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태어나 영어가 더 익숙한 아이들이 태평양을 건너 대한민국을 찾았다. 뉴욕과 펜실베이니아, 콜로라도, 코네티컷, 뉴저지 등에서 살아온 동포 2세와 3세들이다. 이들에게 대한민국은 분명 조국이면서도 어쩌면 낯선 나라일 수 있다. 부모와 할아버지·할머니에게 수없이 들었던 나라, 밥상에서 김치와 불고기로 만났던 나라, 명절이면 한복과 세배로 희미하게 느꼈던 나라가 이제 눈앞의 현실이 됐다. 공항에 내려 한국의 공기를 마시고 한국말을 듣는 순간, 이들은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몸으로 만나기 시작한다.
그 만남을 위해 문화예술계 고참 지도자인 이강용 교수가 나섰다. HESSED HERITAGE 한국 디렉터이자 대한민국 프로그램 총괄 디렉터를 맡은 그는 전통예술과 한국 역사교육, 국제문화교류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다. 특히 한량무를 비롯한 한국 전통 공연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며 다음 세대가 한국문화의 예술성과 철학, 문화적 정체성을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그가 미국의 교포 사회와 교류하며 이들을 모국으로 초청하고 대한민국 곳곳을 직접 만나게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광이 아니라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여행
이번 ‘2026 국제 청소년 문화·글로벌 리더십 캠프’의 일정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8월 3일부터 15일까지 이어지는 일정에는 역사와 문화유산, 예술과 교육, 봉사와 국제교류가 촘촘히 배치돼 있다. 유명 관광지를 돌아보고 사진 몇 장 찍은 뒤 돌아가는 흔한 여행과는 성격부터 다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문화와 정신을 만들어 왔는지를 몸으로 체험하도록 구성돼 있다.
대전에서는 다도와 다식의 예절을 배우고 활시위를 당기며 국궁의 정신을 접한다. 전통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고 시장을 찾아 한국인의 생활 문화도 만난다. 공주에서는 백제문화와 세계유산을 살피고 박물관을 찾는다. 보령에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머드축제를 경험하고 도자기 마을에서는 흙을 만지며 전통 도예를 배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관광지 이름이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이 땅의 사람들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왔는지를 배우는 것이다.
한복 한 벌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정신이다
문화는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한복을 입는 것보다 왜 한복에 그런 선과 색이 담겼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궁의 화살을 과녁에 맞히는 것보다 자신을 다스리는 정신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도자기를 만드는 것보다 흙을 빚으며 기다리는 장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춤사위를 흉내 내는 것보다 그 몸짓 속에 담긴 한국인의 흥과 한, 절제와 품격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화예술인의 역할이 커진다. 문화는 책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 춤을 배울 때 스승의 몸짓에서 전해지고, 장인을 만날 때 손끝에서 전해지며, 어른과 마주 앉아 차 한 잔을 나눌 때 예절과 정서가 전해진다. HESSED HERITAGE가 문화와 예술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공통의 언어로 규정하고 역사·예술·교육·봉사를 결합한 국제교육 프로그램을 지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K-컬처의 진짜 힘은 ‘뿌리’에서 나온다
지금 세계는 한국을 바라보고 있다. K팝과 드라마, 영화, 음식, 뷰티와 패션은 더 이상 일부 마니아들의 문화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개최한 ‘2026 MyK FESTA’ 역시 K-콘텐츠를 넘어 음식·패션·뷰티와 일상 문화까지 아우르며 세계인을 대상으로 K-컬처의 폭을 넓혔다. 이제 대한민국의 문화적 영향력이 세계인의 일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K-컬처의 진짜 경쟁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세계인이 한국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도 중요하고 한국 음식을 먹는 것도 반갑다. 그러나 그 문화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뿌리가 있어야 한다. 전통과 현대가 연결되어야 한다. 세계적인 K팝의 역동성과 우리 전통 장단의 흥, 현대적인 영상미와 한국인의 미의식, 오늘의 공동체문화와 오래된 정(情)의 문화가 연결될 때 한국문화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문명적 자산이 된다.
동포 2·3세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미래다
여기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사람들이 바로 차세대 재외동포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모국어와 모국 문화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한국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한국의 역사와 문화가 자신의 삶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체감하지 못하는 젊은 세대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당부만이 아니다. 한국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낄 기회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정부도 이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 재외동포청은 2026년도 정책과 예산에서 차세대 동포의 한인 정체성 교육을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한글학교 지원을 강화하고 차세대 동포 모국 초청 연수를 확대하는 정책 방향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 모국 초청 연수에서도 재외동포청은 차세대 동포들이 모국 문화에 대한 정체성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지적하며 모국 친구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한인 정체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을 찾았다는 점이 더욱 값지다
이번 프로그램에서 눈길을 끄는 또 하나는 대한민국을 서울 하나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대전에서 시작해 공주와 보령, 임실, 통영, 부산, 청주로 이어진다. 임실에서는 전통예술과 지역 예술인을 만나고 통영에서는 역사와 예술, 비다문화를 체험한다. 부산에서는 국제시장과 해양도시의 문화를 접한다.
