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요동치는데, 정치는 좁은 골목에 갇혔다

김헌태논설고문

2026-04-11 20:24:03

 

 

 

 호르무즈의 불길이 세계를 삼켰다 — 2주 휴전의 안도는 착각에 불과하다

역사는 때로 단 하나의 좁은 해협에서 결정된다.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기습 공습으로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은 38일 만에 '2주 휴전'이라는 불완전한 봉합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을 종전(終戰)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휴전 발효 이후에도 이란군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에 '이란 군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무전을 보내며 실질적인 해상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하루 최대 통과 선박이 15척으로 제한된 채다.

전쟁 전 하루평균 140척이 오가던 해협이, 지금은 그 10%만 열려 있다.

지금 이슬라마바드에서 JD 밴스 미 부통령이 이끄는 협상단과 이란 측이 마주 앉아 종전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의 공기는 냉랭하다.

이란은 미국의 15개 항 제안을 '극도로 야심적이고 비논리적'이라며 거부했고, 자국이 동결된 약 1,000억 달러의 해외 자산 해제, 중동 내 미군 철수, 호르무즈 통제권 유지를 핵심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란 국가안보위원회는 이번 사태를 미국의 '역사적 패배'로 규정하며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직 국무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제 남은 질문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어떻게 공식화할 것인가뿐'이라고 냉정하게 짚었다.

 

협상이 다시 틀어질 경우 유가는 즉각 재반등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정부도 이 점을 정면으로 인정하고 있다.

관계자도 '중동 전쟁 휴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안정적으로 유가 흐름이 이뤄질 가능성을 예측하기 쉽지 않다'라며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현재 3차 석유제품 최고가격은 리터당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으로 동결됐지만, 싱가포르 국제 석유제품 가격(MOPS)은 변동성을 여전히 키우고 있다. 2주짜리 휴전에 한숨 돌릴 여유가 없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협상이 깨지는 순간, 대한민국의 기름값은 다시 요동칠 것이고,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삶 속으로 파고들 것이다.

 

 

불확실성의 시대, 글로벌 경제 재편 — 개방과 협력만이 살길이다

이번 중동 전쟁이 세계 경제에 던진 교훈은 명확하다.

어떤 나라도, 어떤 경제도 홀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 하나가 막혔을 뿐인데, 국제 유가는 한 달 새 40% 넘게 뛰었고, 한국 주식시장은 출렁였으며, 환율은 위기 수준으로 치달았다.

나프타 수급 차질로 종량제봉투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졌다.

지구 반대편의 전쟁 하나가 이토록 즉각적으로 한국 시민의 일상을 뒤흔든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번 뼈저리게 확인했다.

그런데 이 위기는 단순히 중동발 에너지 쇼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이란·대러시아 제재와 일시적 완화, 상호 관세 카드, 자국 우선주의 통상 정책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체가 재편의 회오리 속에 놓여 있다. 2026년 4월 3일 미국이 이란과 러시아에 대한 일부 유류 제재를 일시적으로 완화한 것도, 단순한 인도주의적 조치가 아니라 유가 안정과 동맹국 견인을 동시에 노린 고도의 지정학적 계산의 결과였다.

세계는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개방과 폐쇄, 협력과 압박을 동시에 구사하는 복잡다단한 전략 게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은 에너지 자급률이 극히 낮고 수출 의존도가 높은 개방경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국 이익만을 외치는 폐쇄적 논리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오히려 다변화된 에너지 공급망 구축, 중동 의존도 탈피를 위한 UAE·카타르·미국·호주와의 장기 에너지 협력,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전환 가속화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국가 전략이다.

정부가 UAE로부터 원유 2,400만 배럴을 추가 확보하고 원전 가동률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린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위기가 상시화된 시대에 '임기응변식 대응'을 넘어 '구조적 에너지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이 시대 국가 생존의 핵심 과제다.

 

 

연막 속에 간을 보는 정치 — 공천 잡음에 매몰된 이 나라 정치의 치부

이런 엄중한 국제 정세 속에서 6·3 지방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의원도 선출된다.

국내외 위기가 중첩된 이 중차대한 시기에, 지역의 미래를 이끌 진정한 리더와 국민을 대표할 일꾼을 뽑아야 하는 선거다.

그런데 지금 우리 눈에 보이는 정치 현실은 어떠한가.

한마디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다.

야당에서는 공천을 둘러싼 계파 갈등이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수준으로 비화하고 있다.

