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여, 국민 앞에 무릎을 꿇어라

김헌태논설고문

2026-06-26 19:49:01

 

 

국정조사장에서 드러난 오만 — 증인 16명 집단 불출석, 이것이 헌법기관의 민낯이다
6월 23일 국회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 관리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 회의가 열렸다. 여야가 합의해 증인으로 채택한 선관위 관련자 40여 명 가운데 무려 16명이 국정조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중앙선관위원 7명 전원이 불출석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핵심 지역을 관할한 오민석 전 서울시선관위원장, 민소영 전 송파구 선관위원장도 나오지 않았다. 위철환 직무대행과 노태악 전 위원장은 출석했지만, 정작 책임 있는 비상임위원 전원이 집단으로 등을 돌린 것이다. 여당 간사 윤건영 의원은 '짬짜미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질타했고, 야당 간사 서범수 의원도 '내 일이 아니고,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당 김은혜 의원은 '국민에 대한 집단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여야가 한목소리로 선관위를 질타한 것은 이번 사태가 정파를 떠난 헌정 질서의 문제임을 방증한다.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뒤늦게 출석한 관계자들의 태도였다. 비판이 쏟아지자, 불출석 16명 중 13명이 오후 들어 마지못해 모습을 드러냈지만, 노태악 전 위원장은 투표용지 인쇄 축소 지침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며 발뺌으로 일관했다. 선관위는 사태 최초 인지 시점을 오전 11시 34분이라고 했다가 이전 발표와 달라진 것이 드러나 엉망진창이라는 지탄을 받았고, 투표용지를 추가 공급받은 투표소 수도 말이 바뀌었다. 책임 회피에 급급한 답변으로 일관하며 마치 자신들은 이 사태와 아무 관련이 없는 방관자인 양 처신했다. '범정부적 선거사무 지원 의무화'를 재발 방지 대책으로 제시한 것은 그 뻔뻔함의 절정이었다. 요컨대 선관위의 실수를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떠안기겠다는 발상이다. 헌법기관으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책임을 타 기관에 전가하는 이 행태야말로 선관위가 얼마나 국민과 동떨어진 특권 의식에 빠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민 불신이 70%에 이르고 20·30대에서는 80%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이 오만한 태도에 대한 국민의 냉정한 평가다.

 

지자체 공무원의 폭로, 전직 직원의 고백 — 곪아 터진 구조의 실체가 드러났다
국정조사장 밖에서 들려온 폭로가 더 충격적이었다. 지방선거 현장에서 선거 관리 업무를 실제로 수행한 지자체 공무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선관위는 예산도, 인력도, 충분한 교육도 제공하지 않은 채 투표 관리의 현장 책임 전부를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떠넘겨왔다는 것이다. 선관위 현장 업무를 직접 경험한 전직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자체 투표 관리관에 대한 교육이 2시간씩 두 번에 불과하다고 폭로했다. 이 충격적인 증언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일회성 실수가 아니라 수십 년간 누적된 구조적 부실의 결과임을 명백히 보여준다. 더욱이 선관위 재직 경험이 있는 한 직원은 전산 입력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내부 문제점까지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선관위 직원 스스로가 조직 내부의 구조적 허점을 고백한 것이다.

 

이 폭로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다. 선관위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거대 조직이면서도, 정작 선거 관리의 핵심 현장 업무는 단기 교육을 받은 지자체 공무원들에게 전가해왔다는 것이다. 선관위의 고위 간부들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배우자와 함께 유럽을 누비는 동안, 현장에서 투표를 관리한 것은 두 시간 짜리 교육을 받은 지자체 하급 공무원들이었다. 이 뒤집힌 구조가 6월 3일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파국을 만들어냈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앞으로 더 이상 이 업무를 맡을 수 없다'라고 선언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책임은 없고 권한만 누려온 선관위, 권한은 없고 책임만 떠안아 온 지자체 공무원들이 불균형한 구조가 무너진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올림픽공원의 함성이 멈추지 않는다 — 어린아이부터 교수까지, 대한민국이 일어섰다
국정조사가 진행되는 사이에도 올림픽공원의 함성은 식을 줄 몰랐다. 6월 5일 잠실7동 투표함 강제 반출에 분노한 시위대가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으로 이동한 이후, 시위는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이 시위의 가장 큰 특징은 세대를 초월한 자발적 참여다. 교수들의 시국선언, 학부모 단체들의 시국선언, 전국 18개 대학 총학생회의 공동 선언, 중학생들의 구호, 심지어 어린아이들이 손을 잡고 나와 외치는 장면까지 — 대한민국 사회 모든 계층이 참정권 수호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는 전례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SNS 스레드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시민들이 현장을 지켰고, 전국 각지에서 후원 물품이 답지했으며 미국에서 대형 버스 4대가 지원됐다는 소식은 이 시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이 역사적 현장을 왜곡·축소 보도한 일부 방송사들은 거센 배척에 직면했다. 현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규모를 줄여 보도하거나 특정 방향으로 편집한 방송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일본 언론은 이 사태를 적나라하게 보도했고, 미국에서도 관계자들이 엄중한 경고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한민국의 참정권 침해 사태가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이것이 단순한 국내 행정 실수가 아니라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신뢰와 품격이 걸린 문제임을 의미한다. 

