 치러진다. 예상치 못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갑작스럽게 앞당겨진 이번 선거는 단순한 권력 교체의 의미를 훌쩍 뛰어넘는다. 하루의 선택이 향후 5년, 아니 한 세대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현실은 어떠한가. 대통령 후보들은 연일 유세장을 누비며 화려한 공약의 향연을 벌이고 있지만, 그 공약들이 과연 국민의 절절한 삶의 현장을 제대로 담아내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더욱이 그 약속들이 실현이 가능한 청사진인지, 아니면 표심을 겨냥한 일회성 구호에 그치는 것인지 냉철하게 되돌아볼 시점이다.

이번 조기 대선은 혼란의 종착점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새로운 희망으로 도약할 수 있는 출발선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단순한 선거 경쟁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비전 경쟁의 장이 되어야 한다. 깨어있는 국민들은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예리하게, 냉정하게 묻고 있다. "당신의 공약은 정말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반복되는 구호, 달라진 게 없는 현실

선거철만 되면 반복되는 익숙한 풍경이 있다. 후보들의 입에서 쏟아지는 공약은 마치 무한 복제된 유세 녹음처럼 닮아있다. ‘경제 회복’, ‘일자리 창출’, ‘부동산 안정’, ‘복지 확대’, ‘미래산업 육성’. 말만 들으면 어느 하나 국민이 바라는 바와 어긋나는 것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아름다운 구호와 냉혹한 현실 사이의 간극이다.

지난 정부들도 똑같은 약속을 했었다. 그 약속을 믿고 국민들은 소중한 한 표를 던졌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어떠한가. 청년들은 여전히 취업난에 허덕이고, 중장년층은 불안한 노후를 걱정한다.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고, 교육 문제와 주택 문제는 여전히 '영원한 숙제'로 남아있다.

과연 지금 쏟아지는 공약들은 그간의 뼈아픈 실패에 대한 깊은 성찰 위에 세워진 것인가, 아니면 또다시 표를 얻기 위한 달콤한 유혹에 불과한 것인가.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화려한 수사에 현혹되지 않는다. 진정성 있는 실천 의지와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이 사라진 정치… 삶을 말하라

대통령 선거는 권력의 주사위 놀음이 아니다. 그것은 5천2백만 국민 개개인의 일상과 삶을 좌우하는 무거운 선택이다. 그런데도 유세장의 연단은 온통 "정권 교체" 혹은 "개혁 완수"라는 정치적 구호로 가득하다. 거대한 정치적 전쟁터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에 진정 필요한 것은 거창한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다. 거대한 담론 속에 가려진 ‘사람’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어느 아버지의 실직, 어느 어머니의 간병, 어느 청년의 학자금 빚더미 위 취업난, 어느 노인의 고독사, 이런 이야기들이 바로 국가가 해결해야 할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국민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그 해결을 국가적 사명으로 여길 줄 알아야 한다. 그런 마음가짐 없이는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공약의 무게, 종이 한 장이 아니다

공약은 선거용 전단지에 인쇄된 활자가 아니다. 그것은 국민 앞에 선 엄중한 약속이며, 국가 경영의 설계도이자, 미래 대한민국의 헌장과도 같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후보들은 수십 개의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공약이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한지, 소요 재원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기존 정책과 어떤 조화를 이룰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검토는 보이지 않는다.

화려한 개발 공약은 구체적인 사업계획도 없이 남발되고, 복지 확대 약속은 재정 추계 없이 제시된다. 이런 식으로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공약은 정치적 환상이 아니라 행정적 현실성 위에 서야 한다.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장밋빛 미래상에만 매혹되지 않는다. 하나의 숫자, 하나의 조항에도 과학적 검증과 철저한 검토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후보들은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국민의 대리인이다. 국민들은 공약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말하는 후보의 진정성을 본다. 한 마디 한 마디의 말투, 눈빛 하나, 과거의 행적 하나에서 그 사람의 철학과 인격을 읽어낸다. 지금까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떤 위치에서 국민과 호흡해 왔는지를 꿰뚫어 본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대선은 '공약의 경쟁'이 아니라 '신뢰의 경쟁'이어야 한다. 국민이 안심하고 나라를 맡길 수 있는 사람, 진정으로 국가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선거의 본질이다. 인기에 영합하는 달콤한 말보다는 책임을 지겠다는 단호한 의지와 소신 있는 정직함이 필요하다. 국민들은 그런 후보를 기다리고 있다.

 

국가의 품격, 대통령의 철학에서 시작된다

어떤 대통령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품격과 미래가 결정된다. 대통령은 단순한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국가 정신의 상징이자 구현체다. 이 중요한 시기에 대통령 후보들이 깊이 새겨야 할 것은 헌법 제1조 제2항의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는 대통령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의 삶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봉사하는 '국민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를 경영할 확고한 철학, 인간을 존중하는 깊은 윤리의식,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 있는 비전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품은 철학과 가치관이 곧 나라 전체의 품격과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이 대통령 후보에게서 가장 먼저 확인하고 싶어 하는 부분이다.

 

역사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이제 운명의 선거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국민들은 깊이 고민하고 있고, 후보들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선거의 진정한 의미는 '누가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진정으로 책임질 수 있느냐'에 있다. 공약은 실천될 수 있을 때만 가치가 있고, 정치는 국민을 위할 때만 존재할 이유가 있다. 권력은 봉사를 위해 주어지는 것이지 지배를 위해 허용되는 것이 아니다.

5천2백만 국민은 대통령 후보들을 향해 마지막으로 묻는다. "당신은 왜 그 자리에 서려고 합니까? 누구를 위해 그 꿈을 꾸었습니까?" 그리고 후보들은 반드시 명확하게 답해야 한다. "오직 국민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서, 오직 국가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국민의 대통령, 역사가 인정할 지도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의 무게와 책임이 이제 우리 모두의 어깨 위에 놓여 있다. 역사는 지켜보고 있고, 후세는 평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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