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구름의 경고… 장마철, 재난은 현실이다
장마전선이 본격적으로 남하하면서 전국이 비상이다. 예년보다 빠르게, 더 거세게 찾아온 장마는 곳곳에 호우 특보를 몰고 왔다. 부산 동래를 비롯해 경기도 가평, 충남 부여·보령, 경북 상주 등 5개 시군구에서는 산사태 주의보가 발령되며 주민대피령까지 내려졌다. 이미 충청권과 전라권, 일부 경상 내륙에 걸쳐선 시간당 50mm에 이르는 폭우가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국립공원 출입이 통제되고, 하천변 산책로와 지하차도는 물에 잠겨 통제된 상태다.
장마는 단순히 '비 오는 계절'이 아니다. 자연은 사람의 예측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너지고, 쓸어버리고, 앗아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하천이 범람하고 도로가 침수되며, 지반이 약한 산지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했다. 도심의 아스팔트 위로 비구름이 드리우면, 그 아래는 곧 재난 현장이 된다. 익숙한 길이, 갑자기 위험의 도화선으로 바뀌는 것이다.
반복되는 피해, 막을 수 없는가?
매년 장마철이 되면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억 원대의 재산 피해가 발생한다. 침수된 차량, 붕괴된 도로, 파손된 가옥… 그 흔적들은 시간이 지나도 지역 공동체의 상처로 남는다. 특히 산간과 농촌, 중소도시의 재난 대응 능력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미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지자체들은 '주의보' 하나에도 비상 상황에 휘청인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피해가 불가피한 것인가? 결코 아니다. 기상청은 이미 수일 전부터 강우 예보를 통해 장마전선의 위협을 경고했다. 환경부와 산림청, 소방 당국도 위험지역을 중심으로 대비 체계를 점검했지만, 여전히 '선조치-후복구'라는 안전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다. 땜질식 대응은 재난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인명피해를 키운다.
산사태와 침수… 대피와 예보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산사태는 장마철의 가장 치명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다. 비로 인해 포화된 토양은 한순간에 무너진다. 특히 20도 이상의 경사지를 따라 구축된 농가나 주택가, 도로변은 고위험 지역이다. 그러나 대피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대부분의 주민은 집을 떠나지 않는다. 생계와 애착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설마 여기까지’라는 안일함이 더 큰 문제다.
경고의 시그널은 무시당하기 일쑤다. 방송은 반복해서 '산사태 주의보 발령', '침수 위험지역 접근 금지'를 외치지만,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마철에는 단 1mm의 비가 재난의 마지노선을 넘게 한다. 주민 대피는 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필수다. 골든타임은 길지 않다. 수 분간의 판단이 생명을 가른다.
공공과 민간의 재난 협업 시스템을 구축하라
현대 사회의 재난 대응은 단순히 공무원이나 소방 당국의 몫만이 아니다. 마을 주민, 통장, 지역 자율방재단, 기업, 언론까지 모두가 함께하는 협업 시스템이 필요하다. 마을 단위 재난대피 시나리오가 구축되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주민과 당국이 합동훈련을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재난은 예방할 수 없다’라는 패배적 사고는 이제 그만둘 때다.
또한 재난 취약계층에 대한 집중 보호조치가 시급하다. 독거노인, 장애인, 이주노동자 등은 위기 상황에서 정보 접근조차 어렵다. 지자체는 이들을 위한 맞춤형 재난 알림 시스템을 도입하고, 평상시부터 대피 행동 매뉴얼을 생활화해야 한다. 특히 대중교통과 대피시설 연계는 시간과 거리의 장벽을 허물 수 있는 핵심 대책이 되어야 한다.
장마철 국가재난안전시스템, 점검받고 있는가?
매년 되풀이되는 장마철 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철저한 사전 점검이 중요하다. 국가재난안전대책본부가 존재하고, 지자체마다 자체 대응 매뉴얼이 있다 해도 그것이 실제로 작동하지 않으면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지난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참사처럼, 대응 지침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던 참사는 오늘도 반복될 수 있다.
국립공원 출입 통제, 저지대 도로 폐쇄, 배수펌프 가동, 사전 예고 방송 등은 모두 위기 대응의 기본 단계다. 하지만 문제는 실행력과 속도다. 국민 한 명, 단 한 명의 생명도 지켜내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실무라인에 녹아들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각 지자체장은 오늘도 ‘안전지킴이’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져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비무환, 국민의 생명은 행정의 최우선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은 고사성어가 아니라 재난의 교훈이다. 장마철에는 한순간의 방심이 인명피해로 이어진다. 재난은 자연현상이지만, 피해는 인재다. 철저한 예방과 대비는 행정이 책임져야 하고, 시민은 신속한 판단과 협조로 자신과 이웃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국가는 단 한 명의 국민도 잃지 않겠다는 신념 아래 재난 대응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실시간 기상정보 공유, 위험지역 사전 지정과 출입제한, 생활밀착형 재난교육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장의 소리를 반영한 실천적 안전 정책이 요구된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반복된 '주의보'가 아니라, 주민의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실행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재난은 멀리 있지 않다… 지금, 바로 당신 곁에 있다
장마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대비하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는 얼마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가? 피해가 발생한 후에야 부랴부랴 움직이는 관행은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빗물이 넘치고, 토사가 밀려 내리며, 누군가는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언제까지 언론 보도로만 재난을 마주할 것인가. 장마는 해마다 온다. 그러나 피해는 매년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철저한 대비, 유비무환의 자세, 이웃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곧 불행한 재난을 막는 가장 강력한 방패다. 바로 지금이 그 방패를 들고 일어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