 

선거 소청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국민의힘은 6월 17일 소청 마감일에 중앙당 명의로 서울·경기·인천·부산·울산·전남광주·충북 7개 지역 광역단체장 선거에 소청을 접수했고, 대전·충남·세종·전북 4개 지역 후보자 명의 소청까지 합쳐 총 11곳에 선거 소청을 제기했다. '쌍둥이 득표' 이른바 득표수 일치 12개 지역 발견도 새로운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개혁신당·정의당도 서울시장 선거 소청을 제기한 가운데 소청 접수 건수는 130건을 훌쩍 넘었다. 국조특위는 7월 1일 2차 기관포고, 7월 8일 현장 조사, 7월 14일과 22일 청문회 일정을 확정했다. 국정조사 기간인 8월 1일까지 무엇이 밝혀지느냐에 따라 선관위의 운명과 대한민국 선거 제도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다.

 

해체냐 개혁이냐 —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최후의 선택
이제 분명히 말해야 할 때가 왔다. 선관위는 지금의 형태로 존속할 수 없다. 2022년 소쿠리 투표 사태, 2022~2023년 고위직 자녀 특혜 채용 의혹, 위원장 부부 동반 해외 외유, 투표용지 부족 사태, 증거 인멸, 그리고 국정조사 집단 불출석까지 — 이 10년의 비리와 부실의 기록은 선관위가 자체적으로 개혁할 의지도, 능력도 없음을 증명한다. 중앙선관위에 대한 국민 불신이 70%에 달하는 이 현실에서 선관위는 더 이상 헌법기관의 권위를 주장할 자격이 없다. 헌법기관의 독립성은 국민의 신뢰를 먹고 자라는 것이다. 신뢰가 사라진 독립성은 그저 책임 회피의 갑옷일 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여야를 넘어선 초당적 선관위 개혁이다. 선관위원장 상근제 도입, 복수 상임위원제 추진, 시민 참여형 감시기구 법제화 — 이 개혁 과제들은 어느 한 정당의 과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모든 정치 세력이 함께 완수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다.

 

국조특위의 청문회가 7월 14일과 22일 열린다. 이 자리는 진상규명의 마지막 공론장이다. 7월 청문회에서 관련자들이 또다시 불출석하거나 거짓 증언으로 일관한다면, 국회는 고발과 동행명령의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 책임지지 않는 헌법기관은 존재 이유가 없다. 선관위 개혁은 이제 여야 모두의 과제다. 어느 한 정파의 이익이 아닌, 대한민국 민주주의 전체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림픽공원의 함성, 교수들의 시국선언, 학부모들의 외침, 중학생의 구호, 어린아이들의 목소리 — 이 모든 소리가 가리키는 방향은 하나다. 대한민국의 선거를 다시 국민의 손에 돌려달라는 것이다. 선관위는 지금 이 순간, 오만한 침묵 대신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모든 진실을 고백해야 한다. 그것만이 이 사태를 수습하는 유일한 길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다시 일어서는 출발점이다. 
어린아이들까지 거리로 나선 이 나라에서, 선관위 관계자들은 오전 국정조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가 여야의 거센 질타가 쏟아지고 나서야 오후에 마지못해 나타났다. 그리고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발뺌하며 사태의 기초적 사실관계조차 말을 바꾸는 뻔뻔함을 보였다. 역사는 이 부끄러운 민낯을 영원히 기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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