여당에서도 후보가 난립하는 가운데 선명한 비전과 능력을 갖춘 인물이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막전술'이다. 나설 것인지 말 것인지 간을 보는 인물들이 즐비하다. 국민 앞에 당당하게 출마를 선언하고 비전을 제시해야 할 시점에, 계파 눈치를 보며 공천 결과를 기다리는 줄서기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 지역 현안은 실종됐고 중앙 정치의 대리전 구도만 남았다.

역대 지방선거 가운데 가장 함량 미달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에너지 위기와 물가 앙등으로 신음하는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공천 계산기만 두드리는 정치는 그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분명하다.

연막이 아니라 명쾌함이다.

계파 충성이 아니라 지역 헌신이다.

줄서기가 아니라 스스로의 비전으로 당당히 서는 리더십이다.

기름값 폭등으로 생계가 위협받는 소상공인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에너지 위기로 생산 차질을 겪는 지역 중소기업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지, 청년이 지역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후보가 이번 선거에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정치권은 지금 이 질문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이 시대 대한민국 정치의 치부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 이제는 말이 아닌 실천이다 — 국민의식이 정치를 바꾼다

이 모든 병폐의 뿌리를 파헤치면 두 가지 구조적 문제에 닿는다.

첫 번째는 정당 시스템의 왜곡이다.

공천이 계파 수장의 의중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에서는 아무리 능력 있고 헌신적인 인물도 '낙점'이 없으면 나설 수 없다.

이 구조가 반복되는 한, 지방선거는 지역 인재 발굴의 장이 아니라 중앙 계파 세력의 지방 거점 나눠 먹기 게임으로 전락한다.

정당은 후보 공천 과정을전면 공개하고 지역 주민의 직접 참여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그것이 정당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두 번째는 유권자 의식의 각성이다.

정치 혐오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혐오가 투표 포기로 이어지는 순간, 나쁜 정치는 더욱 공고해진다.

낮은 투표율은 조직력을 갖춘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하고, 변화를 원하는 시민들에게는 불리하다.

이번 6·3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역 권력 교체의 선거가 아니다.

에너지 위기와 물가 불안 속에서 내 지역의 살림을 맡길 진정한 일꾼을 가려내는 선거이며, 재·보궐을 통해 국회의 구성도 일부 결정되는 중대한 민주주의 행사다.

한 표의 무게가 어느 선거보다 무겁다.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은 오랜 시간 구호로만 외쳐왔던 과제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말로만 해서는 안 된다.

제도 개혁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면, 유권자가 먼저 움직이면 된다.

연막전술로 당당하지 못한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는 것이 개혁이다.

계파 출신이 아닌 지역 현안에 밝고 실력 있는 인물을 발굴해 지지하는 것이 개혁이다.

선거 결과는 정치권에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수단이다.

국민이 깨어 있을 때, 정치도 깨어난다.

 

 

난세가 영웅을 부른다 —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의 조건

'난세에 영웅이 난다'라는 말은 옛말이 아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진정한 위기의 시대에 진정한 지도자가 탄생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 당시 대한민국은 에너지 자립화와 중동 외교 강화로 위기를 돌파했고,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이라는 국민적 자발성이 위기 극복의 동력이 됐다.

이 두 사례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리더가 국민과 함께 고통을 분담하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했을 때, 위기는 오히려 도약의 발판이 됐다는 점이다.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의 조건은 복잡하지 않다.

첫째, 국제 정세를 읽는 안목이다.

호르무즈 협상의 향방, 미·중 패권 경쟁의 파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흐름을 지역 정책과 연결해 사고할 수 있는 시야가 필요하다.

지방 지도자라도 세계를 읽지 못하면 지역을 제대로 이끌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둘째, 민생을 향한 구체성이다.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기름값 폭등 속에서 주민의 교통비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물가 오름 속에서 취약계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실질적 답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셋째, 국민을 두려워하는 자세다.

유권자의 선택을 한 번의 공천으로 종결짓지 않고, 당선 이후에도 주민 앞에 끊임없이 책임지는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세계는 요동치고, 국민은 고통 속에 있다.

이 시대는 영웅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영웅은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국민이 깨어서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비로소 영웅이 탄생한다.

연막 속에 간을 보는 정치에 분노하되, 그 분노를 투표장에서 표현해야 한다.

계파 줄서기로 당선된 인물이 아니라, 지역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인물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6·3 지방선거가 대한민국 정치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는 전환점이 되기를,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한 시민으로서 간절히 바란다.

정치개혁은 유권자의 손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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