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버스 다음은 빌라냐 — 청년을 분노하게 만든 졸속 대책의 민낯
8월 13일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안정화 대책 속에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이 들어 있었다. 무주택 청년이 4억 원 이하 빌라·오피스텔 등 비(非)아파트를 구입할 때 집값의 최대 80%까지 저금리로 대출해주는 정책이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온라인은 분노로 들끓었다. '시장에서 기피하는 빌라를 청년들한테 떠넘기는 건가요?' '언제는 폐버스에 살라더니 다음은 빌라네.' 이른바 '설거지론'까지 등장했다. 시장에서 외면받는 비아파트 물량을 자산이 가장 얇은 청년층에게 소화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과민 반응이 아니다. 8월 14일 현재 서울에서 거래된 전용 60㎡ 초과~85㎡ 이하 오피스텔의 평균 매매가는 7억 4,980만 원으로 대출 기준인 4억 원을 훌쩍 웃돈다. 서울에 사는 청년에게 이 정책은 처음부터 '그림의 떡'이다.
이것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7월 7일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폐버스를 활용한 청년 주거 아이디어'를 제안했다가 거센 비판을 받았다. 7월 12일 국토교통부는 고시원의 책상 설치 의무를 없애고 욕조 설치를 허용하는 건축기준 개정을 예고했다. 고시원을 사실상 1인 가구 주거 공간으로 공인하겠다는 발상이다. 폐버스, 고시원, 그리고 이번엔 빌라. 이 일관된 흐름이 청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하나다. '눈높이를 낮춰라.' 그러나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눈높이가 낮아진 정책이 아니다. 자신의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고, 안전하고 쾌적한 주거 환경에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다. 그 최소한의 요구조차 외면하는 정책은 청년의 분노를 넘어 국가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킬 뿐이다.
취업자 45개월 연속 감소 — 청년 고용의 구조적 붕괴가 현실이 됐다
청년 주거 문제의 뿌리는 청년 고용의 붕괴에 있다. 2026년 8월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7월 고용 동향'에 따르면,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2024년 5월 이후 27개월 연속 하락했다. 취업자 수는 45개월 연속 감소했다. 이것은 단기 경기 변동이 아니다. 청년층의 노동시장 진입 경로 자체가 구조적으로 좁아진 결과다. 구직 활동에 나선 청년은 늘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일자리 확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년 취업자는 344만 1,000명으로 1982년 연령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청년 실업률은 6.8%로 2022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며, 실업률 상승 폭(1.3%포인트)은 2021년 1월 이후 5년 6개월 만에 가장 컸다. 청년 실업자·취업준비생·쉬었음 인구를 합한 비중은 2026년 7월 현재 청년 인구의 13%(101만 2천 명)에 달한다. 100만 명이 넘는 청년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자리의 문제는 단순히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없으면 결혼이 미뤄지고, 결혼이 미뤄지면 출산이 줄고, 출산이 줄면 나라의 미래가 어두워진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2024년 이후 반등해 2025년 0.80명, 2026년 1월 월별 합계출산율 0.99명까지 올라오는 긍정적 신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반등을 기쁘게 볼 수만은 없다. 아직 0명대를 벗어나지 못했고, 청년 실업과 주거 불안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 반등이 지속될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 이전에, 국가가 청년에게 제공해야 할 기본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국가적 실패의 산물이다.
빚투·주식·선관위… 청년의 분노가 광장을 채우는 이유
청년들의 분노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다. 정당한 항의다. 취업이 막히자 주식 투자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고, 레버리지 ETF의 급락으로 56조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집값은 오르는데 청년이 살 수 있는 집은 없고, 그나마 나온 대책은 빌라와 고시원이다. 결혼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생활이 더 팍팍해질 것 같다는 공포가 비혼과 비출산을 합리적 선택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좌절과 분노가 올림픽공원 앞으로 향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선관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청년들의 시국선언과 시위는, 단순히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것이 아니다. 내 한 표가 제대로 보장되느냐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이며, 나아가 이 나라가 자신들을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지에 대한 총체적 항의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당쟁이 망국의 씨앗이 됐듯, 지금 대한민국 정치권의 행태는 그 기억을 소환하게 만든다. 여야는 청년의 고통을 정쟁의 소재로 소비하는 데는 열심이지만, 청년의 눈물을 닦아줄 구체적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장면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당권 경쟁에 에너지를 쏟고, 국민의힘은 보수대통합의 구호 속에서 공천권 셈법에 여념이 없다. 그 사이에서 청년들의 절망은 쌓여가고, 결혼 기피와 저출산은 가속화되며,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두워지고 있다.
청년에게 희망을 — 정부와 정치가 반드시 해야 할 일
청년 위기는 이미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다. 국가가 나서야 한다.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청년 주거 정책을 근본부터 다시 설계해야 한다. 빌라·고시원·폐버스식 눈높이 낮추기 대책은 즉각 폐기해야 한다. 역세권 청년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하고, 청년이 시세 30~40% 수준에서 살 수 있는 '청년 전용 공공분양' 물량을 수도권과 지방 주요 도시 모두에 공급해야 한다. 장기 저리 전세자금 대출 한도를 현실화하고, 전세 사기 피해 방지를 위한 임차인 보호 시스템을 완비해야 한다. 둘째, 청년 일자리 창출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해야 한다. AI 시대에 사라지는 직업군을 대체할 새로운 직군 양성 프로그램을 지금 당장 설계해야 한다. 스타트업 창업 생태계 지원을 확대하고, 지방에서도 양질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지방 기업 육성에 파격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셋째, 결혼·출산·육아를 가로막는 비용 장벽을 국가가 허물어야 한다. 결혼 지원금, 신생아 지원금의 일회성 지원을 넘어 공보육 인프라를 전국적으로 확충하고 육아 비용의 실질적 국가 부담 비율을 대폭 높여야 한다. 육아휴직을 쓰면 불이익을 받는 직장 문화를 뿌리 뽑는 강력한 법제적 장치도 필요하다. 넷째, 금융 교육을 강화하고 청년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레버리지 ETF로 인한 청년 투자자 피해가 재발하지 않도록 고위험 상품에 대한 투자자 교육을 의무화하고, 금융당국의 선제적 감독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빚을 내어 투기를 부추기는 유튜버와 온라인 채널에 대한 규제도 병행돼야 한다. 다섯째, 무엇보다 정치권이 청년을 정쟁의 도구가 아닌 국정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 청년부 장관이나 청년 전담 부처를 설치하고, 모든 입법 과정에서 청년 세대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청년이 희망을 갖는 나라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다. 폐버스와 빌라로 청년을 달래려 하는 정치는 이 나라의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다. 청년의 분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 시대 정치의 가장 시급한 책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