청주에서는 향교를 찾아 전통 예절과 유교문화를 배우고, 광복절인 8월 15일에는 제81주년 광복절 공식 기념행사에 참석하도록 일정이 짜여 있다. 이어 직지 관련 문화유산을 살피고 국제문화사절단 수료식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대한민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서울의 빌딩만 봐서는 안 된다. 지역의 시장과 골목, 산과 바다, 향교와 박물관, 장인과 예술인을 만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진짜 얼굴은 그 모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문화외교는 거창한 회담장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는 외교라고 하면 정상회담이나 정부 간 협정을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는 외교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진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마신 차 한 잔, 처음 입어본 한복, 직접 빚은 도자기, 시장 상인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훗날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한 사람의 시선을 바꿀 수 있다. 이것이 민간 문화외교가 가진 힘이다.
특히 동포 2·3세는 미국 사회의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한국과 정서적·문화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는 소중한 인적 자산이다. 재외동포청도 2026년 업무 방향에서 한인사회 네트워크 강화와 동포 역량을 대한민국의 외교·경제적 자산으로 연결하는 상생·협력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한국을 깊이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향수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사람의 문화예술인이 놓은 작은 다리
이런 점에서 이강용 교수와 같은 문화예술인들의 역할을 주목하게 된다. 국가 간 교류라는 거대한 말 뒤에는 결국 사람을 초청하고, 숙소와 이동을 챙기고, 지역의 예술인과 연결하고,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 애쓰는 누군가의 수고가 존재한다. 화려한 행사보다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이 국제교류의 실체다.
첨부 자료에 따르면 HESSED HERITAGE는 뉴욕 디렉터 안지젤 대표가 현지 청소년 문화예술교육과 국제교류를 총괄하고, 한국에서는 이강용 교수가 교육 프로그램을 이끌며 류재미 명예회장과 안다영 행정디렉터 등이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이런 민간 네트워크가 지속적으로 성장한다면 일회성 방문이 아니라 한국과 미국의 다음 세대를 잇는 문화예술 교류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대한민국은 내 뿌리입니다”라는 기억을 선물하자
이번 여정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기억 속에는 무엇이 남을까.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풍경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내 부모와 조부모가 태어난 나라가 이런 곳이었구나”라는 발견일 것이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사람은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다.
그래서 차세대 동포의 모국 방문은 과거를 보여주는 사업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사업이다. 한국을 사랑하라고 강요할 필요도 없다. 좋은 한국을 보여주면 된다. 품격 있는 전통을 보여주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뿐 아니라 아픈 역사도 솔직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발전된 대한민국과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대한민국까지 보여주면 된다. 판단은 그들의 몫이다.
대한민국의 가장 긴 외교는 다음 세대에서 시작된다
세계 곳곳의 동포 2세, 3세,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4세들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로 기억될 것인가. 이 질문은 이제 재외동포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어떤 국가로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질문이다. 정부가 차세대 동포의 정체성 교육을 강화하고 모국 연수와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것도 바로 이런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대전의 찻잔에서 시작된 인연이 공주의 백제문화와 보령의 바다를 지나 임실의 장단, 통영의 예술, 부산의 항구, 청주의 향교와 광복절의 태극기로 이어진다. 그리고 언젠가 뉴욕과 필라델피아, 콜로라도의 어느 교실과 직장, 지역사회에서 그 기억이 다시 대한민국과 연결될 것이다. 그것이 문화의 힘이다. 국경을 넘어도 사라지지 않고 세대를 건너도 다시 피어나는 것이 문화다.
미국 교포 2·3세들이 이번 여정을 통해 대한민국을 단순히 ‘부모의 나라’가 아니라 ‘나의 뿌리가 살아 있는 나라’로 가슴에 품고 돌아가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훗날 이들이 한국과 미국을 이어주는 새로운 문화의 다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 사람의 문화예술인이 놓은 작은 다리 위로 오늘 스무 명 남짓의 젊은 세대가 건너오고 있다. 지금은 작은 발걸음처럼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다시 세계로 돌아가 대한민국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친구와 자녀의 손을 잡고 이 땅을 찾는 날이 온다면 그 발걸음은 결코 작지 않다.
문화는 사람을 잇고, 뿌리는 세대를 잇는다. 그리고 그 연결이 결국 대한민국의 미래를 세계와 잇는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차세대 동포들의 모국 방문을 더욱 따뜻하게 맞이하고, 이런 민간 문화예술 교류를 소중하게 키워나가야 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