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된다는 것이 이토록 버거운 나라

포름알데히드 배추·제주 실종 사건 허위 종결·대법원장-청와대 충돌… 사건·사고가 일상이 된 대한민국의 자화상

김헌태논설고문

2026-09-04 07:26:26

 

 

 

포름알데히드 배추에서 실종 허위 종결까지 — 국민은 어디서도 안전하지 않다

2026년 8월의 대한민국은 쉴 새 없이 터지는 사건·사고의 연속이었다. 8월 23일, 중국 허베이성 캉바오현에서 WHO 지정 1군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배추를 담가 신선도를 유지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드러났다. 중국 공안은 용의자 3명을 형사 구류했고, 해당 배추는 장쑤·안후이성 등지로 유통됐다. 한국으로의 유입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삽시간에 번졌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 유통 중인 중국산 배추김치 50건·배추 29건·절임 배추 3건 등 82건을 긴급 수거·검사한 결과 포름알데히드는 검출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이 '다행'이 어느 날 갑자기 '불행'으로 뒤집힐 수 있다는 공포는 사라지지 않았다. 올해 1∽7월 중국산 김치 수입량은 19만4,403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 증가했고, 수입액은 1억2,593만 달러로 16.3% 늘었다. 매일 식탁에 오르는 김치가 언제 독소를 품고 들어올지 모른다는 불안을 안고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현실이다.

밥상의 공포가 채 가시기도 전에 제주에서 참담한 소식이 들려왔다. 올 5월 제주에서 실종됐던 37세 여성 장 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8월 24일 숙소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400미터 지점에서 발견됐다. 경악스러운 것은 그 뒤에 드러난 사실이다. 이 실종 사건을 담당했던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사건을 허위로 종결했다는 의혹을 받아 직무 유기·공전자기록 위작·행사·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긴급체포 됐다. 시신이 400미터 밖에 있었는데 '실종 종결'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경찰이 오히려 사건을 덮었다는 의혹 앞에서 국민은 분노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먹는 것도, 실종도, 국가가 제대로 지켜주지 못하는 나라 — 이것이 2026년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대법원장과 청와대의 정면충돌 — 삼권분립이 흔들리는 나라

사법부와 행정부의 갈등도 헌정사적 위기 수준으로 치달았다. 8월 28일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제청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의 임명 절차를 밟지 않기로 했다. 제청된 대법관 후보를 대통령이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권은 헌법 제104조에 명시된 권한이다. 삼권분립의 근간인 사법부 독립이 흔들리는 초유의 사태라는 법조계의 우려가 쏟아졌다. 조 대법원장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선관위 사태에서 헌법기관의 무책임을 목격했고, 이번에는 행정부가 사법부의 헌법적 권한을 침해한다는 논란까지 가세했다. 헌법이 설계한 국가 권력의 균형추가 곳곳에서 흔들리고 있다.

이 모든 혼돈의 배경에는 정치가 있다. 여당인 민주당은 8월 전당대회를 치르면서 당내 경선 열기로 들끓었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보수 대통합의 구호 속에서 2028년 총선 공천권을 둘러싼 셈법에 여념이 없었다. 국회가 민생 입법에 집중해야 할 시간에 언론에서는 여야의 공방이, 법원에서는 각종 정치적 재판이, 청와대에서는 사법부와의 갈등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서 100만 폐업자의 눈물, 취업 못 한 청년의 좌절, 고금리에 허덕이는 서민의 한숨은 정치권의 시야 밖에 놓였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라고 외치는 그 순간에도, 국민은 정치와 무관한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었다.

 

미국은 동맹인가 불확실성인가 — 중국은 우리를 어떻게 보는가

국내의 혼돈이 이미 충분한데 국제 정세는 대한민국에 더 큰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는 '살얼음판'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 관세 압박,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재편 압력을 동시에 구사하며 한국에 전방위적 부담을 지우고 있다. 동맹이면서도 언제 청구서가 날아올지 모르는 관계다. 대한민국이 미국과의 무역 협상,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 반도체 공급망 재편 협력을 동시에 처리하면서 외교·경제적 고도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친미·친중 세력 간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국가 이익을 중심에 놓아야 할 외교 논쟁이 진영 싸움으로 변질되는 현실이 또 하나의 혼돈이다.

중국은 더 냉혹하다. 포름알데히드 배추 사태에서 드러났듯, 한국 국민의 식탁에 오르는 음식조차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 중국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올해 1~7월 중국산 김치 수입액은 16.3%나 증가했다. 중국은 한국을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 말하면서 발암물질 배추를 유통하는 나라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시선은 무한한 우호가 아니라 실리와 압박의 조합이다. 사드 배치를 둘러싼 한한령의 기억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국과의 관계 설정은 단순한 외교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밥상과 직결된 생존의 문제다. 중국을 감싸는 세력과 비판하는 세력 간의 갈등이 사회적 균열을 심화시키는 것도 국민이 감당해야 할 피로다.

 

국민이란 무엇인가 — 권력의 도구가 아닌 국가의 주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쯤에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나라에서 국민은 무엇인가. 헌법 제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 국민은 정치인들의 권력 쟁취를 위한 도구로 소비되고 있지 않은가.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을 위해' 외치지만 선거가 끝나면 국민은 없어지는 반복 — 이 구조가 이 나라 정치의 고질적 병폐다. 포름알데히드 배추로 밥상이 위협받고, 경찰이 실종 사건을 덮고, 대법원장과 청와대가 충돌하고, 증시는 하루에도 수십 퍼센트씩 요동치는 이 현실 앞에서 국민은 두려움과 피로와 분노를 동시에 삼키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것이 행복한 국민의 삶인가.

이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묻는다. 당신들이 말하는 '국민을 위한다'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100만 폐업자, 취업 못 한 청년, 식탁이 불안한 서민, 실종 허위 종결로 가족을 잃은 유족, 증시 손실로 삶이 무너진 개미 투자자 — 이들 중 누구 한 명의 삶이 당신의 정치 계산표에 들어 있는가. 올바른 지도자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 소박한 질문에 진심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아첨꾼과 모리배가 득세하고, 도덕적 해이가 만성화된 정치판에서 국민은 갈수록 정치에서 등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등을 돌리는 것이 해답이 아님도 안다. 자유민주주의는 참여하는 국민만이 지킬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의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절망이 아니라 각성이다. 그리고 그 각성을 바탕으로 정치를 바꾸고 나라를 바로잡는 것이 이 시대 대한민국 국민의 역사적 소명이다. 국민이 된다는 것이 이토록 버거운 나라에서, 그래도 국민은 오늘도 일어나 하루를 산다. 그 끈질긴 생명력이 이 나라의 진짜 힘이다. 그 힘에 부끄럽지 않은 정치를 지금 당장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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